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밥그릇 엎어치기 한판 [풀칠 112호]

2022. 11. 16.

*풀칠 112호 표지는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툴, 'DALL E 2'를 사용해 작업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입력한 명령어 : "사람과 인공지능이 밥그릇을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다”("People and robots fighting over a bowl of rice”, 파파고 번역)

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파주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하죠. 글과 그림은 물론 영상까지도 인공지능이 마구마구 생성해낸다고 합니다. 최근에 저도 글쓰기 인공지능을 처음 사용해봤는데요. 기대했던 것보다 똘똘하더라고요. 5초 만에 문장을 만들어내고, 또 그중에서 나은 문장을 다듬어 편집하기도 하고...

인공지능이 밥그릇을 위협한다는 게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만. 새삼 저의 밥그릇에도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어떤가요? 인공지능으로부터 안전한가요?

“마케팅 문구, AI가 대신해드려요.”

얼마 전 메일함에 매혹적인 제목의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마침 카피 한 줄 쓸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내느라 애꿎게 머리카락을 뜯어내던 참이었는데. 견인성 탈모의 문턱에서 만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메일 속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 보니 ‘최신 광고 트렌드를 학습한 AI가 직접 광고 카피를 작성해 줍니다’라는 소개문구가 보였다. 포함됐으면 하는 키워드 몇 개와 내가 원하는 스타일 같은 걸 입력하면 AI가 자동으로 SNS 광고문구, 세일즈 이메일, 제목까지 그 목적에 맞는 문구를 뽑아준다고 했다.

간단한 가이드에 따라 몇 개의 키워드를 입력했다. 손흥민, 축구, 맥주, 이벤트. 공란에 대강 떠오르는 단어를 입력하면서 한편으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었다.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현명하고 성실한 직장인의 태도일 텐데. 잔머리 원툴의 직장인인 나는 의심 9할, 기대 1할의 마음으로 글쓰기 인공지능을 작동시켰다.

충분히 실망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기대보다 글쓰기 인공지능의 능력은 출중했다. 자동 생성을 누른 뒤 나타난 문장은 두서없이 나열한 키워드를 이리저리 잘 뒤섞어 만든 그럴듯한 SNS용 문구였다. 더 놀라운 건 자동 생성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카피를 하나씩 단 0.5초 만에 만들어낸다는 거였다. 이까짓 카피 몇 줄 뽑아내는 일이야 새로고침 할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글쓰기 인공지능이 꽤 잘 작동한다는 걸 확인하자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간단한 SNS용 문구뿐만 아니라 구글 검색 광고, 당근에 올릴 글과 내일까지 써내야 할 보도자료까지. 온갖 종류의 글에도 글쓰기 인공지능이 제법 잘 작동했다.

‘S급 쳇 베이커 LP 이건 못 참지’, ‘떡볶이 많이 먹으면 빨리 죽는 이유’…. 한껏 신이 나 쓸 곳도 마땅치 않은 카피를 잔뜩 만들어대다가, 나보다도 더 Z세대스러운 바닥글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두고 일자리 불안을 토로하는 운전기사나 그림 그리는 AI '달리2'로 인해 위기감을 토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모습이 꼭 이랬을까. 직장인에게 무서운 건 귀신이나 유령 따위가 아니라 나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 그것도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AI라는 걸 자각하자 알 수 없는 공포를 주었다.

인공지능이 내 밥그릇을 앗아가는 건 먼 미래의 일이라고 믿어왔건만. 대책 없던 낙관은 순식간에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가져왔다. 어디서 읽었던가.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소설로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던데. 나의 어설픈 작문 실력으로는 글쓰기 인공지능에게 밥그릇을 뺏기는 게 아닐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럴 날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누군가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을 벌인다고 나서면, 기꺼이 동조할 마음까지도 슬며시 솟아났다.

*러다이트 운동 : 19세기 초 영국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섬유 기계를 파괴하는 등 신기술에 반대했던 사회운동

‘10배 빠른 글쓰기. 이제 글쓰기 고민은 그만!’ 메인 페이지에 있는 저 카피도 분명 글쓰기 인공지능의 작품이겠지. 그 기똥찬 슬로건 앞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5초면 충분하다는 글쓰기 인공지능 앞에서 5분을 내리 고민하며 겨우 한 줄을 쓰고 마는 나의 능력이 몹시도 미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한 허탈감에 무의미하게 문장 생성을 반복해서 눌러댔고, 그럴 때마다 인공지능은 점점 더 완성도 높은 문장을 만들어냈다. 마치 인간의 질투가 나의 힘이라는 듯. 인공지능의 무능함을 증명하려 애쓸수록 인공지능은 조금씩 유능해졌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내가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건 글쓰기 인공지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단체방에 자리비움을 고지하곤 화장실로 뛰쳐들어가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어냈다. 피부가 따갑다고 체감될 정도의 고온이었다. 온갖 잡념과 두려움이 온수와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글쓰기 인공지능이 수 백 개의 카피를 써냈을 만한 시간을 샤워로 할애한 뒤 한껏 가뿐해진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덜 말린 머리를 급하게 닦아내면서, 바나나맛 우유를 들이키고 난 뒤 키보드를 무작정 두들겼다.

아까는 한참을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문장들이 얇은 귤껍질을 까듯 술술 흘러나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몇 개의 문장을 써냈다. 아까 글쓰기 인공지능이 생성했던 문장과 나란히 두어 비교해봤다. 아무래도 나의 취향이 반영된 편파판정일 게 뻔했지만. 역시나 내가 쓴 쪽이 약간은 더 나아 보였다.

누구도 패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승리감에 도취된 채 남은 우유를 마저 들이켰다. 글쓰기 인공지능에게 한껏 반했다가 갑자기 열패감을 느끼고 도망치고, 다시 자긍심을 되찾고... 허튼 시간을 낭비하느라 그날 해야 될 일이 잔뜩 지체된 채였다. 따지고 보면 패배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지금은 글쓰기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주거나 열등감 같은 걸 느끼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먼 미래를 걱정하며 조급해 할수록 퇴근만 늦어질 뿐. 언젠간 인공지능이 내 밥그릇을 빼앗으러 올 게 분명하지만. 이른 퇴근에 하등 도움되지 않을 막연한 불안감은 묻어둔 채. 오늘만큼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 인공지능 낚시

야망백수 : 인공지능 글쓰기 서비스, 저도 써봤습니다. 쓸 만하더군요. 아마 점점 더 쓸 만해지겠죠. 이번 풀칠 표지는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 달리로 만들어봤는데요, 1초 만에 원하던 이미지를 완성시켜주더라고요. 편리하면서도 뭔가 허탈했습니다.

허탈한 기분을 느낀 이유는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며 최선이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자판을 두들기는 시간에 품은 애증이 꽤 깊었던 탓이겠죠. 영 보잘것없는 재주지만 머릿속 상을 손으로 출력해 내는 재미를 꽤나 애지중지했던 탓도 있을 것이고요. 인공지능으로 순식간에 결과물을 얻는 경험은, 마치 게임에서 치트키를 써서 보스를 한방에 죽였을 때의 기분 같았습니다. 결과는 순식간에 얻지만 과정의 즐거움은 생략된다는 점에서요.

가까운 미래엔 창작의 결과물과, 창작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분리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미술관에는 예술가의 눈물 한 방울과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세트로 전시되겠죠. 이걸 인간의 영역이 좁아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물질적 결과물-성과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족족 써보렵니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요.

아매오 : 창의성을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일컫는 태도에 은근한 반감을 가지면서도(인간의 학습 과정 또한 결국 머신러닝이랑 다르지 않잖아),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에 대한 설명을 특이점이라는 말로 퉁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과학적,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창의성’은 역시 인간 자신조차 기원을 모르는 인간만의 능력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이 유일하게 손발을 그리는 데 서툴러서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인간 알바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역시 두려워집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보조를 하는 게 아닌 인간이 인공지능의 보조를 하게 되는 무서운 상황. 저는 피할 수 있을까요?

마감도비 :

*편집자 주 : 취재 미팅을 갔다가 연락이 두절된 마감도비의 코멘트를 글쓰기 인공지능 서비스, '뤼튼'에게 부탁해봤습니다. 입력한 명령어는 “인공지능은 에디터의 밥그릇을 뺏을 것인가?”입니다. 1초만에 답을 얻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글쓰기 영역에까지 진출했는데 전문가들은 향후 몇 년 내에 기존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 우려스러운 시선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인건비 절감효과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어 자유로운 근무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다만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인 일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사회 변화에 대비하여 각자의 역량을 키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네요.

▲ computerization

N년차 풀칠러, 인공지능 개발자

마감도비 : 인공지능 개발자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란 뭔가? 인공지능 개발자는 무엇을 하나?

풀칠러 : 현시점에서 '인공지능 = 매개변수가 아주 많은 함수를 아주 많은 데이터로 fitting시킨 것'이고, '인공지능 개발자 = 아주 많은 데이터를 잘 정리해서 함수에 feeding시키는 사람'이다.

마감도비 : 오호,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일이라, 꽤나 쉽지 않아 보이는데 할만 한가?

풀칠러 : 좋은 데이터를 얻는 것과 데이터를 잘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마감도비 : 인공지능은 정말로 휴먼의 밥그릇을 위협하나?

풀칠러 : No.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그냥 도구일 뿐.

마감도비 : 인공지능 개발자로서, 여태까지 본 인공지능 중 가장 쓸모없는 인공지능은…?

풀칠러 : 지금까지 본 것들은 다 어디엔가 쓸모가 있었다.

풀칠러A

누가 결혼하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사주와 결혼 이야기에 공감했다가, 풀칠러들의 따뜻한 위로에 먹먹해지는 레터였네요. 마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처럼요!

아매오

지난주… 이런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습니다. 성공적이었다면 성공적이었고, 악질이라면 악질인 어그로였네요. 하하. 그래도 내용을 즐겨주셨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풀칠러B

저는 4년차 유부로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임했습니다 ㅎㅎㅎ 취미도 취향도 하나도 안 맞는 우리가 대화가 잘 통하고 인생관이 비슷하기 때문에 결혼했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 전에는 혼자만의 인생에 대해 고민했었다면 이제는 나와 배우자, 그리고 양가 부모님, 형제자매들까지 함께 한다는게 인생의 깊이가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야망백수

결혼을 한 지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나밖에 모르는데, 나도 결혼 할 수 있을까.’ 혼자만의 인생에 집중하는 게 생존에 최적화된 전략인, 그런 삶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도 시선을 내게 고정시켜두는 것이 위태롭단 생각을 해요. 타인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확장시키는 풀칠러님이 부럽네요! 저도 그런 모험을 하게 될 날이 오겠죠?

풀칠러C

애매하게 친한 친구가 청첩장이나 저녁 약속 없이 카톡으로 '너 올거지?' 하고 확인 연락을 해왔어요. 식장 예약하던 1년 전에 무조건 가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친구가 뭐하고 사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를 만큼 멀어졌어요. 그렇게 꽤 친했던 친구는 애매하게 친한 포지션이 되었고요. 사실 앞으로 이 친구랑 저는 점점 더 멀어질 것 같아요... 이런 사이라면 결혼식을 가는 게 맞을까요..?

파주

친구와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면... 풀칠러님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인생에 아마도 한 번뿐일 날을 함께 축복해 주는 것도 충분히 좋은 일이고요. TMI이지만요. 요즘 저는 지인들의 결혼식을 가는 게 그렇게 재미지더라고요ㅎㅎ

풀칠러D

문득 풀칠러들의 직업들이 궁금해졌네요. 제 직업은 말하면 다시 한 번 물어보는 직업이거든요 ㅎㅎ 흔하지는 않지만 그 업무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가 하는 그런 업무예요 궁금하시죠?(궁금했으면 합니다) 직업이란 다양한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는 사람들의 직업만 보니 색다른 직업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세상은 크고 직업은 다양하구나 생각해요 직업마다 겪는 직업병, 고민, 편견 등이 제각각이라 대화 할 때마다 신기합니다 풀칠을 볼 때마다 이 글들을 볼 풀칠러들은 어떤 직업일까? 궁금합니다.

야망백수

어떤 직업일지 궁금하네요. 제가 먼저 까겠습니다. 제 직무는 에디터입니다. 에디터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에디터=글 쓰는 사람'이죠. 디자이너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하는 사람'이듯, 에디터도 '에디팅하는 사람'인데, 에디팅이 뭐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말하려면 혓바닥만 길어지는 게 잔잔한 고민입니다. 수행하는 기능과 이미지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직무가 어디 있겠냐마는…그냥…그렇다고요…다들…무슨 일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