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하지만 [풀칠 99호]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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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무더운 여름과 함께 휴가 시즌이 다가왔네요. 다들 휴가를 기다리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저는 오늘도 이직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이직하느냐 현 직장에 남느냐. 직장인에게 끝나지 않는 고민이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요즘, 이 질문에 대한 불안과 강박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거 같아요.

여러분은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준에 따라 수락 혹은 거절하셨나요? 혹은 이직을 위한 여러분만의 기준점이 있으신가요?

이직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직 앞에서는 모든 직장인이 햄릿이 된다. 물론, 당장 도망쳐야겠다 싶은 지옥이 있지만 ‘이 지옥이 나을까 저 지옥이 나을까’하는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된다.

그동안 이직 제안 많이 받았어? 라고 누가 물어보면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이직 제안이라는 게 올 때가 있었다. 아마 인력풀이 좁은 산업군에 몸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엔 2020년 현 직장에 경력직으로 합류하면서 현 직군, 현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됐다. 이제 3년차를 맞이한 셈이다. 그 동안 헤드헌터나 구직 사이트의 제안 말고 진지하게 이직 제안을 받은 건 대략 5번 정도다.(이 글을 고치는 동안 6번이 되긴 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이직 제안을 얼마나 받는지 물어본 적은 없어서 스스로는 평균이거나 그 이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앞선 5번의 이직 제안 중 3번 정도 직접 실무자와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이직을 주제로 만나는 자리는 늘 어렵고 어색하다. 초반의 암묵적인 아이스 브레이킹부터 상대 회사에서 생각하는 내 연차, 제안하는 포지션, 요구하는 능력치 등등.

신기했던 건 이직을 제안하는 말들이 각양각색이었다는 거다. 예의바른 언어로 접근해서 제안 포지션 자체와 상관 없이 상대 회사와 담당자에 대해서 호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른 채 와서 자기 회사 자랑만 하다가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 경우 모두 제안을 거절했지만 만약 내 상황이 바뀌었을 때 어느 곳에 합류하고 싶은지는 명확해졌다.

꼭 걸러야 하는 이직 제안 멘트도 알게 됐다. 구체적인 처우 수준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매년 연말 인센티브를 제공하니 지금 있는 곳보다는 더 받지 않겠느냐는 말이나, 지금까지 해온 결과물을 보니 아직은 실력이 별로지만 우리가 앞으로 잘 가르쳐주겠다는 말 등등.

어떤 곳은 제안에 너무 고맙지만 이번은 서로 인연이 아닌 거 같다는 내 문자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왜요? 왜 안 와요?"라며 다짜고짜 되물은 곳도 있다.

이게 계약 상대끼리 만난 이직 제안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었지만 모두 실제로 들은 말들이었다. 별로인 회사는 이직 제안마저 별로인 셈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최근 들어서는 사람인이나 리멤버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헤드헌터 제안이 오곤 하는데 나에게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겨있고 답을 주어야 하는 정확한 기한을 알려줘서 감정 소모가 좀 덜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 하나. 한번은 이직을 놓고 너무 고민스러워서 친구들에게 현 직장과 제안이 온 직장에 대해 비교하며 한참을 떠든 적 있다. SWOT 분석에 가까운 내 장황설을 다 듣고 나자 친구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근데 다 좋은데 네가 가장 우선시 하는 기준을 먼저 정해야 할 거 같은데.”

더 나은 급여 수준, 순수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핏한 직장 동료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결국 그 동안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 눈이 너무 높은 걸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한다. 이직 제안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내가 이직 제안을 거절해도 되는 건가? 혹시 안정감 때문에 다신 오지 않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게 아닌 하는 불안감 말이다.

리멤버 커뮤니티 같은 델 들여다보면 비슷한 고민이 참 많은 거 같다.

“OO한 상황인데 이직하는 게 맞을까요? 남는 게 맞을까요?”라거나 “현 직장서 OO 만큼 받는 데 지금 OO을 받으며 이직하는 게 옳은 결정일까요?”

댓글에 항상 나오는 말. 정답은 없다는 것.

요즘은 내가 이직과 관련해 늘 떠올리는 풍경이 있다. 가끔 경기 북부를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오곤 한다. 그때마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중랑천을 따라 완만한 S형 도로를 달리다보면 다음과 같은 네비게이션 멘트를 듣게 된다.

“이 앞은 다시 합쳐지는 길이니 어느 차선을 달려도 무방합니다.”

이직에 대한 고민과 고뇌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나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이 앞은 합쳐지는 길이라고, 나는 잘 될 것이라고.

야망백수 : 새 직장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직은 꿈도 못 꾸고 있지만 남의 이직 이야긴 역시 재밌네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익숙한 장소를 등지고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나는 방랑자가 등장하는 이야기, 참 낭만적이잖아요. 알랭 드 보통은 '출근하는 순간 모든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라고 하긴 했지만, 이직을 꿈꾸는 직장인의 모습은 방랑자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랑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몇 년 전에 스페인의 비고라는 도시에 갔었던 적이 있어요. 터미널에서 내려서 숙소를 찾아보느라고 역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대뜸 잘 데 없으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물어봤습니다. 왜 나를 초대했느냐고. 멀리 여행 온 것 같은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아서 그랬다더군요. 이후로 둘 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 마디를 더 나눴는데...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줄 아는 법을 찾길 바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옆자리는 비어있는데요, 곧 채워질 것 같습니다. 신입을 뽑는 건 아니니 아마도 제 옆자리에 앉게 될 분 역시 익숙한 곳을 등지고 온 방랑자겠죠. 오시면 커피 한 잔 권해야겠습니다.

마감도비 : 놀랍게도 이 코멘트를 쓰려고 타이핑을 하려는 순간 리멤버를 통해 제안이 왔습니다. 누가 보면 리멤버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된 콘텐츠인 줄 알겠어요. 물론 당분간 이직할 생각은 없지만, 또 한 번 느낍니다. 이직 준비는 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래야 미래를 향해 겨눈 영점이 흩어지지 않는 듯해요. 제게 이직 제안을 주는 곳들은 어떤 곳인지 살펴봄으로서 역으로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 수도 있고요. 하하. 이직 생각이 크게 없는데 이직 제안을 받는 경험은 늘 짜릿하네요. 안정감과 새로움을 동시에 누리는 사치…!

파주 : 바로 위에 아매오님이 리멤버 무료광고를 기가 막히게 해주셨지만, 저도 리멤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리멤버 관계자분들 보고 계신지요?) 얼마 전 리멤버를 통해 들어온 제안은 참으로 달콤했습니다. 부모님이 들어도 알 법한 곳인데다 지금껏 제멋대로 밟아온 커리어를 한데 묶을 수도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매일 치킨을 시켜먹어도 충분할 만큼 월급이 크게 오르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모두들 잘 알지 않습니까. 주는 만큼 일을 시키는 게 회사의 일이라는 거. 예상된 격무는 차치하더라도 어떤 동료들과 어떻게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다른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서 제몫을 다 해내고 난 뒤에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싶습니다. 더이상 변변찮은 뒷모습을 한 채 도망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BY.야망백수

▲ N번째 첫 출근

by. 야망백수

“굳이 다른 해답 찾으러 다닐 필요 없이”

류시화 시인의 시, <내가 원하는 것>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우리는 왜 자꾸 여기엔 없고 저기엔 있을 것 같은, 다른 삶을 꿈꾸게 되는 걸까요? 여기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현실이 실제로 답이 없어서일까요?

우리 모두가 다른 해답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른 듯 닮아있는 시 한 편*을 더 소개해드립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 여기

풀칠러A

강남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오늘의 이야기 너무나 공감됐습니다. 저는 점심에 산책하는 편은 아니지만 출퇴근길에 차들이 무서워서 삼초에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걸어요 ㅠㅠ 큰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이 많아 차들이 무법지대인것처럼 다니나 봅니다. 사거리엔 어찌나 차들이 서로 머리부터 들이미는지.…

아매오

저도 있는 힘껏 머리부터 들이밀고 싶지만… 제가 지겠죠? 휴… 조심히 다닙시다 ㅠㅠ!

풀칠러B

올해 풀칠을 처음 알게되고 찐팬이 되었어요. 타던 열정이 다 사그라들고 직장생활에 대한 지침만 남았을 때 풀칠의 네 분 글들이 정말 얼마나 위로되고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주변에도 제 최애 뉴스레터라며 링크를 엄청 뿌리고 다녔습니다ㅋㅋㅋ 정신없이 상반기가 지나고 뜻하지 않은 흐름에 새로 이직을 해서 이번에 첫 월급을 받았어요. 매번 풀칠에 커피 한 잔씩이라도 보내고 싶다 생각했는데 드디어! 약소하지만 앞으로도 종종 풀칠에 커피 한 잔씩 보낼 수 있는 망중한을 가져볼게요! 그나저나 팬미팅은 안하시나요? 저 진짜 다들 너무 뵙고싶어요. 완전 팬입니다! 풀칠 글맛 너무 좋아요~

마감도비

커피로 저희를 혼쭐내주신 분이군요ㅠㅠ 게다가 주위에 홍보까지... 저희가 보내는 편지에 비해 너무 과분한 선물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더 진솔한 얘기들로 다가가겠습니다! 팬미팅 계획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속히 알려드릴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풀칠러C

강남과 홍대의 차이 너무 공감하며 읽었네요:) 홍대에 가는 건 즐거운데, 강남에서 보자고 하면 왠지 싫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게도 이런 이유가 은연 중에 있었나보다 했네요. 저는 얼마 전에 세종에 놀러갈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주말인데도 길가에 사람이 적어서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더라구요. 신도시라 그런지 차도 옆에 자전거 도로가 널찍하게 깔려있고 인도가 안쪽에 있어서 더 걷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사람도, 차도 서울에 비하면 현저히 적기도 했지만요! 산책은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내 생각에 스스로 집중해보는 시간이요. 살면서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면 좋을텐데 쉽지가 않죠?

아매오

산책이란 게, 생산성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생산성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있는 과감함도 건강한 삶을 위해선 필요하지 않나, 하는.

풀칠러A

다행히 업무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가끔은 뱌암도 나오고 두꺼비도 나오는 길이요~ 근데 산책로로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비가 많이 내렸던 날 산길이 험준한 돌길로 바뀌긴했지만 4계절의 풍경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점심먹고 걷는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에요

파주

저도 회사 바로 앞, 숲길로 통하는 산책로가 저의 포켓몬센터 같은 휴식처입니다. 오전에 된통 깨진 날이면 하염없이 숲길을 따라 걷습니다. 물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부리나케 돌아와야 하지만요. 돌아오는 길은 확실히 조금은 더 평안을 찾은 상태가 되어 일터로 복귀할 수 있더라고요. 역시, 죽으란 법은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