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단순히 끼니로 대할 때 사람은 불행해진다. 그것은 곧 ‘여유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는 밥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밥 먹었어?”, “밥은 먹고 해야지”, “밥이라도 먹자”, “밥 먹을래요?” 따위의 말들에 숨은 의도는 그야말로 수만 가지에 달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모든 의미를 제쳐 두고 그저 기계에 연료 넣듯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본인 의지나 성향에 따른 결과가 아닌 한) 그에게 닿지 못하고 사라질 수만 가지 가능성에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식구라는 단어도 살펴볼까. 일상적으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들보다 더 내밀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인 가구인 나의 식구는 누구인가? 바로 회사 동료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아닌 이유는? 관계는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꼬박 9시간을 붙어 지내고 매일 한 끼를 같이 먹는 회사 동료야말로 ‘식구'에 걸맞다. 물론 회사 동료는 ‘일로 만난 사이’다. 하지만 일이 아니면 상종도 안 하는 건 좀 곤란하다. 그건... 삭막하다. 친밀감에서 비롯되는 신뢰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점심시간으로 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딱 30분만 더 줬으면 좋겠다. 메뉴 고민하고 식당에 가서 주문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꽉 찬다. 커피는 테이크아웃 할 시간이 나면 다행인 수준. 심지어 양치도 해야 돼. 이게 뭐 F1 피트 스톱도 아니고, 오전 업무에 치이다가 급하게 뱃속에 밥을 때려넣은 뒤 오후 업무로 끌려가는 삶? 이거 맞나? 회사는 내가 동료들과 잡담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혼자 쉬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함께 쉬는 시간도 중요하다. 회사 생활은 같이 하는 것이므로.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도 사바사는 진리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반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밑도 끝도 없이 쉬자는 입장은 아니다. 충분한 휴식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 사실 누군가는 딱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적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가볍게 밥 먹고 운동하는 사람도 존재하긴 하더라. 오히려 처지지 않고 효율적으로 운동해서 좋다고(실화다). 그러니까 점심시간... 사람마다 자유롭게 쓰게 하면 안 될까? 회사가 무너질까? 이미 자율 출퇴근도 보편화 되었는데 시간 활용의 폭을 조금만 더 넓혀보면 어떨까.
자율 출퇴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이 제도가 퍽 마음에 든다. 지하철을 놓칠까 봐 뛰지 않아도 되고, 궂은 날씨로 인한 교통체증에 안절부절못하지 않아도 된다. 팀원 간 스케줄 공유만 잘 되면 불편함을 느낄 일이 전혀 없다. ‘갑자기 찾을 수도 있는데 없으면 피해를 주는 것이니 모두가 정시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며 노발대발하던 상사와 일할 때가 아득히 먼, 그래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처럼 느껴진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말은 ‘약속한 시간에 늦지 말자'는 뜻이다. ‘9시까지 집합!’이 아니다. 그런데 그 상사는 후자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매우 클리셰적이게도, 그는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날을 빼면 정시에 자리에 있던 적이 없었다.
나는 9시에 출근한다. 그럼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굳이 왜? 그럼 이렇게 답한다. 6시에 퇴근하려고. 일단 나 자체가 아침형 인간이긴 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출퇴근 시간이 편도로 1시간 30분이다. 만약 11시에 출근하는 바람에 애매하게 8시에 퇴근하면 집에 돌아오기만 했는데 10시가 가까워져 온다. 밥 먹고 씻으면 잘 시간이다. 그렇다고 아침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느냐? 아예 오후도 아니고 또 애매하게 10시 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앞뒤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몰아주기로 한 거다.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율 출퇴근인데 9 to 6를 지키는 이유가 궁금한 것일 테다. 앞서 말했듯 9시까지 나가긴 하지만 예정된 미팅이 없는 한 그 시간을 칼 같이 맞추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안하다. 그저 나와의 약속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 약속은 평일의 여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회사가 짜준 대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내 의지가 반영된 일상을 살게 되는 셈이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한 시간 정도 더 자고 비교적 더 나은 상태로 출근한다. 업무 효율에도 매우 긍정적이다.
미국 역사학자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산업혁명을 이끈 가장 중요한 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닌 시계”라고 했다(분명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을 것 같아서 ‘산업혁명', ‘점심시간', ‘1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봤다). 일하는 사람을 문자 그대로 톱니바퀴처럼 여기던 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기능적인 의미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그러한 인식이 바탕이 돼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큰 흐름이 통제에서 자율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비롯해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시간대에 대한 통제권이 스스로에게 좀 더 주어지면 좋겠다. 하루를 통제할 수 있으면 일주일을 통제할 수 있고, 일주일을 통제하면 한 달을, 한 달을 통제하면 일 년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왠지 내 전체 삶을 디자인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이 연사 소리 높여 큰 소리로 외칩니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반으로! 늘려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