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파주입니다. 짧은 방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풀칠 107호의 주제는 프로입니다. 요즘 제가 자주 하는 고민은 '프로란 무엇인가'입니다. 마냥 돈을 받고 일한다고 해서, 그냥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프로라 부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이번 호에는 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 얄팍한 고찰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풀칠러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프로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프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프로란 무엇인가

프로란 무엇인가.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는 질문은 바로 이거다. ‘프로란 OO’이라는 식의 수많은 답을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프로란 도대체 무엇일지. 출근길 에스컬레이터에 영혼 없이 몸을 실은 채 프로 직장인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고민한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일하면 프로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내게는 그 기준이 너무 나태하게 느껴진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 그러니까 프로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보상이 아니라 사명감 같은 게 그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프로라는 단어에 대한 어떤 믿음과 동경을 품고 있다.

프로의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는, 당장 월급 받고 일하는 나를 스스로 프로라 부르기에는 부끄럽고 하잖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자기비하에 빠지려는 것은 아니다. 돈을 많이 받고도 아마추어조차 못 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으니까.

언젠가 한번 돈값 못하는 무리를 제대로 만난 뒤로, 프로에 대한 기준이 더욱 모호해졌다. 프로란 무엇인가. 난제 앞에서 고민을 해보아도 단번에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프로의 삶1 - 아이돌의 비하인드

마땅히 프로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돈 받고 하는 일을 아주 능숙하고 충실하게 해내는 사람.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는 사람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프로 중 하나는 ‘아이돌’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쭉쭉 뻗은 팔다리로 무대에서 곡예에 가까운 춤을 선보이는 동시에 음정의 동요 없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을 볼 때마다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물론 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그들의 멀티테스킹 능력이나 신체적 우수성, 무대 위에서 뽐내는 그들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면에 있는 것들,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며 그들의 프로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시즌마다 새로운 앨범과 무대를 꾸며야 하고 매일 같이 몇 번의 실전(무대)을 해내야 하는 게 바로 아이돌의 일이다. 아이돌의 하루를 이쪽 업계로 옮겨보자면 하루도 빠짐없이 제안서를 쓰고 한 주에 서너 번씩 PT를 하는 셈인 거다. 그러니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 숍을 가고, 시험과도 같은 무대를 몇 개씩 해내고, 또 내일을 위해 연습하고… 심지어 그 바쁜 틈새를 댄스 챌린지 짧은 영상 같은 걸 찍으며 하루를 촘촘히 채운다.

아이돌의 삶을 직장인으로 치환하면 새벽출근에 밥먹을 새도 없이 업무와 회의가 치고 들어오고, PT까지 해내야 하는 셈이다. 야근은 물론이거나와 익일 퇴근을 감내해야 할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짓을 매일 같이 해내는 그들이야 말로 프로라 불려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

프로의 삶2 - 벨로주 아저씨

내가 아는 또 다른 프로의 삶은 홍대에서 공연장을 운영하는 음악평론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팟캐스트에서 전해 들은 그의 근황은 그야말로 바쁘다 바빠 현대인의 초상이었다.

그는 한 곡을 두 번 듣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저 멀리 미국과 아일랜드, 심지어는 인도네시아 음악까지 세상에 하도 노래가 많아서, 발매되는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절대로 두 번 듣는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도 두 번 들을 새도 없다니.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지금 행복할까?

그 사장님이 기획한 공연을, 그의 공연장을 마치 포켓몬센터처럼 드나드는 나는 따지고 보면 그의 고통에 비례해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었다. 음악평론가로서 그가 큐레이션한 노래나 공연장 사장님으로 밤낮으로 머리를 짜내며 만든 무대가 내게 2시간짜리의 행복으로 포장되어 직배송되는 셈이니까.

더 많은 노래들을 섭렵하느라 같은 노래를 두 번 들을 시간도 없는 음악마니아. 그야말로 음악에 폭 싸인 채로 사는, 그만큼이나 자기 일에 최선인 삶은 어떨까? 물론 행복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새삼 그의 노고와 프로페셔널함에 고마움함을 가져야 하는 입장에서 주제 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프로의 삶3 - 과학 문제집을 푸는 편집자

지인 중에도 프로의 삶을 사는 이가 있다. 과학/철학 분야의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Y는 순도 100%의 문과인이었다. 그러니까 문장과 씨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 Y는 과학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이였다.

얼마 전 만난 그는 요즘 주말마다 고등학교 과학문제집을 푼다고 답했다. 자신이 편집하는 책의 내용을 더 정확하고 쉽게 풀어내려면, 십 년 가까이 뒤쳐진 공부를 따라잡으려면 이 방법뿐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편집자 Y의 그런 태도야말로 프로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업으로 삼은 일을 위해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삶이 곧 프로다웠으니까.

그는 본인의 능력부족을 자책하며 한사코 프로는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Y가 보여주는 겸손 또한 프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덕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프로 직장인이 분명했다.

준프로 직장인

여전히 프로라는 이름에는 역시나 나름의 비장함이 묻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나 회사에서는 더더욱이 그럴 수밖에.

마침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팟캐스트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러 들어간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에 90%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구슬픈 사연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그 좋아하는 10%의 일을 하기 위해 9할의 고난을 꿋꿋히 버틴겠다는 다짐도 함께.

하기 싫은 일은 곧 죽어도 하기 싫은 내게 프로 직장인이 되는 건 이미 글른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내 주변에 장인처럼 일에 임하는 프로 직장인들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내가 세운 목표는 준프로는 되어보자는 거다.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가짐을 가진 게 진정한 프로라면, ‘잘'을 빼고 그냥 해야 한다는 게 준프로의 자세다. 내가 생각하는 준프로의 기준이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까 하기 싫어 죽겠네라는 한탄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도 해야 할 일을 시작하고야 마는 것. 내가 맡은 업무만큼은 꾸역꾸역 해치우는 것.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싫은 것을 감수해 내는 게 바로 준프로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잘해야겠다는 부담을 내버려둔 채 '그냥 하자'라는 마음으로 덤벼드는 준프로의 자세. 어디 한쪽에 나사가 빠진 것만 같은 준프로의 정신을 장착하니 업무에 착수하는 데에도 제법 속도가 붙는다. 프로가 되기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마냥 나쁘지 않다. 준프로 직장인. 이 편이 내게는 어울린다.

그런데, 저는 ‘프로다움’을 추구하는 게 솔직히 조금 두렵습니다. ‘프로다움’을 추구하다 보면 근로계약서 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 이상의 퍼포먼스가 기본값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요. 기본값을 못 지키면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겠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또 다른 부작용도 있습니다. 프로다움에 너무 심취하면 누군가의 헌신을 너무도 쉽게 ‘밥값’쯤으로 취급하게 될 텐데, 저는 이렇게 심술궂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심술을 많이 부리면 팔자주름이 깊어집니다.

건강과 미용을 위해서라도 저는 준프로 상태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네요.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준프로 상태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네요. 그래도 가끔 운이 좋아 프로다운 뭔갈 해낸다면 이렇게 말해보렵니다. ‘이게 제 일인 걸요’

아매오

파주

마감도비

야망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