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요즘 주말마다 전국의 예식장을 순회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몸이 가지 못하더라도 축의를 양껏 담은 봉투를 대신 보내죠. 무의미한 일도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고 하면 어떤 패턴이 생기고 그 패턴에서 의미를 뽑아내기도 하죠. 남의 결혼식이지만 한참 다니다 보니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내 결혼식도 아닌데…

여러분도 결혼식 자주 다니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결혼하는 사람들, 여러 의미로 대단하지 않나요?

무당인 이모는 요즘 사주풀이도 한다. 신내림을 받은 지 오래된 무당은 떨어진 신력을 보완하기 위해 명리학을 공부한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신력도 노화하다니 그것만큼은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화에 못이겨 불러준 생년월일시를 이모가 그대로 사주풀이 앱에 입력했다. 나름 전문가의 사주풀이인데 앱을 활용하는 모습이 왠지 생경해 흘끗 쳐다봤다. 색색의 한자들이 이모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운다. 봐도 모르겠다. 역시 전문가용 앱은 다르다.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아는 만큼만 보는 것이다. 뭐시기 리터러시를 길러야 하는 까닭이다. 내일 출근해서 스몰토크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연애운이나 봐달라고 했다.

“여자운이 많네. 그런데 연애운은 없어.”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 로드가 걸렸다. 무슨 뜻이지?

“주변에 여자는 많을 거라고. 근데 인연은 없을 거라고.”

이런 얘기였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될 사람 중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여성 중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될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당장 연애가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운세풀이에 관심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시시한 결과를 받아 들고 나니 묘하게 열이 받는다.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인 기분이랄까. 어쨌든 내일 점심시간에 동료들에게 풀어줄 썰 하나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여자운은 많은데 연애운은 없다니. 웃기긴 하네. 지난해 3월의 일이었다.

이모의 풀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올해 초에는 지인이 타로를 봐줬다.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꾸준히 연습도 했다고 한다. 몇 가지 소재를 받았을 때 짧은 시간에 말이 되는 이야기를 조립해내는 힘을 기르기 적합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이만한 게 또 없다고. 곧 흥미로워진 나는 카드를 세 장 뽑았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트로피를 치켜 들고 머리엔 왕관을 쓰고… 이건 모르고 봐도 알겠다. 대박 카드만 뽑았다는 사실을.

“와, 아매오 님, 올해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될 것 같아요. 여기 막대기 들고 있는 거 보이시죠? 이게 일이나 공부 같이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과제를 뜻하거든요. 지난 3개월 사이에 그런 게 생겨서 연애에는 전보다 신경을 덜 쓰게 되셨네요. 근데 앞으로 3개월 내에 아매오 님의 노력과 별개로 대운이 찾아올 거 같아요. 지금의 아매오 님은 모르는 아예 새로운 사람이 갑자기 인연으로 다가올 거예요.”

세상은 내게 관심이 없고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으며 30년을 살았다. 가만히 있어도 대운이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넙죽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꼭 운세풀이를 믿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로를 봐준 지인은 대운이 찾아올 것이니 까불지 말고 할 일이나 잘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할 일을 했다. 노력과 별개로 찾아오는 대운이라면 그것은 결국 우연히 발생하는 이벤트일 것이니 내가 뭘 어쩔 수 없지.

얼마 안가 정말로 우연히도 대운이 찾아왔다.

“당연히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으니까 결혼하는 거지. 근데 그런 생각도 들어.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것 같다 싶은데 마침 옆에 있으니 이 사람이 결혼할 만한 사람인지, 나는 왜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는 거지. 애초에 ‘결혼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결혼은 그냥 딴 세상 얘기로 느낄 것 같긴 해.”

오랜 친구 A의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B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고 소식을 전한 참이었다. 작은 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는 B는 작년에 애인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쯤부터 조금씩 대화를 나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장면 두 장면 미래를 그리다 보니 어느새 결혼 날짜를 찍어 놓고 역으로 일정을 계획해 나가는 스스로가 보였다. 물론 기쁜 일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들뜬 채로 보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 그런 거’라고 하지만, ‘다 그런 거’라는 말을 믿고 남은 일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해야 한다니 의심스러운 거지. 그래도 결혼인데. 아니, 야. 결혼 정도면 뭔가 확신 비슷한 게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아, 물론 확신하지. 확신하니까 결혼하지. 근데 그 확신이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뭔가 좀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되나?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그래. 진짜 다 이런가?”

인연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개인의 인생에서 결혼이 갖는 무게감이 예전보다 가벼워졌고 그 의미가 다양해지기도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것을 결정하는 시점에는 그들 관계의 지속을 평생, 아니 최소한 수십 년은 멀리 내다보겠다는 다짐이자 약속 아닌가. 그런 다짐이자 약속을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인연은 필연이라고 생각해야 할 텐데. 만에 하나 그 인연이 우리가 살며 접할 수 있는 여러 우연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평생 중 한때로 스쳐 지나갈 우연일 수도 있는 것을, 나의 경우에는 노력과 별개로 찾아온 ‘대운’을 필연으로 확신하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화려한 세레머니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주 조금은, 그것이 웬만해선 돌이킬 수 없도록 사회적 도장을 찍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레머니를 위한 비용의 출처는 주변 사람들이다. 축의금. 그것은 결혼 당사자의 사회적 평판과 명예와 신뢰 등등등을 눈에 보이는 숫자, 즉 현금으로 환원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베팅한 인연이라면 절대 우연이어선 안 되지. 암. 안 되고 말고. 우연의 기미가 보이더라도 어떻게든 필연으로 꾸며내야 한다.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만큼.

그러나 우연 어쩌구 필연 저쩌구 하는 것도 경험이 없는 나의 관점에서 빚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사실 삶의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전부 다 우연에서 비롯돼 필연으로 나아가는 것들이니까. 태어날 때부터 가족인 부모, 형제, 친척과의 인연은 어떤가. 오히려 그것들이야말로 너무나도 우연적이다. 인간관계에 원래 확신 따위는 없는 것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확신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 있을 뿐. 그러고 보니 오늘 결혼한 A 커플도 대학생 때 떠난 배낭여행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지.

앞으로는 축의금 봉투에 그런 마음을 두둑하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야, 부디 너의 확신을 오래오래 유지하길. 확신이 환상이라면 언제까지고 환상 속에서 살아가길. 그래서 끝에는 그 확신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음을 회고할 수 있길.

최근에 친구에게 청첩장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결혼을 하냐고 물었더니 덤덤하게 말하더라고요. “취업도 했고 이직도 했고 이사도 했는데 결혼이 뭐 별 일인가” 제겐 친구가 말한 사건들이 ‘인생 퀘스트’의 시간 순 나열이라기보단, 최선을 쏟아부어 마침내 옳게 만들어낸 선택들로 들렸습니다. 취업, 이직, 이사, 고백, 이별같은 중대한 선택들에 최선을 다하며, 숱하게 미지를 극복해낸 경험을 쌓았는데 결혼이 ‘별 일’일 리가요.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친구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이번 호 품앗이를 준비하는 동안엔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난 호 에세이, <개인사>의 주제가 ‘개인사’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사>는 저의 개인사를 ‘<    >’ 사이에 들어가도록, 가위질한 현실을 못나게 꿰맨 것일 뿐인데, 진실된 위로를 받는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개인사를 둘러싸고 오고간 말들을 일종의 공공장소인 지면에 공개하는 게 적절한지도 고민이었습니다.

이런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품앗이를 싣기로 한 이유는, 지금은 연민의 존재를 증명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보내주신 마음은 <풀칠>하는 데  귀하게 쓰겠습니다. 따뜻한 마음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호 에세이 당번 야망백수 드림

아매오

마감도비

야망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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