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직접 받아보니... [풀칠 124호]

2023. 2. 8.

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얼마 전 실업급여를 받았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실업급여를 다 받아보네요. 촤하핫. 그런데 때마침 실업급여 제도를 ‘고도화’ 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들려옵니다. 받기 쉽고 많이 받는 탓에 구직 의욕을 떨어뜨린다나 뭐라나.

기사를 읽고 있으니 불로소득으로 놀고 먹는 사람 취급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뭐, 그 기회에 실업급여가 제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제도적인 목적 같은 거 말고.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

여러분은 실업급여를 받아보셨나요? 받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나요? 어땠나요? 또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구직급여 XXX,XXX원OO은행입금되었습니다.서울△△센터(다음실업인정일:2023/MM/DD)’

퇴사하고 한 달이 지났다. 첫 *실업급여가 들어왔다. 서류 접수와 온라인 교육과 센터 방문 그리고 또 온라인 교육을 통한 실업 인증 절차까지 마친 끝에 드디어. 고정비만도 못한 액수지만 입출금내역에 플러스를 기록하는 게 어딘가 싶다. 그나저나 이것도 공문인데 띄어쓰기는 제대로 좀 해 주지. 고용보험 프로필을 내건 카톡 채널에서 보낸 메시지가 아니라 일반 문자였다면 스팸 문자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행여나 링크라도 걸려 있었다면 스미싱으로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다음 달 생활비를 어떻게 쓸지 계획한다. 어쨌건 모아뒀던 돈을 안 쓸 수는 없다.

*재취업활동으로 실업인정을 신청해 받는 급여의 정확한 명칭은 ‘구직급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실업급여’는 다양한 급여 및 수당을 통칭하는 용어로서 엄밀히 말하면 구직급여보다 넓은 의미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미 입에 붙은 대로 ‘실업급여’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실업급여가 구직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고도화’다. 관련 기사에서 중소기업 경영자의 하소연을 인용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요. 실업급여 받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네요.”라고. 은행 앱을 켜서 실업급여 입금 내역을 재차 확인했다. 가만 있자. 이게 15일 치에 해당하는 액수이니까 28일치를 온전히 받는 2회차에는 대충 두 배를 받을 것이다. 첫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보다 많군. 팩트였다. 실업급여 받는 게 일하는 것보다 낫네.

실업급여보다 적은 월급으로 사람을 부리려는 심보에 대해 성토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여기서는 판단을 차치하려고 한다. 대신 ‘실업급여 받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을 짚어보려고 한다. 정말로 그런가. 풀칠을 보내는 우리는 풀터뷰 마지막 질문에서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라고 말한다. 그리고 “‘돈 벌어야 해서’ 말고 다른 일하는 이유”를 묻는다. 일의 의미나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로 돈 외의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밥벌이 에세이 레터’를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고.

그러니까 ‘실업급여 받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려면 ‘일’이 사라진 나의 일상을 무엇으로 채워가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월요병을 앓지 않아도 돼서, 출퇴근길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서, 사무실에 앉아 무의미하게 8시간 혹은 그 이상을 보내지 않아도 돼서 좋은 거라면(물론 좋은 건 맞지만) 어쩐지 조금 공허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행복한 삶보다는 무언가를 해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의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 이때 그 ‘무언가’를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 실업급여인 셈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크게 두 가지로 일상을 채우는 중이다. 하나는 취미의 시간을 늘리기. 독서와 글쓰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또 본격적으로 사진을 해보려고 카메라를 샀고 출사를 다니고 틈틈이 보정도 한다. 둘은 커리어 정리하기. 복사+붙여넣기로 이직하는 것이 불가능한 직무로 일해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었다. 그동안 했던 업무를 잘개 쪼개 글로 쓰고 쪼갠 업무를 바탕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과 소화할 수 있는 직무를 살핀다. 물론 ‘구직’을 해야 하므로 채용공고를 뜯어보고 실제로 지원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원없이 하는 것은 물론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퍽 즐겁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거기서 내게 유효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정도가 높았던 탓에 회사가 잘 되고 안 되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퇴사를 했고 여러 활동을 했는데 회사 이름을 떼고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이뤄낸 성취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확신을 줬는지 모른다고. 나는 이런 것을 이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매오 님도 이 기간에 무언가 완결짓는 경험을 꼭 해보라고. 작더라도 자기 이름으로 한 가지 성취를 이뤄내 보라고.

그런데 이건 사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 하는 게 조금 심심한 결말인 것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는 하기 싫은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크고작은 성취를 하면서 자신만의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물론 “일은 그냥 돈 버는 수단”이라는 입장을 깔아뭉개고 싶진 않다. 다만 조금이라도 그 반대편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법한 이야기 아닐까. 회사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실업급여를 받든 받지 않든, 나의 과제는 늘 똑같다.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잘 하는 것을 끄집어 내고 그것을 통해 나를 파악해 가는 것. 그렇게 해야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파주 : 여유시간이 생길 때면 유튜브로 뉴스를 틀어놓곤 하는데요. 얼마 전부터 '실업급여 체계를 손본다'는 리포팅이 나오더라고요. 역시나 댓글에는 실업급여를 향한 (입에 담기도 어려운) 공격적인 말들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다더라~'라고 시작하는 그 말들이 왜그렇게 매몰차 보이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힘들여 번 돈에서 고용보험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떼는 게 전부 그것을 위한 것 아니었나요?

아아, 허튼 말을 방지하기 위해 화제를 돌려보자면... 저의 한 주는 아주 무탈했습니다. 담당하는 업무가 적은 탓에 휴가를 소진하거나 한 달도 더 남은 3월 캘린더를 정리하거나 했거든요. 여유로운 것도 하루이틀이지, 그렇게 있다 보니 몸이 슬슬 근질거리더라고요. 밥값도 해야 했고, 어떻게든 저의 쓸모를 온몸으로 증명해야 될 타이밍이 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시나 '오늘 한가하네'라는 실언이 일을 불러오는 모양입니다. 마침 오늘 딱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됐거든요.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드네요. 어쩌면 나, 일을 좋아하는 걸지도...?(아님)

야망백수 : 실업급여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은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것과는 다르죠. 누군가에겐 한숨 돌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무자비한 도박판에 치욕을 감내하며 개평을 요구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퍽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얘길 읽으니 좋네요.

저는 나름 백수생활을 오래 즐겨본 경력이 있는데요, 주제넘지만 백수 생활을 즐기는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1. 평일 낮의 공원에 자주 가세요. 우리의 공동체가 너무 부지런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탓에 낭비되고 있는 유토피아를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2.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세요. 피로가 사라지고 나면 마침내 본래의 눈 크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일할 기회보다 돈 걱정 없이 쉴 기회가 더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저희 아버지는 놀고먹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하신 탓에 실업급여를 다 타먹기도 전에 재취업을 하셨고, 결국 관절염을 얻으셨습니다. 부모님에게 놀고먹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제 to-do 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왔는데요, 쉽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젊었을 때 배워둬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개미처럼 일하게 될 테니, 귀한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시간 나면 저한테 밥도 한 끼 사러 오셔요.

마감도비 : 마감도비는 기자다. 늦은 새벽, “아”, “후” 따위의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카톡방에 등장하곤 한다. 그 단발마의 외침은 마감을 했거나 드디어 회식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가 일 년에 쓰는 기사 수는 실로 엄청나다. 기계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얼마 전 그는 아침 회의에서 “이제 니들은 챗GPT에 대체 당하는 거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챗GPT는 ‘그럴싸한 개소리’를 태연하게 쏟아낸다는데, 인간이 쏟아내는 이 뾰족한 말들은 무어라고 불러야 좋단 말인가. (‘처맞을 개소리?’ ‘모욕적인 쌉소리?’) 능글맞은 표정으로, 제 딴엔 유머라는 듯이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쏟아내길 즐기는 이들은 마감도비가 복싱 체육관에 꽤 오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오늘 마감도비는 회식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에세이에 대한 코멘트를 적지 못한 마감도비 대신 야망백수가 마감도비에 대한 코멘트를 적었다. 풀칠러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바란다.

출처 : 웹툰 <첩보의 별>

▲ 고해성사

7년차 풀칠러, 여행기자

파주 :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풀칠러 : 명함에는 기자라고 적혀 있지만, 여행을 주제로 여러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뉴스, 잡지 기사, 소셜미디어, 뉴스레터 등 다양한 채널에 게재하고 있다.

파주 :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풀칠러 : 원래 방송 PD가 목표였는데, 최종면접에서 쓴맛을 봤다. 분위기 환기 겸 여행작가 글쓰기 교육을 받다가 지금 회사를 알게 됐고, 입사원서를 냈는데 붙었다.

파주 :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것 같나?

풀칠러 : 걸을 수 있고, 카메라를 들 수 있으면 계속해서 이 일을 할 것 같다. 직장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파주 : 이번 호 주제는 '실업급여'다. 실업급여를 받아본 경험을 이야기해달라.

풀칠러 : 내 경우는 권고사직과 정리해고는 아니고, 질병퇴사(죽을병 아님)다. 질병퇴사는 수급 절차가 좀 더 복잡하고 필요한 서류도 많다. ①13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 ②치료 완료 후 구직해도 된다는 의사 소견서, ③입퇴원 확인서 등을 준비해야 한다. 쉽게 말해 퇴사하고 3개월 이후에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사실, 받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다행히 수급(180일 동안 일 급여 최대 6만 6,000원)이 결정돼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다만 구직 외 수입이 발생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파주 : 실업급여를 받고 난 뒤, 다시 일하는 기분은? 같은 회사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도 있는가.

풀칠러 : 6개월 꽉 채워서 받았어야 했는데 5개월만 받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마지막 6회차 수급액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보면 아깝긴 하다. 그나마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됐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같은 회사로 돌아온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때문에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퇴사할 때 회사가 싫어서 그만둔 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데 큰 고민은 없었다. 게다가 타이밍이 맞아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업무를 할 수 있게 됐고, 회사도 관련 업무를 담당할 직원이 필요했던 터라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졌다.

파주 : 실업급여를 받는 게 커리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됐나?

풀칠러 : 업무 전환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더 중요한 건 잠깐 쉬어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직장인도 방학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최저 생활비 이상의 돈을 받으면서 쉰다니. 구직이 잘 안됐으면 힘들었겠지만, 다 지나고 나니 여러모로 괜찮은 시간이었다.

파주 :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다른 일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는다면.

풀칠러 : 여행을 많이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직장이 도움이 된다니 꽤 괜찮은 일 아닌가. 어려운 점은 분명 있지만, 아직은 즐거운 일이 더 많다.

풀칠러A

2월 2일 목요일에 최종 면접이 있었어요. 아침 일찍 면접장 근처로 이동하는 중에 풀칠을 읽는데 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더라구요. 이제 막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가는 저와는 조금 먼 내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풀터뷰까지 재밌게 읽었죠. 왜 그런 말 있지 않아요? 시험 보기 직전에 본 내용이 시험에 꼭 나온다고. 면접 마지막 질문으로 ‘생각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자꾸 실수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 어떻게 하겠냐’ 물어보셨어요. 패기 넘치면서도 뻔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 줄줄이 이어지고 .. 제 차례가 되었을 때, 풀칠에서 읽은 ‘전문성’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전문가가 되기 위해 꼭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고 답변을 시작했고, 흐뭇하게 들어주시던 면접관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나이스 한 타이밍에 좋은 글 보내주신 풀칠 덕분에 기분 좋게 면접 마무리했습니당! 감사해요 풀칠! 다음 주 새로운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파주

개인적으로 '아다리'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풀칠러님의 표현처럼 시험 직전에 본 내용이 출제될 때, 무언가 적재적소에 딱 들어맞았다는 쾌감이 도파민을 돌게 만들거든요! 그 긴장됐을 시간에 풀칠을 읽어주셨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편지드리겠습니다.

풀칠러B

chat-GPT와 대화한 내용이 너무 웃기네요. 다들 chat-GPT의 시대가 왔다고 떠들어대는 걸 보면서 의식 못했는데 마음 한켠에 불편함이 생겼었나봐요. 야망백수님의 질문들이 통쾌하다고 느껴지는 대화였어요.

야망백수

아직은 chat-GPT를 놀려먹을 시간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chat-GPT가 전지전능해지기 전까지 마음껏 놀려먹자고요. 제가 지난 주 금요일 chat-GPT와 나눈 대화를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