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 여러분, 마감도비입니다. 지난 한 주간, 아니 이 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엔 추석 연휴와 함께 풀칠레터가 의도치 않게 임시휴업을 하고 말았는데요.(무척 송구..) 저희 풀칠 멤버들도 충전을 하고 돌아온 만큼 앞으로 더 진솔한 에세이로 보답 할게요!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맡게 되는 일이 참 많은 거 같아요. 남들보다 먼저 출근을 해야 한다거나, 일과 이후에도 연락을 받아야 한다거나.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맡아야 한다거나. 그런데 그 중엔 누군가를 돕는 역할도 포함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 주엔 ‘사수가 된다는 것’에 대해 써봤습니다. 풀칠러 여러분은 어떤 사수를 만나봤나요? 혹은 여러분은 어떤 사수인가요? 업무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사수였다. / 마감도비 9월 회사에 인턴 두 명이 출근했다. 인턴이지만 사실상 수습이었다. 늘 막내였던 나에게 회사에 나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있다는 건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출근 첫날부터 흐리멍덩한 동태 눈깔을 하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두 사람은 아주 맑은 눈을 하고 있었다. 반듯한 옷과 반듯한 자세로 (그리고 아마 그보다도 더 반듯한 생각으로) 각자 할당받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날 이후 내가 속한 팀에 인턴 한명이 배정됐다. 뫄뫄 선배가 케어해줄 거라고 얘기를 들었다. 각자 맡아야 할 업무 분야와 루틴이 조금씩 달랐으므로 그 모든 말과 분위기를 나는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누군가는 잘 알려주겠지. 나는 내 일을 처리하기에도 너무 바빴다. 인턴들의 첫 출근 이후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그 두 사람은 여전히 가지런하고 반듯했다. 그때도 그러려니 했다. 누구에게나 일종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이른바 ‘꿔보’ 시기는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같이 회의를 들어가고 정수기 앞에서 마주치면서 그 두 사람의 표정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난감함과 난처함의 축제 같은 표정을. 사무실을 오며가며 나 스스로에게 드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왜 아무도 기본적인 업무를 제대로 안 알려주는 거지?’ 고만고만한 회사들이 그렇듯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다소 고령화된, 다시 말해 중간 연차의 선배가 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인턴들에게 본격적으로 일을 알려줘야 할 시기에 선배들은 너도나도 외근이며 미팅으로 바빴다. 어느 날 지나가다 물어봤다. “OO씨, 혹시 ▲▲선배한테 인트라넷 쓰는 법 배웠어요?” “아니요.” “OO씨, 혹시 ◇◇선배한테서 회의록 작성하는 법 들은 적 있나요?” “아니요.” 그래서 내가 알려줬다. 누군가는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인턴 한 명이 내 자리에 와서 말했다. “(편의상)마감도비 선배, 저 이것 좀 도와주세요. ■■선배가 시키신 업무인데 자료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요??’라고 순간 내뱉을 뻔했으나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요, 뭐가 잘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함께 인턴 자리로 담담히 걸어갔다. 바보 같이, 고생길로. 크건 작건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준다는 건 기존의 내 업무 10에 조언 1을 얹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준다는 건 전혀 다른 업무 환경에 놓이는 걸 뜻했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일러주고, 보고서(라고 통칭하겠다)에 담고 싶은 의견은 무엇인지 되묻고,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정말 이게 전부인지 하나하나 살피는 일이 이어졌다. 당황스러웠고 난처했다. 내가 처리해야 할 일로 시간이 부닥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으니까.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답변을 해주는 데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다. 솔직히 짜증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직 삼개월차, 이제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겨우 내 할당량을 다 채우고 커피 한잔에 숨 돌릴 수는 있는 수준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었다. “보고서 방향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도와주신 덕에 수월하게 일을 마쳤어요. 감사합니다.” 오. 화면 속 메신저를 보면서 뛸 듯이 기쁘다거나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고생했어요”라고 메신저를 보내고 속으로 ‘음~’하고 기지개를 한번 펴게 되는, 딱 그만큼의 뿌듯함은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회사에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반쪽 자리 사수인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도움은 되나?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게 맞나? 잘못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두려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두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으며 내가 모자란 가이드라인을 전해주면 그들 스스로 더욱 잘 해쳐나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선배인 듯 동료인 듯. 그러고 보면 결국 사수가 해줄 수 있는 건 일종의 섭동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배우는 사람에게 가하는 자극 같은 것. 나만의 ‘사수론’이다. 그리고 모두가 처음부터 누군가의 사수였던 건 아니니까. 오늘도 사수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파주 사수를 주제로 한 글을 읽으니 제가 겪어온 사수들이 절로 떠오릅니다. 회사라는 조직으로 한정 짓는다면 저는 지금까지 3명의 사수를 만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꽤 사수복이 좋은 편이네요. 제각기 성격은 달랐지만 모두 유능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어떤 사수는 정확한 말로 일하는 방식을 일러주기도 했고, 또 다른 사수는 친구처럼 아웅다웅하면서 일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특정한 성격이나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 곧 좋은 상사, 좋은 사수가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거쳐온 3명의 상사 모두 좋은 사람들이기도 했고요. 진심으로 '좋은 사수란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는 마감도비 님의 모습을 보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은근한 믿음이 생기네요. 응원합니다! 아매오 부사수가 첫 출근하는 날, 뭐랄까, 무서웠어요. 애송이가 슈퍼 애송이에게 뭘 가르치겠어요. 끽해야 하루이틀 먼저 입주해 콘센트 위치나 와이파이 비밀번호 같은 걸 일러주는 기숙사 룸메 정도였을 텐데. 다시 생각하니 더 기가 차네요. 참내. 아오, 갑자기 쪽팔리네.
무슨 수를 써도 내가 지금 가진 것 이상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무서움(쪽팔림)은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어요. 부사수로서 내가 원했던 사수의 모습을 나 자신이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너무 잘 느껴진다는 점에서 괴롭기도 할 테고.
제 부사수는 제가 가진 모든 걸 빼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기쁨이 더 클 것 같군요. 아, 이게 내리사랑의 한 형태인가 싶기도 하네요. 야망백수 항상 부서 내 막내만 하다가 취업전선에서 탈주해버린 저로서는 겪어본 적도, 앞으로 겪을 것 같지도 않은 경험이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요즘 혼자 이것저것 도전하고 있는데 진짜 스승님이 너무 절실해요. 진짜 스승님만 구할 수 있다면 회사라도 다시 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니까요? 그래서인지 마감도비님 에세이 속 신입사원님들이 부럽네요. 마감도비님같은 사수를 만났다는 게,,,회사는 학원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서로서로 많이 가르쳐주고 잘 배우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가르쳐주는 사람은 월급받으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플러스 알파, 배우는 사람은 월급도 받고 성장하니 꿩먹고 알먹고. 휴. 부럽다. 오늘도 퇴사를 후회하진 않지만 조직에는 속하고 싶은 이중성 때문에 괴롭네요. 스승님 구합니다. ▲마윈이 다녀간 강릉 초당순두부집. 저도 지나갔습니다. 지난주엔 풀칠 이야기를 전해준 분이 안 계세요! 추석이라고 멋대로 쉬어버린 것에 대한 벌이라 생각하렵니다... 우리들의 풀칠하는 이야기,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읽은 풀칠 레터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 등을 아래에 있는 '나의 풀칠 이야기' 버튼을 눌러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밥벌이 에세이 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