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네요. 가을이 오려나 봐요. 이번 주는 안으로 삭혀온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사람을, 특히 신입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조직의 관행에 대해서 말이죠. 사람이 부족하다면서도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한 사람이 제 몫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걸까요?
저는 여전히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답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세요. 회사는 왜 신입사원들을 위하지 않을까. 모든 직원의 사정을 헤아려주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제 앞가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갓 경험을 쌓기 시작한,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회사는 왜 매몰차게 구는 걸까.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 지금의 조직에 이직, 아니 이식됐다. 딱히 직급이 없는 조직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주임 정도일까. 업종이 바뀌었음에도 경력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얼른 한 사람 몫을 해주기를 바라던 회의 분위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도 내 경력과 직급은 부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일 년차(연봉협상)부터 사 년차(프로젝트 일임)까지 나일론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기를 일 년 삼 개월. 이제는 일에도 회사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래도 회사에게나 나에게나 길다고 말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 꽤 많은 수의 후배들을 받았다가 잃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이제 나도 사수가 됐다고 좋아했는데 어느샌가 빈 책상을 바라봐야 했으니까. 맘이 여린 사람, 워라밸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 아직은 요령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 회사에 없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 싹이 움트자마자 회사는 화분을 비웠다. 혹은 본인이 회사의 무관심과 관용 없음에 실망해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좋아라 하던 그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주니어인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불합리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뿐이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제 실력을 발휘하는 건 시간문제였는데.
왜 신입사원들이 모든 시간과 여유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걸까? 업무의 속성을 파악하고, 조직의 생리(生理)를 이해하고, 사회성을 늘려가고, 단점을 보완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속성으로 끝내기를,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신입사원에게 충분한 관심과 기회를 주지 않는 건 월급을 일부 떼놓는 거랑 뭐가 다를까 하는 과격한 생각도 해본다. 된소리를 하자면, 처음부터 능숙하기를 바라는 회사의 요구가 때로는 너무 고깝다. 실패할 수 있는 것도 자본인데. 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을 받는 대신 실패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고민을 회사에는 아주 희미하게 털어놓으면 더러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반론을 꺼내들었다. 회사라는 조직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뽑고 채우고 때로는 나가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순진하다,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 라는 말 앞에서 나는 순순히 물러났지만 마음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 생각에 그건 회사의 경영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일이 고된 산업의 특성 탓도 아니었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볕이 좋은 날에 화분을 창문 앞이 아닌 외딴 담벼락 앞에 세워두니 시들 수밖에 없다. 회사는 사람에, 새로운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냥 회사를 욕할 수도 없다. 내 잘못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저녁 술자리에서 나에게 말했다. “선배는 피곤하지 않으세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만큼은 못 할 거 같아요.” 나는 다른 의미로 후배들에게 황소개구리였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돈을 받으며 이만큼 일을 떠안아서는 안됐었는데. 내가 싼값에 더 많은 일을 떠안느라 다른 사람이 정당한 경험을 쌓고 실수를 하고 그럼에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뺏어버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사람들이 기대를 안고 들어왔다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이제는 황소개구리가 아니라 청개구리가 되고 싶다. 그리고 회사에 요구하고 싶다. 화분은 그렇게 외진 곳에 두는 거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주 무럭무럭 자랄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하고 요구하고 싶다. 아매오 :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야, 라고 할 때 ‘그런 곳’의 자리에는 보통 ‘학교’가 들어가죠. 회사는 학교가 아니야. 여기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곳이 아니라 성과를 통해 증명해야 하는 곳이야. 하지만 마감도비님 말처럼 저 또한 아직 주니어라서 이런 말들은 그저 막막한 벽처럼 느껴집니다.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꿋꿋이 자기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 벽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그들은 스스로에게 준 관심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스스로에게 준 기회를 잡으며 주니어 티를 벗고 있거든요. 회사는 학교가 아니야. 저는 그 말이 마치 사람에 감가상각을 적용하려는 태도인 것처럼 읽힙니다. 시간은 흐르고 인건비는 나가는데 기대한 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니 속상한 거죠. 흠. 최대치의 기대를 적용하는 시기만 조금 늦추면 어떨까요. 기계는 쓰면 쓸수록 성능이 떨어지지만 사람은 반대잖아요. 파주 :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내달렸을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니. 회사에서 뚝딱거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같은 회사에, 더군다나 소속된 팀에 일잘러나 에이스가 있다는 건 늘 든든한 일이었으니까요. 마감도비님과 정반대로 회사에서 매번 뚝딱거리며 팀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저는 올챙이의 시선으로 '신입을 위한 회사는 없다'를 재차 읽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저는 늘 회사에서 시간을 받았어요. 일을 능숙하게 해내기에는 무리지만 적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을요.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내쳐지기보다는 도망을 택하는 쪽이었습니다. 남들이 저에게 실망하는 것 이상으로, 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게 정말이지 끔찍했거든요. '맘이 여린, 워라밸을 지키고 싶었던, 아직은 요령을 쌓지 못한'에 모두 속하는 저는 황소개구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습니다. 먹이를 꿀떡꿀떡 삼키듯 쌓이는 업무를 후딱후딱 소화시킬 수 있었으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야망백수 : 회사는 기다려주지 않아,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아...'~는 기다려주지 않아’만큼 서늘한 미신이 또 있을까요. 저는 이 말을 매일 무슨 주문마냥 외우면서 다녔던 것 같아요. 회사랑은 별 연이 없는 제 얘길 조금만 해볼까요. 제게 특히 큰 위력을 발휘했던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은 젊음이었는데요. 1초라도 어릴 때, 갖고 있는 무언가가 썩어버리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었죠. 근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까 제 생각만큼 제가 잘 하는 건 또 아니더라구요? 회사 안이든 밖이든 신입은 그저 신입인가 봅니다. 그리고 이 뼈아픈 자기객관화의 시간에 ‘기다려주지 않아’라는 미신은 그간 믿어온 보람도 없이 요만치도 도움이 안되더군요. 의외로 도움이 됐던 건 ‘잘 보고 있어요’같은, 현실을 직면하는덴 별 도움도 안되는 ‘나이브’한 말이었습니다. 따뜻함은 현실적이진 않아도 현실을 더 낫게 만들어주기도 하더만요. 누군가 담뱃불을 빌려주기만 했다면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죽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장사밑천이야 좀 상했겠지만... 여튼, 저는 이제 조금 다른 미신을 믿어보려구요. 원래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냉혹한 무관심 대신, 자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미숙함에게 따뜻한 시선쯤이야 괜찮잖아?라고 말하는 순진함을요. (마감도비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햇볕에 화분을 가져다두지 못할 불가피한 이유 따윈 없으니까요. 이게 세상을 더 낫게 만들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일단 제 기분은 좀 좋네요. ▲피로가 인류의 아주 오래된 벽화처럼 남았다. Photo by 마감도비 ▲이번 주도 평일의 반환점을 돌았네요! 풀칠러 만세! by 야망백수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이 거기 풀칠 멤바들! 자네들 혹시 이거 좋아하나...? 이번 주도 분골쇄신 🌾풀칠🌾 만드느라 고생한 야망백수, 아매오, 파주, 마감도비에게 김밥 한 줄 쏘고 싶으시다면 아래 버튼으로 후원해주세요🍚 풀칠러님의 따뜻한 응원은 저희가 계속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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