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주 에세이 당번 파주입니다.

메일 제목을 보고 놀라셨다면 우선 사과부터 드립니다. 그래도 어그로성 가득한 타이틀 덕분에 이 글을 읽고 계신 거겠죠.

일을 하다 보면 물론 보람찰 때도 있지만요. 요즘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 게 언제였던가... 이제는 잘 모르겠네요.

님은 일을 하다가 어떤 순간 보람을 느끼시나요?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벌써 만난 지 10년도 더 지났으니 이제는 꽤 오래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다.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어가는 동안 많은 것은 바뀌었다. 대견하게도 모두들 밥벌이를 하고 있고 그중 한 명은 결혼까지도 해냈다.

강의를 째고 PC방에 다니던, 맛없는 소주에 절여져 매일매일 흑역사를 만들어 가던 친구들. 그들과의 과거를 떠올리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엉망진창이던 이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하며 먹고 살고 있다니.

같은 과를 졸업했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누구는 공무원이 됐고, 또 누구는 공무원을 관두고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만날 때마다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이제는 어디에 다니는지 모를 친구도 있다. 크고 작은 고충은 있지만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오랜만에 만나 대화하다 보면 여전히 철없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들이 제 몸을 건사하고 사는 것을 놀라워하듯, 그들도 나를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저 내성적이고 아둔한 인간이 그래도 제 입에 풀칠은 하고 사는구나.

이른 퇴근을 노리던 날이었다. 오전 업무는 완벽했다. 보내야 할 기획안도 착착, 확인이 필요한 메일은 미리 써두었고 발행이 필요한 것들은 예약까지도 이상 없이 걸어두었다. 이거면 계획대로 반차를 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클라이언트의 메일이 날아든 뒤부터 비상사태가 됐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마케터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모두를 태그해 상황을 알렸고, 이제 각자 맡은 일을 쳐내야 한다. 이것이 ASAP이라는 단어가 불러온 재앙이다. 절하는 모습의 이모지 하나면 뭐든 퉁칠 수 있는 게 아닌데.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삼키며 애꿎은 키보드만 두들겨댄다.

해치우듯 업무를 마무리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부터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을 잊게 된 것 같다고. 공들여 제안한 기획안이 수주된다거나, 두뇌를 짜내서 써둔 문장이 단번에 컨펌되면 솟아오르는 쾌감 같은 것들도 마치 아주 옛날 일처럼 가물가물하다. 이제는 그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워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한다.

사실 일의 보람이라는 건 허상이라고. 일에서 얻는 보람이라곤 오로지 뜨끈한 마라떡볶이나 살얼음 맥주를 사먹을 수 있는 월급뿐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보람을 상실한 이 일을, 나는 오래도록 해낼 수 있을까. 큰 고민이 없는 요즘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곤 한다.

십년지기 친구 중에는 경찰이 된 형도 있다. 누가 봐도 듬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서 그에게 경찰이라는 직업이 꽤 잘 어울리는 옷처럼 보인다. 다년 간 보아온 그의 성격이나 풍채 또한, 믿고 맡기기에는 모자람 없는 사람이다. 물론 이십대 시절과 비교해 살이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믿음직한 사람이다.

형의 얼굴을 떠올리니 그가 썼던 일기가 떠올랐다. 출동 신고를 받고 자살시도자를 막고 돌아온 날, 바로 그 날의 일기였을 거다.

그 구조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국가의 권력 작용을 감사해 마지 않을 사람들은 가족과 주변인일까. 아니면 구조자 본인일까. 나는 후자이길 바라면서 일한다.

경찰로 일하며 마주한 사건들은 형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형이 남긴 일기에는 비장함이나 필사적으로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딱 체온 만큼의 온기가 서린, 인간적인 직업윤리가 느껴졌다. 저 글을 읽고 아무런 관련 없는 내가 괜히 고마움을 느꼈다. 누구도 결론내릴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는 해야 하는 일을 했을뿐이라고. 형이 그 일을 행했음에 아주 많은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을 건네주고 싶어졌다.

내일은 형에게 카톡을 보내야지. 잘 지내냐고. 요즘 일은 또 어떻냐고.

야망백수 :  일의 보람. 지난주에 이번 주 풀칠 주제를 듣고 나서부터 계속 이 단어를 입에서 굴렸습니다. 여태껏 일의 이유나 의미에 대해선 지겨울만치 많이 생각했으면서도 일의 보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더라고요.

일의 이유 중 제일 대중적인 것은 ‘돈 벌어서 먹고살기 위해서’이고, 일의 의미 중 동시대의 유행인 것은 ‘자아실현’일 텐데, 지금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일의 보람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을 해내는 게 더 이상 놀라운 사건이 아닐 만큼 적당히 능숙해졌고, PR 문구에 더 이상 속지 않을 만큼 닳아버린 직장인도 스스로에게서 보람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친한 직장 동료에게 언제 보람을 느끼냐고 물어봤습니다. 최근에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동료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집 가서 아기들 밥 줄 때요.” 보람이란 나의 밖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가 봅니다.

아매오

저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최악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되면서 높아진 해상도를 얻은 덕분에 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고쳐 가면서 사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매오

뭐라 말을 보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옆에는 언제든지 도와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그 옆에 서 있고 싶기도 하고요. 단지 그뿐인 것 같습니다.

파주

마감도비

저도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충격적인 소식에 마냥 휩쓸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는 것도 기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까운 사람들과는 더더욱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밖에요. 매주 도착하는 풀칠레터도 풀칠러님께 가닿는 안부 인사가 되기를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이번 한주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