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직을 제안해온 기업으로부터 희망 연봉을 맞추기 어렵다는 문자를 받았다. 과도할 만큼의 액수를 제시한 게 아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온 데다 면담을 하고 경력 기술서를 다시 작성하고 등등의 과정을 거치느라 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부아가 치밀었다.

사실 기분이 더 나빴던 건 회사의 태도였다. 어떤 절충의 여지 없이 단칼에 ‘고멘!’을 외치고 뒷걸음질 쳐버렸기 때문이다. 저쪽에선 ‘이거 못 맞춰줬으니 안 오겠지’하는 심리가 있었을지 모르나 사실 나는 연봉보다도 워라밸을 좀 찾고 싶은 상황이었다.

풀칠에서도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일이 너무 몰리는 상황이라 평일 저녁에는 내 일상이랄 만한 게 없었다. 커피와 함께 진행한 면담에서 그 점을 어느 정도 암시하며 같이 일을 나눠할 사람은 있느냐, 내 사수는 누구냐, 외근 시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하느냐 등등을 물어봤던 건데.

지난 2년간 진행한 이직 면담 또는 면접 수가 한 자리를 넘기려 한다. 정말 다양한 상황이 있었다. 평소 알던 실무자가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깔며 이직 제안을 해오기도 했고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받았더니 이직 제안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절반이 이미 시작부터 이직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그건 업계의, 더 나아가 중소기업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서 맡게 될 일을 물었을 때 ‘합류하게 되면 논의하게 될 거’라고 눙친다거나, 처우나 복지를 묻는 질문에 ‘아묻따’를 시전하며 ‘지금 보단 많이 줄 거야. 근데 어느 만큼 받아야겠다고 선이 있는 건 아니지?’하고 같잖은 기선제압을 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실무자와 긴밀히 논의한 끝에 이직 제안을 수락하고 절차를 진행했는데 정작 임원 면접에 들어가 보니 이런 맥락이 생략된 채 ‘사람인 지원자1’이 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마감도비님이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너, 너네가 오라고 했잖아...’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데 다짜고짜 전화가 와서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고 마감도비님의 연봉은 OO이다, 라고 구두로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지 물으니 없다고 하기에 나도 구두로(!) 그 조건이면 가기 어렵겠다고 말하는, 마치 연인 간 이별 통보 같은 전화를 굳이 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 업계동료 A와 밥을 같이 먹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같이 밥을 먹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끼리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참 의미심장한 일이다.

“마감도비님, 저 마감도비님이라서 여쭤보는 거예요. 혹시 지금 몸담고 계신 회사 어때요? 제가 가면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렴풋하게 예측은 하고 있던 일이라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지금 그 포지션으로 합류하는 건 나쁘지 않아요. 사수도 좋은 사람이고. 업무도 지금 하시는 일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전임자는 일이 몰려서 좀 힘들어했는데 얼마 전에 새로 한분이 오셨으니 일을 나눠 맡을 사람도 있고. 다만, 연봉제라 협상이 중요한데 처우나 조건은 제가 어떻게 확답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워서…….”

“아 그건 괜찮아요. 큰 도움이 됐어요. 저한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분인지가 중요했거든요. 해보고 싶은 기획도 있구요.”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렇게 빡빡하지 않은 곳이거든요. 아이디어 개진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편이구요. 제가 지켜본 A님이라면 아마 잘 적응하실 거 같아요.”

생각 정리가 좀 되었다며 뒤돌아서는 A의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영자도, 관리자도 아니지만 말이다. 급여, 워라밸, 복지, 사내문화 등등 직장인이 바라는 점은 다양하다. 바라는 수준도 다양하고. 그 점을 알아주면 서로 논의하기도 훨씬 수월할 텐데.

회사가 물건을 파는 것만큼이나 직장인의 마음을 사는 게 중요한 시대다. 급여가 됐건 워라밸이 됐건 복지가 됐건 사내문화가 됐건. 회사들도 이제 우리 마음 사는 법을 좀 알아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