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달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풀칠 182호]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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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 주의 에세이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 풀칠 주제는 ‘꼰대’입니다. 요즘 ‘내가 꼰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어디까지가 정당한 업무 지시이고 어디부터가 자율성의 침해인지 누가 선을 그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사건건 지적을 하자니 꼰대 같고 하지 않자니 참을 수 없이 답답하고.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할 때 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을까’였고, 그 다음은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였다. 쉽게 말해 그동안 직장인으로서 나의 세계에는 ‘일’과 ‘나’ 밖에 없었고 이 둘의 싸움이었다.

일이 이기거나 내가 이기거나. 팽팽한 싸움의 결과는 대부분 내가 지는 걸로 결판이 났지만 칼로 벤 것처럼 깔끔했다. 내가 이기면 자축을 하며 하루를 마감했고 내가 지면 분을 삭이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 말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팀 막내를 탈출했다고, 드디어 일을 덜게 됐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게 됐다. 누군가에게 일을 지시하고 매듭짓는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혼자 뛰던 달리기가 2인3각 경기로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2인3각? 발이 많아지면 좋지.’ 드디어 우군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대도 함께 커졌다. 부사수와 함께 힘을 합쳐 ‘일’을 해치우는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을 꿈꿨다. 서로가 이심전심 맡은 일을 다 끝내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처음엔 부사수가 일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다짐했었다.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고 시간이 지나면 부사수가 웬만큼 자기 몫을 해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사수의 업무 처리에 자꾸 눈이 갔다. 아,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요건 요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업무 결과물에 말을 얹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부터 내 ‘코멘트’의 양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안에 꼰대 본능이 눈을 뜨고 만 것일까. 한번 피드백을 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말이 많아졌다. 이건 이렇게 하세요, 저건 그렇게 하면 안돼요. 마치 터진 둑처럼 말이다. 아침에 업무를 시작할 때 메신저를 통해 A, B, C 하세요 하고 선언하듯 말을 거는 내 모습을 보며 약간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부사수와 함께 일하는 게 회사에서 부여한 나의 새로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이 2인3각 경기를 매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부사수가 합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북돋아줘야 하나, 이 속도로는 같이 뛰어줘야 한다고 엄포를 놓아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일과 부사수를 둘 다 들쳐 메고 내가 혼자 뛰어야 하나.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속이 찝찝하기만 할뿐 시원하게 해결되는 건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과 같은 강도로 일을 할 거라 지레짐작한 것부터가 이기적이고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줬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신뢰는 ‘가불’이라고. 일단 믿고 맡기고 먼저 쳐준 값은 나중에 받는 거라고.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

그 말을 듣는데 잠깐 멍해졌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역할을 계속 부여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달라지려 하지 않은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사수가 되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혼자 뛸 수 있지만 같이 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사수도 나도 새로운 한 걸음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야망백수 : 내가 일을 잘 하는 것과, 팀원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 같아요. 전자는 ‘몸빵’이 그럭저럭 되는데, 후자는 동료의 성향과 역량과 기분을 눈치 빠르게 읽어내는 관심법에도 능통해야 하잖아요. 정말 정신없고 피곤한 일입니다.

언젠간 사람은 늘어나는 데 왜 일도 같이 늘어날까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요,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회사가 사람을 한 명 뽑는다는 건 니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다.” 제가 동료에게 신뢰를 가불해 줄 때, 회사는 그 가불된 신뢰를 레버리지 삼아서 우상향에 베팅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얽히고설킨 신뢰 거래소에서 우리는 과연 한몫을 챙겨서 떠날 수 있을까요? 손익을 따져보면 분명 손해일 것 같지만, 저도 누군가에게 먼저 받아놓고 갚지 않은 신뢰가 분명 있을 테니 ‘퉁’치기로 합니다.

아매오 :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괴물에 비유해 느낄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정으로 프로젝트를 끝내는 경우가 아니라 내가 싫어한 바로 그 모습을 동료들에게 내비치는 그 순간이죠. 좋은 동료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괴물‘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파주 : ‘2인 3각’이라는 비유에 무릎을 쳐버렸네요. 혼자 달리면 본인의 템포를 스스로 조절하면 그만이지만요. 옆사람과 호흡을 맞춰 움직여야 하니까요. 둘 중 누군가(아니면 둘 다)는 당장 이 끈을 끊고 내달리고 싶은 심정이겠죠. 더군다나 회사 일이라는 건 운동회처럼 목적지가 딱 정해진 게 아닌 경우가 태반이니까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것부터 타협하는 게 매일의 과업이겠군요.

제 출신이 수상해지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만화 <드래곤볼> 속 퓨전 합체 장면이 강렬하게 떠오르네요.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니 ‘비슷한 전투력과 체격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로 합체하여 강력한 초전사로 변신하는 기술’이라고 하는데요. 제 기억으론 비교적 낮은 전투력을 가진 사람의 힘에 맞춰 퓨전을 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 퓨전의 결과 두 사람의 합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초전사가 탄생하는데요.

어쩌면 마감도비님과 부사수님이 2인 3각을 하며 호흡을 맞추는 게 꼭 퓨전 합체를 위한 좌충우돌이 아닐지… 감히 예상해 봅니다. 둘 중 누군가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마감도비님이 가불하고 있는 신뢰가 조만간 결실을 맺고 결국 퓨전 합체에 성공하지 않을까요? 마감도비님의 수월한 회사 생활을 위해 그럴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해 봅니다.

▲ 둔갑

풀칠러A

불안을 없애기위해서 당면한 일을 열심히(!)하고 있습니다. 9번당대표가 인터뷰에서 앞으로 감옥에 갈수도있는데, 어떻게 하실거냐고 질문을 받자. 당장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답변하더군요. 그날 저도 당장 나가서 재고팔기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파주

내일 감옥에 가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니… 그거 참 펀(뻔)하고 쿨한 스탠스네요.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세 만큼은 리스펙 하게 되네요. 저도 오늘 당장 하고 있는 성실하게 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풀칠러A

불안이 매일의 주요 과업이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안 훌륭한 정신건강 전문가가 되었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깨달음이면서도 내담자분들께도 자주 말씀드리는 것 중 하나는 "불안을 없애는 것은 불필요하며, 불가능하다.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을 정도로만 크기를 줄여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 입니다.

우리가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매일매일이 욜로 라이프에 성인병 돼지파티가 계속되겠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미래를 대비하도록 우리를 다잡아 주잖아요.

적당히 불안한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더욱이 이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에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파주

그러고 보니 불안을 소재로 한 책에서 ‘불안은 인간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라는 문장을 본 것 같네요. 풀칠러님이 해주신 말씀과 마찬가지로요. 불안하기 때문에 맹수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않는다거나. 불안정한 내일을 걱정하며 식량을 비축하는 게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과학에 무지한 사람이지만, 태생적으로 불안을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네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불안은 화수분처럼 솟아날 테니까요. 자잘한 걱정들을 환대하기로 했습니다. 운동하러 나왔는데 방충망까지 열어두었나, 그 사이에 벌레가 방에 들이닥치면 어쩌나… 그런 걱정들을 하고 나면 한편으론 ‘오늘 걱정할 게 이것뿐이구나’하면서 안심하게 되네요. 풀칠러님이 해주신 ‘불안해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한동안 마음에 품고 살게 될 것 같습니다. 불안에 대한 훌륭한 처방전을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