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매오입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현실감이 약간 더해지는 시기입니다. 자신만이 아닌 타인의 건강에도 신경 쓰는 태도가 필요한 듯해요. 이번 화두를 ‘취준’으로 할지, ‘실패’로 할지 좀 고민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공감을 얻기 쉬운 ‘취준’이 좋지 않을까 했는데요. 아무래도 ‘취준’은 대부분의 풀칠러 님들에게 과거의 기억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미래까지 포괄할 수 있는 ‘실패’로 정했어요. 여러분은 실패해 보셨나요? 실패했을 때 어땠나요? 그리고 그건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실패: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 아매오 2017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나는 기자 지망생이었다. 가고 싶었던 언론사에서 두 번째 최종 탈락 통보를 받고 나니 이 길을 더 고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로 모두 정리했다.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간 날 A와 나눈 대화가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이제 뭐할 거예요?” “모르겠어요. 일단 놀게요. 연말이기도 하고, 취준한다고 여태까지 제대로 놀지도 못했으니까.” “아니, 뭘 몰라요. 계획 없어요?” “없어요. 일단 놀고 생각해보려고요.” “아니, 진짜 없다고요?” “네. 진짜 없어요” “진짜요?” “진짜요.” 싸운 건 아니었다. A는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을 닮은 날카로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A가 그렇게 당황 혹은 황당한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험이라는 게, 취업 준비라는 게, 결국엔 자기 자존감 깎아 먹으면서 버티는 싸움인데, 나도 참 자존감 높은 사람인데, 그런데도 이게 참 쉽지가 않네요.” ‘이제 더 이상 깎아 먹을 자존감이 남지 않았소’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스터디원들의 사기마저 꺾을까 꾹 참았다. 어쨌거나 당시 나는 계속되는 낙방에 멘탈이 터진 중도 탈락자였고 혹시라도 그 이미지가 다른 스터디원들이 그리는 자신의 미래에 유리조각처럼 파고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대한 긍정적인 뒷모습을 남기려 했다. 후회도 미련도 걱정도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헤어졌다. 실제로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지금도 그 흔적이 보일 만큼 컸다. ‘GV 빌런 고태경’ 초반부를 읽으며 정말 많은 문장에 밑줄을 쳤다. 이를테면 “실패한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같은 문장.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손에 잡힐 듯하다 멀어지고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같은 문장이나 “너무 오래 추구한 꿈이 환상을 만든 건 아닐까.” 같은 문장.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지망생이라는 신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실패한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여기 있잖아…”라며 홀로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돼 버렸다는 걸. 어쩌면 그 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걸. 언론인 지망생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아랑에 올렸던 후기를 다시 읽어봤다. 신세 지던 친구 집에서 짐을 빼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썼던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실패담입니다.”라며 시작한다. 똑같은 삶을 살아도 성공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이유가,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한 이유가 되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그런데 고태경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한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쭉 나 자신을 비웃고 미워했다. 오랫동안 추구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것, 당시에는 유예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영영 잃어버린 것들이 지망생이라는 신분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때문에 그 후기는 앞으로도 계속 실패담으로 남아 있을 운명이었다. 주인공인 나는 영원히 실패자였을 것이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이 문장을 만났다. “패배를 실패로 착각해선 안 된다. 패배가 상대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라면 실패는 나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졌다면 실패한 게 아니다. 패배한 것이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겼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 대신 실패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패배했다고 실패한 건 아니다. 나는 패배의 순간마다 실패를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나 성공은 무언가를 뒤돌아 본 뒤 내리는 평가의 언어다. 이젠 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51 대 49로 승패가 갈릴 때는 승리만큼 패배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게 다 패배와 실패를 구별하는 틀을 얻은 덕이다. 권석천 기자는 말장난이 아니라고 했지만, 말장난이면 어때. 원래 말장난 속에 통찰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패배한다. 승리로만 점철된 성공한 삶이란 판타지다. 하다못해 메시조차 월드컵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바로 얼마 전에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팀이 8:2로 박살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메시는 실패자인가? 그럴 리가. 그는 여전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심지어 지난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다 득점, 최다 도움,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슈팅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승리와 패배를 쌓아왔다. 두 번이나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신 ‘가고 싶었던 언론사’는 전형마다 문자를 통해 결과와 다음 일정을 안내했다. 그 문자의 마지막 문장은 항상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였다. 묘했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고 근거가 확실해야 할 공채 경쟁에서 굳이 지원자의 행운을 빌다니. 하지만 현재 나는 이 문장을 다른 의미로 읽는다. 승리하거나 패배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나의 승리가 온전히 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닌 것처럼 나의 패배도 온전히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한다. 한 시절이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시절이 시작된다.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야망백수 아매오님의 글...게으른 백수인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네요. ‘패배도 많이 하는 와중에 실패까지 하려고? 행운을 빌어주마! 움직여!’ 뼈 때리는 채찍과 행운 당근...근데 전 너무 게을러졌나봐요. 채찍도 당근도 싫어졌나봐요. 허허. 저는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답니다. 경쟁과 강박을 초월하고 싶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냥 그날 그날의 쾌락과 풀칠-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런 저, 정상인가요? 아아.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도 초월하고 싶다. 아무래도 내년 쯤엔 어디 산에 들어가서 살고 있을 것 같네요. 놀러오세요 야망백수의 산장에. 파주 저 또한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제 인생이 이미 충분히 X돼서 돌이킬 수 없다고 믿었던 날들이요. 매 출근길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업보가 있길래 요 모냥 요 꼴이지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심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주말 방청소를 하다가 스물 네 살에 쓴 일기장을 발견했어요. 세상살이에 슬픔이 그리 많았는지 원, 짠내 가득한 일기에는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뿐'이라는 개소리가 적혀있더라고요. 세상에, 인생이 제멋대로 흐른다고만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목표를 얼렁뚱땅 이루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적어도 삶에서 100%의 승리도, 패배도 없다는 겁니다. 살다 보니 승리도 하고, 패배도 하게 되는 거겠죠. 성공과 실패는 나이를 더 먹은 다음에 묻기로 합시다, 우리. 마감도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는 문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네요. 다소 삭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저에게 유용한 충고가 아닐까 합니다. 실패, 참 무서운 단어죠. 너무 단호하고 차가운 말이라 앞뒤에 미사여구를 허락하지 않는 거 같아요. 그래도 아매오님이 행운을 기원해준 덕분에 조금은 기운이 났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구나, 비록 하루하루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패배하고 있지만 아직 실패는 아니구나 하구요. 제가 좋아하는 저널리스트는 세상이 가장 어두운 시절을 지날 때 늘 다음과 같은 멘트로 뉴스를 마쳤다고 해요. "Good night, and good luck!" 고마운 위로를 전해준 아매오님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굿나잇 앤 굿럭입니다. ▲룸메는 죽고 싶은 날에는 꼭 엽떡을 시켰다 풀칠러 A 저에게 적폐란 의미는 부러움의 감정이 큰 것 같아요. (물론 그릇된 것들을 쌓아가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ㅎㅎ). 그래서 누구나 상대적 적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백수에게는 무슨 일이든 돈을 받고 경험과 인내심을 쌓고 세상을 배워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울 수도 있을 거 같구요. 또 계약직이나 인턴같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인 분들은 정규직이 부럽지 않을까요. 또 정규직은 더 처우가 나은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들이 부러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저도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자일 수도 있지만 또 인턴을 하고 있는 제 입장에선 제가 다니고 있는 나름 연봉높은 회상에서 더 나은 곳으로 가라고 말하는 그들이 적폐인 것 같네요 ㅎㅎ. 취업시장에서 경험은 깡패이니까 경험많은 깡패들이 적폐에요 ㅎㅎㅎ. 기업은 경험있는 신입을 좋아하니까요ㅎㅎㅎ. 취업시장에서 적폐가 돼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어요! ㅎㅎㅎ 파주 맞아요. 잘나가는 사람을 보고 '적폐다!'라고 외친 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저의 못된 심보와 함께 상대에 대한 리스펙을 감추기 위함이었어요. 그가 이룬 성취에 대한 (부끄러움과 질투심이 섞인) 최상급의 극찬인 셈이죠. 풀칠러 님의 적폐로 향하는 길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때가 오면 "적폐다!"라고 우렁차게 외쳐드릴게요. 풀칠러 B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꺼 왤케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목표가 적폐되기인데요, 일단 무언가 쌓기부터 해야겠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적(積)이라도 해야하는데 그저 폐만 되고 있네요 ㅎㅎ 그러나 아매오님 말처럼 매일매일 죽상으로 어떻게든 출근을 하는 것도 적이요, 폐이니 결국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적폐가 아닐런지... 하지만 모두들 고작 이정도 적폐를 원하진 않잖아요?? 모름지기 적폐를 꿈꿨으면 8시뉴스(아침말고 저녁)에 1번 뉴스로 나올 정도는 되어야,,, 그럴 날을 꿈꾸며 오늘도 화이팅 T_T!!! 아매오 요즘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읽고 있는데요. 지금의 사회 체제가 너무 완전해서 현 세대는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기여할 틈이 없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혁명이 불가능하니 우리 앞엔 적폐가 되는 길밖에 없는 걸까요. 아... 아니다... 어쩌면 우린 적폐조차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죠... 하... 표백에 나오는 세연, 세화 자매처럼 자살 선언이라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ㅠ 아이고 이런! 풀칠러 C 저는 늘 연초에 계획과 목표를 크고 거창하게 세우곤 하는데요. 올해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해여서 딱 한 가지 큰 목표를 세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탈없이 직장에 잘 적응하자." 그런데 입사 전부터 근무지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고, 무슨 패기와 근자감이었는지 어떻게든 나는 서울에서 일하겠다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팀원과 떨어져 저 혼자 서울 사옥의 자리 하나를 얻어냈죠. 상사도 없겠다, 눈치 주는 사람도 없겠다 그야말로 편-한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올해 목표를 벌써 이룬 셈이었어요. 이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3개월이 흐르고 어느 날, 팀장님은 이렇게는 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이제 이곳으로 오는 게 어떻겠냐 설득하셨어요. 3개월 차, 사회생활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는지 저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집을 얻어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그렇게 근무지를 옮기고 정신없이 주어진 일정에 쫓기며 일을 했습니다. 매일 바쁜 하루를 지내다 보니 적응이랄 것도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 상사께서 갑자기 저에게 이제 일에 잘 적응한 것 같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뭐 이제 9개월 차고 마감도 곧장 잘하고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제 답에 잠깐 머뭇거리시더니 OO 씨는 왜 이렇게 질문이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이 연차쯤 되었으면 선배들이 귀찮을 정도로 질문도 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게 정상인데 물어보기 전까진 말이 없으니 걱정이 된다며, 말수가 없는 건 알겠는데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요. 그 말을 듣고는 띵했습니다. 첫 사회생활이고, 터울 있는 남자 상사들이어서 아직은 관계가 어렵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상사들이 저를 질문 없고, 말수 없는 신입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요. 저는 빡빡한 책 일정을 소화하는 게 최우선순위였고 그 일을 해내는 게 잘 적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사들의 평가는 그게 아니였습니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상사가 야속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라는 책 권수를 줄여주던가, 좀 더 살갑게 챙겨주던가, 신입은 일하면서 터득하는 거라더니 왜 갑자기 질문을 안 한다고 난린데? 등 그간의 서러움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직장에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적응하고 있는 신입인가 봅니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건 내 일을 기한에 맞춰 끝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9개월 차가 되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올해 안에는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좀 더 노력해보려 합니다. 오늘도 풀칠 고맙습니다. 억울함, 서운함, 분함, 바닥난 자존감 등 파편처럼 나뉘었던 감정들이 글로 쓰다 보니 그냥 스스로 위안을 얻네요. 사실 익명일지라도 누군가 내 감정을 읽는다는 게 두려웠는데 오히려 그 누군가 읽어준다는 생각에 이런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풀칠에다 주절주절 푸념하게 되네요. 매번 감사합니다! 파이팅! 마감도비 왜 이렇게 질문이 없냐는 말, 적극적이지 못하느냐는 말 들을 때마다 억울하고 서러웠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보통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주로 상사들) 자신이 퉁명스럽지는 않았는지, 업무에 짓눌리지 않을 만큼 상대방에게 일을 주었는지 등등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사회생활을 잘하는 건 뭘까요. 정말 어렵네요. 근무지까지 옮기시고 올해 고생스러운 나날이었지만 앞으로 남은 2020년은 목표 달성할 수 있기를 늘 응원할게요. 앞으로도 더 많은 푸념과 좋은 소식 부탁해요! 풀칠하는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읽은 풀칠 레터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 등을 아래에 있는 '나의 풀칠 이야기' 버튼을 눌러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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