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한컴오피스 한글’을 좋아한다. 부끄럽다고 하는 건 블라인드 같은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한컴오피스 한글을 멸시하는 글을 가끔 봤기 때문이다.

 

내 지인 중에서도 한컴오피스 한글을 아주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프로그램이라고 칭하는 걸 들은 적 있다. 한컴오피스 한글이 갈라파고스의 증거라고 말이다.

 

글로벌 표준을 잘 모르는 데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마이크로소프트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인 ‘워드’가 운영체제(?)마다 호환이 잘되고 모바일에서도 편하고 글로벌리하고 뭐 암튼 덜 구닥다리라는 점이다.

 

내가 워드로부터 느낀 건, 아니 더 정확히는 워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느낀 건 메일을 받는 상대를 위해 ‘한글’과 ‘워드’와 ‘피디에프’ 파일을 같이 보내주는 수고를 기꺼이 한다는 점이었고, 그건 충분히 멋져 보였다.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포함해) 내가 사용하는 한컴은 최신 버전도 아닌 ‘한컴 2010’이다. 현 직장에서 처음 자리를 배정받고 노트북을 받아들었을 때부터 이미 깔려 있던 것이다.

 

한컴오피스 한글을 제외하면 나는 요즘 기업들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 협업 툴 같은 것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애초에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일단 회사에서 사용하질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여전히 모든 보고와 논의와 자료 공유를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서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간 회의에 필요한 계획서를 모두 출력해서 보곤 했다.)

 

주간 회의와 회식 공지와 잡담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 기가 차지만 “우리도 이제 구석기 시대를 벗어나서 플로우나 잔디 같은 업무용 협업툴을 쓰죠!” 같은 말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역시 중요한 건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인 걸지도.

 

내가 구시대 사람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손이 느린 편이다. 황당하게도 운전면허(1종 보통)를 제외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격증은 초등학생 때 땄던 워드프로세서 3급이다. 그 시절엔 한자 자격증과 함께 워드프로세서를 따는 게 대세였다.(한자 자격증은 한 5번 정도 떨어졌더니 부모님께서 한자 공부 강권하기를 멈추셨다.)

 

같은 풀칠 멤버들한테도 좀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노션이나 스티비가 좀 어렵다.(억장 와르르) 이건 무능력이라기보다는 태만에 가깝지만 말이다. 나에겐 뭔가 새로운 능력이나 툴을 더 붙일만한 케파가 남아있지 않은 거 같다. 나는 이미 늦었어.. 버리고 가..

 

결이 조금 다르지만 선배 한명에게 영어를 더 공부해야 할 거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웃으며 “이제 와서 뭘 더 하려고 애를 쓰지마. 이제는 너가 영어를 배워서 써먹는 거 보다 통역을 붙이는 게 더 빨라”라고 답해주었던 것과 비슷하달까. 내가 코딩을 배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시 갈라파고스로 돌아와서. 한컴오피스 한글에는 내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이 다 담겨있다. 맞춤법을 틀리면 빨간 밑줄로 알려주고 가끔은 영어 자판으로 한글을 쓰거나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고쳐주기도 한다. 맞춤법을 틀리면 선배들과 독자들로부터 야단을 맞는 나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기능이다.

 

노션, 옵시디안 같은 프로그램들이 실시간으로 저장이 되고 호환이 잘되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나에게는 딴 세상일 뿐이다. 그런 건 사람이 하면 되니까. ‘저장을 생활화 합시다.’ 무심코 저장하지 않은 한글을 닫으면 속으로 한참 욕지기를 한 뒤 이전보다 조금 더 간결해진 버전으로 글을 쓰면 된다.

 

이젠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한컴오피스 한글의 푸르스름한 빈창이 나에게는 가장 큰 안정감을 준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캡틴아메리카는 방패가 있으니 더 좋은 무기를 찾지 않았고, 토르는 본인 무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지 않았나. 역시 가짓수 보다는 숙련도다, 라고 생각하며. 장인은 장비를 탓하지만 직장인은 장인이 아니므로, 나는 구닥다리 한컴오피스를 쓰겠다.

  

멀리 볼  수록 답답하기만 한 개 인생 같아요. 얼마 전에 책을 보다가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공유해보고 싶어졌어요! 작가님은 미래나 목표 같은 건 생각하지 않으려 하신대요. 비유하자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비춰도 뿌옇고 흐릿하니, 내 발 밑만 비추며 걷는 것처럼요. 한 치 앞만 보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선택 상황들이 존재하잖아요. 작가님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내가 오늘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낼 거라고 믿고 하루하루를 보낸대요. 이렇게 살면 미래나 거창한 목표에 대한 고민없이 조금은 덜 불안하게 살아갈 힘이 나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N년 후 나의 모습은 어떨까?'는 아주 흔한 질문이었는데 '5년전의 나의 생각은 어땠나'라는 문장이 콱 마음에 꽂혔습니다. 5년전엔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아기도 없는 미혼의 상태였습니다. 물론 결혼은 예정된 것이었고 아이를 낳을 계획도 있었습니다만 예상했던 시기에 이루어진것은 아니었어요. 아기를 낳고 나면 경력단절이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결혼 후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그건 기우였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생각해둔 목표도 이루었고 지금은 육아와 일 두가지를 전부 해나가고 있어요.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지만 어쨌든 잘 살고 있네요. 5년후 또 한번 '내가 5년전에 무슨 생각하며 살았지?' 질문해봐야겠습니다. 제 마음에 멋진 문장을 던져주신 아매오님께 감사드려요 ㅎㅎ

미래에 대한 아매오님의 생각이 참 많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이요 .. 마지막 밸런스게임도 많은 생각을 하게하네요.. 이번주 블챌 주제를 정한것 같아유! 이번주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재를 살아낸 자만이 미래에 당도할 자격을 얻는다."는 문장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현재에 불평불만만 있었기에 미래 또한 불분명하고 막막한것은 아니었는지. 오늘 이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뀔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을때가 많은 P이기에 느낌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막연히 그리워하며 현재에 불평하기보다 오늘을 '살아내기로'.

5년 후라,, 5년 후의 나를 상상하기엔 지금의 내가 너무 힘이 들고 지쳐요. 다 저같은 삶을 사는 걸까요? 때로는 인생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였나,, 싶어요 매일 풀칠 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습니다 ... 다시 입에 풀칠하러 가볼게요 총총,,,

우선, 오늘 하루 수고하셨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당장 내일 닥칠 일도 모르겠고 1년 뒤에는 제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감이 잘 안와요.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달리기를 할 때는 가까운 바닥 말고 약간은 먼 길을 바라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야지 힘을 덜 들이고 오래 달릴 수 있다구요. 풀칠은 정말 쉽지 않지만, 장거리니까요.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저희 함께 힘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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