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힘든 일은 한번에 몰려올까?

라고 말하지만 사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한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힘든 일'에 대한 수많은 푸념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니까. 한번에 몰려오든, 주기적으로 돌아오든, 저마다의 속도로 오든, 힘든 일은 힘든 일이다. 힘든 일은 나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싫다. 원망스럽다. 왜? 힘드니까.

그래도 힘든 일은 한번에 몰려오긴 하더라. 인정할 건 해야지. 다만 그럴 땐 ‘힘들다'에서 끝나기보다는 차라리 아쉽다. 잡무만 없었다면, 아니 기한이라도 조금 넉넉했다면 나머지 중요한 업무들은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었을 테고 그럼 최소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낼 수 있었을 텐데.

전부 다 착각이다. 잡무 또한 엄연히 내 일이다. 스트레칭부터 운동이고, 설거지까지 요리이며, 평일도 인생인 것처럼. 저번엔 어쩌구, 이번엔 저쩌구. 다음에는 어쩌구와 저쩌구가 없을 테니 분명 성과를 내리라. 이런 태도, 수많은 모의고사 중 가장 좋았던 성적을 평소 내 성적으로 착각하는 행태와 똑같잖아?

치고 들어오는 일은 어떻게 방어할지, 방어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처리할지, 실제로 처리해내는 것까지 고민하는 게 내 일이다. 잡무는 중요하지 않지만 본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 경우가 많다.(그게 아닌 것들은 방어해야) 분명 주변에 앉은 동료들도 저마다의 잡무를 떠안고 있을 것이다.

공군의 모든 병과는 전투기를 하늘에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활주로를 청소하는 것과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에는 가치 우위가 있는가? 당연히 있지. 하지만 모두 다 공군의 일이다. 그러니까 잡무를 쳐낼 때는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난 지금 활주로를 청소하는 중. 빨리 끝내고 전투기 띄워야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짜증나는 건 여전하다. 활주로 청소에 시간을 빼앗기는 바람에 전투기 띄울 시간이 없어지니까. 청소 끝냈더니 전투기에 기름 넣으라 그러고, 기름 넣었더니 격납고 문이 고장났으니 고치라 그러고, 고쳤더니 전투기 색깔이 맘에 안 든다는 식이다.(실제로 그렇게 허술하진 않겠지)

‘연차별 직장인 속마음 비교'라는 제목의 직장인 짤방을 봤다. 내가 본 건 루피를 가져다 쓴 버전인데 원본이 뭔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루피는 우리네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드러낼 만큼 다채로운 표정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데서 경쟁력이 있다. 흠흠. 그러니까 그 짤의 내용은 이렇다.

연차별 직장인 속마음 비교

입사 1일 차: 넵! 넵!! 제가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입사 3년 차: 네... 아...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입사 10년 차: 제가 해요???

업무에 대한 관점이 생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일단 열심히 해보겠다며 이 일 저 일 다 받던 신입은 무언가 판단하기 시작하고 이내 판단을 실행에 옮기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어쩐지 루피의 표정이 점점 썩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쟤 눈빛 봐!) “제가 해요???”를 뱉고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하는 10년 차 직장인은 없다.

그 말을 내뱉으며 업무 리스트에 여유가 있는지 판단하고, 업무를 받는다면 우선순위는 어떻게 조정되는지 살피고, 다른 업무로 넘어가기 위해 달성해야 할 최소 퀄리티가 몇 %인지 가늠하는 것까지 빠르게 진행한다. 이걸 팀 단위에서 하는 게 팀장이고, 회사 단위에서 하는 게 대표다. 나는 나의 팀장이자 대표인 셈이다.

최근 1~2주는 다소 정신없이 바빴다. “아매오 님이 웬일로 이 시간에 남아 있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입사하고 처음으로 회사에서 저녁을 먹었다(바로 다음 날 두 번째 저녁을 먹었다). 주말 포함 4일간의 휴가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지난 주에는 어린이날도 있었네.

‘레게 강 같은 평화’를 아시는지? 하하와 스컬이 함께하는 레게 2인조 그룹의 이름이다. 강 같은 평화라고 하니 유유자적한 느낌이 드는데, ‘레게'가 유유자적하면 얼마나 유유자적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의 곡 ‘당 디기 방'의 뮤직 비디오에서는 흥보다는 평화로움이 더 먼저 느껴진다.

레게 강 같은 평화... 우리에겐 레게 강 같은 평화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