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직장인은 만으로 서른이 되는 해에 조심해야 한다고. 몸이 예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사용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라고. 요즘 내가 그렇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늘 기진맥진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쪽잠을 잔다.

예전에 번아웃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번아웃에는 도가 텄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나는 그냥 피로한 상태구나’ 하고 자각하게 됐다. 번아웃이 배터리 방전이라면 지금의 피로는 배터리의 용량 자체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지방 출장. 여의도에서 판교까지. 누군가는 일과 시간에 코에 바람을 쐴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고 나도 절반은 동의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서 이동에 많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최근의 피로가 가장 심각하게 다가온 점은 피로가 피로에 끝나지 않고 우울감으로 변해갔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피곤한 건 내 능력이,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따위의 생각이 들면서 자존감도 낮아졌다. 의욕이 떨어지니 일의 능률도 떨어졌고 업무 시간은 더 늘어나기만 했다. 피로와 우울감의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찾아본 유튜브 영상에서 심리학자인 아주대 김경일 교수는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는 감각이야 말로 잦은 우울감을 불러오는 주범이라고 했다. 영상을 계속 시청하니 김 교수는 휴식은 시간보다는 횟수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개인마다 적절한 휴식 시간과 빈도가 다르다고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하루에, 일주일에 얼마나 일하는지는 알고 있지만(빌어먹을 포괄임금제) 얼마나 오래, 또 자주 쉬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영상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휴식을 할 때는 일을 할 때와 같은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우리 뇌는 같은 자세를 취하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 매일 같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나는 휴식 시간에는 매일 같이 뛰어다니면 되는 것일지도.

가장 좋은 건 일을 그냥 때려치우는 것이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을 어쩌랴.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피로는 늘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될 때마다 몸을 흔들어대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파주 : 마감도비님의 말처럼 저도 한동안 휴식을 취할 때의 자세가 일을 할 때와 동일했습니다. 넷플릭스나 웹서핑을 하며 쉬던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일을 놓고 있는 게 불안했기 때문에,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한 것에 가까웠죠.

그때 즈음 어떤 아티클에서 ‘의도적인 휴식 리스트’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흥미도 없는 숏츠 영상을 계속 재생하거나, SNS를 보면서 불안감을 키우는 게,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제시한 의도적 휴식 리스트는 따뜻한 물 마시기, 퇴근하는 길에 좋아하는 서점 들러보기 같은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지만 쉽게 휘발되는 것들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나의 기분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에 정성을 들이는 행위가 ‘진짜 휴식’이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저의 의도적 휴식은 산책입니다. 하루 만 보쯤 넘게 걷다 보면 오히려 집안에 틀어박힌 날보다 활력이 돌더라고요. 오늘 점심도 피로 타파를 위해 시간을 들여 걸었습니다. 날씨에 딱 맞는 BGM도 곁들이면 그보다 더한 휴식은 없죠. 놀랍게도 산책길에 들은 노래가 마침, 언니네 이발관의 이 노래였네요.

저도 요즈음 꽤나 피로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가만히 누워 자기 직전까지 유튜브 쇼츠를 보는 게 제 루틴인데요, 언젠간 이런 이야기가 알고리즘에 뜨더라고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통점은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양치를 잘 하거나, 침구를 늘 개곤 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은 시기는 크리스마스나 새해 초였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새해만 되면’이란 희망이 독이 된 것이다.”

물론 저의 일상과 아우슈비츠의 물리적 상황은 나란히 놓는 게 죄스러울 만큼 다르지만, 두 이야기를 합치니 피로에 감염되었을 때 대처하는 법이 나오더군요. ‘희망을 품지 말고, 양치를 잘 할 것.’

풀칠을 마감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끝이겠죠. 이제 마감도비님은 몸을 흔드세요, 저는 양치를 하러 가겠습니다.

지금 보니 ‘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는 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자고 일어나면 말끔히 잊곤 하지만 잠 못 이루는 순간에는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을지도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하루치에 해당하는 수면 시간을 이틀밤을 보내도록 못 채우는 것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안 되겠습니다. 저도 몸 좀 흔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이 털어보시죠.

제가 경험한 실업급여는 '기회'였어요. 다른 누군가는 비겁한 사람들의 도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적어도 저에겐 기회였습니다. 실업급여 제도가 없었다면 저는 당장 방세를 내기 위해, 밥 먹기 위해, 틀린 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갔겠죠. 누군가 희망을 품을 때, 다음 계단을 디딜 때 사회가 최소한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기회의 감사함을 알고 더 나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제가 해야하는 일이겠죠.

저는 이번 달 마지막 실업급여 수령을 앞뒀습니다. 이제 어떤 길을 선택할지 평소보다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요. 오늘의 풀칠 주제가 실업급여라니 너무 신기하네요. 이래서 풀칠을 못 끊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