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매오입니다. 반팔 날씨였다가 흐렸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아주 난리가 났네요. 이번 주 풀칠레터 주제는 ‘격려’입니다. 서로 격려 좀 하면서 일하자! 진짜 ㅈㄴ 뭐라 그러네!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쓰는 내내 뭐랄까,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자세가 아닌가 싶어 마음 한편이 콕콕 찔리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그냥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내일부터는 다시 역량 키우고 효율 높이고 성과 늘리는 K-일잘러 지망생으로 살겠습니다. 근데 여러분, 프로의 세계에서는 좋게좋게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쵸? 진짜루? 고속버스를 탈 때면 묘한 팀 스피릿을 느낀다. 기차나 지하철, 일반 시내버스는 다른 승객이 어디에서 탔는지 혹은 어디에서 내릴지 모른다. 반면 고속버스는 모든 승객이 출발지와 도착지를 공유한다.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은근한 내적 친밀감을 선사한다. 우리를 ‘우리'로 묶는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현재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고속버스를 탄 이상 유일한 목적은 예정된 시간 안에 예정된 공간에 도착하는 것이니까. 고속버스 팀 스피릿. 요새 유행하는 '느슨한 연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개개인의 모습은 출발지(현재)는 물론 도착지(미래)에서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동하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나 자세, 마음가짐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들 자신이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무사히 건너왔다는 사실에 대해 서로 증인이 되어줄 수 있다. 내가 했고, 했다는 걸 쟤가 알고, 쟤가 안다는 걸 내가 안다. 쟤도 그렇다. 이건 흩어진 개인들에게 생각보다 큰 힘과 위로를 준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나는 ‘모임’을 만드는 기획자다. 만들고 싶은(만들어야 하는) 모임의 카테고리를 정한 다음 해당 분야에서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컨택한다. 또는 평소 관심 갖고 있던 사람에게 모임 진행을 제안하기도 한다. 일의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료 같다. 모임 하나가 고속버스 한 대인 셈이다. 기획자와 진행자가 나란히 앉아 운전을 하고 열댓 명의 참여자가 객석에 앉는다. 우리는 목표를 공유한다. 모임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마무리되는 것. 참여자의 만족감과 진행자의 효능감이 눈에 보일 때 기획자는 뿌듯하다. 한 시즌 더 하시죠.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어필할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즌을 진행하는 순간부터 진짜 동료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다양한 팀워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장점이다.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인 분이 나와 첫 미팅을 마치고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인데 능력자님을 만났다!”라고 써줬다. 개인적으로 최근 ‘내게 닿은 좋은 말’ 중 최고라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꺼내 먹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 ‘격려하는 마음’이야말로 훌륭한 팀이 갖춰야 할 필수역량이 아닌가 생각했다. 일은 결국 혼자 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 한걸음을 내딛게 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힘’이 아니라 ‘마음’이다. 힘이 액션이라면 마음은 리액션이다. 사려 깊은 리액션이 이끌어내는 퍼포먼스는 측정할 수 없지만 그 어떤 액션보다도 커다랗다. 아매오 님의 글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용기를 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콕 집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내 글에 공감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았답니다. 피터 드러커 아저씨는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런 말들을 어떻게 측정하나. 난 분명 이것들에 기대 무언가를 해왔는데. 격려하는 마음은 능력일까. 그렇다고 본다. 당연히 덮어놓고 좋은 소리만 하자는 게 아니다. 리액션의 기준을 조금만 더 낮추고 최선의 결과로 가는 길을 같이 찾아보자는 거다. 개개인의 역량은 그 다음에 따져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깔아 뭉개고 몰아치는 거 안 하고 싶다. 보기도 싫다. “사람이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변명 뒤에 숨고 싶지 않다. 숨는 사람도 싫다. 못 나가는 패배자의 푸념 같아 보여도, 그냥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네.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이라는 이번 주제에 참 공감이 가요. 격려라는 거 시간도 에너지도 감정도 많이 드는 행동이죠. ‘힐링물’과 같은 미디어의 영향 탓인지 격려라고 하면 엄청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다들 경험으로 알잖아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격려는 정말 고난이도의 퍼포먼스라는 걸요. 상대의 상황을 적절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안고 있는 고민을 꿰뚫어볼 줄도 알아야 하죠.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조언을 주어야 하고 말이죠. 고수의 경지에 이른, 일종의 ‘마음의 무쌍(無雙)’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처음 만난 상대에게 ‘격려가 됐다’라는 말을 들은 아매오님은 이미 프로 중의 프로, 능력자 중의 능력자입니다. 그 능력, 저에게도 좀 나눠주세요..!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이라는 제목을 보고 윤여정 배우님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미나리>의 촬영이 끝난 날 정이삭 감독님이 윤여정 배우님의 숙소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아마 미국인이었겠죠?)를 대동하고서요. 정이삭 감독님이 스태프들에게 큰절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윤여정 배우님께 다 함께 큰절을 올렸다고 해요. '영화의 명장면을 꼽는다면?'이라는 질문에 윤여정 배우님은 이 일화를 꺼냈습니다.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 현실에서 받은 선물 같은 순간이 기억에 남았던 거겠죠. 정이삭 감독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영화를 어떻게 만든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미나리>가 왜 그렇게 정갈하면서도 따뜻했는지도요. 격려하는 마음. 저는 이 단어를 줄여서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독실한 '태도 신봉론자'인 저는 좋은 태도야말로 좋은 행동을 만들고, 좋은 행동이 쌓여 곧 좋은 콘텐츠를 빚어낸다고 믿습니다. 아름다운 영화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님이 그랬던 것처럼요. 인사말에서 프로의 세계에선 좋게좋게 사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냐고 물어보셨죠. 저는 프로의 세계에선 무조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알천한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제가 프로답다고 여겼던 분들은 의욕만 앞서는 저를 격려해주셨던 분들이기도 하거든요. 격려해주는 프로들 덕분에 저는 스스로를 일 못하는 불량품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애쓰는, 나름의 역사와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란 걸 잊지 않을 수 있었고요. 어쩌면 프로다움은 아무리 바빠도 내가 지금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있단 사실을 잊지 않는 명석함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저는 정작 누군가에게 격려를 해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말단 중의 말단이기도 했고, 격려라는 게 사실 좀 쑥스럽고 동료/친구의 선을 넘는 오바인 것 같아서 망설여지더군요. 오늘은 -격려하는 마음은 능력이다-라는 금언을 새기고 격려의 말을 한번 건네 봐야겠습니다. 고깝지 않게 전할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커뮤니케이션능력을 자신만만하게 강점으로 소개하던 과거의 낯짝 두터운 자소서를 생각할 때마다 엄습하는 지독한 부끄러움이 좀 가실 날도 올 것 같네요.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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