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고 불러도 돼? [풀칠 136호]

202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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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여러분의 회사는 직원들끼리 서로 어떻게 부르나요? 반말과 존댓말 중 무엇을 쓰나요? 수평어 쓰는 곳도 있나요? 참 중요하다 싶다가도 이게 뭐가 중요하냐 싶어지는 게 호칭과 그에 따라오는 반말/존댓말인 것 같습니다.

다 같이 통일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데요. 업계와 세대마다 제각각이니 그게 잘 안 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 편하게 해도 되나요?”

출근한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선배가 물었다. 굳이 회사로 한정 짓지 않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이 질문이 나왔을 때 ‘NO’라고 답하는 경우를 실제로 본 적 있으신지? 나는 못 봤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

사실 이 업계엔 다소 요상한 문화가 있다. 개인의 소속에 관계 없이 업계에 들어온 해를 기준으로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회사 선배들만 선배가 아니다. 다른 회사라도 같은 일로 밥 벌어 먹고 있다면 전부 다 내 선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진 않다. 자세한 썰을 풀자니 만 2개월도 되지 않은 새내기인지라 조심스럽다. 누가 볼까 봐 겁나는 건 아니고 잘 알지 못하면서 나불대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나중에 이것에 대해 쓸 일이 생기겠지.

아무튼 선배가 후배인 내게 말을 편하게 하는 것 자체는 조직을 넘어 ‘업계 표준’으로 딱히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것에 대해 나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꼬아볼 생각도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생각 자체를 딱히 안 했다.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이 컸다. (영어)이름에 ‘님’자를 붙이고 상호 존대하는 곳에서 오히려 더 기묘한 형태의 상하관계가 생겨나는 것을 이미 많이 봤는데 나를 뭐라 부르든 말끝을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귀찮게 안 하면 될 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선배가 메신저에서 말할 때였다. 대면 상황에는 꿋꿋이 반말로 일관하면서도 메신저에서는 다양한 말투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반말을 쓰다가도 갑자기 존댓말을 썼다. 어느 때는 묘하게 덜 반말(?) 같은 수평어를 쓰기도 했다(물론 그가 ‘수평어’라는 개념을 실제로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처음에는 공지사항 등 공식적인 내용을 알릴 때만 형식으로서 존댓말을 쓰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문자를 통한 소통이라 조금 더 격식을 차리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문자를 통한 소통에 익숙치 않아서’가 현재 나의 추측이다. 대면 → 전화 → 메신저 순서로, 그러니까 비언어적 소통이 줄어들수록 그와 이야기 나누는 게 부담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사려 깊은 게 분명한 사람인데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면 별 것 아닌 내용인데도 묘하게 질책 받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잘 터놓는데도 불구하고 메신저로는 필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혹시 그 자신도 그걸 알기 때문에 메신저에서는 의도적으로 존댓말을 섞는 거였을까?

짚고 넘어가자면, ‘묘하게 질책 받는 기분이 들’고 ‘필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는 건 일차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나로서는 그게 그냥 느낌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업무적 소통에 아무런 방해가 없다. 중요한 건 영어이름이나 님 문화, 반말과 존댓말, 수평어 따위가 아니다. 앞뒤가 다르지 않은 일관성, 안팎이 다르지 않은 투명성, 깔끔한 의사결정과 명확한 요구사항(가능하다면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까지)이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이런 얘기를 하니 애인은 이 분야 최강자인 ‘압존법’을 꺼내들었다. 신입사원 교육 때 ‘이것이 압존법’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구성원 모두가 다들 자연스럽게(?)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지만 어쩐지 자신도 익혀야만 할 것 같다며 푸념했다. ‘그거 폐지되지 않았나? 아직도 쓰나? 정말 구시대적이군’이라고 생각하며 검색해봤다. 22년도에 군에서 전역한 아무개 씨는 자신도 압존법을 강요 받았다며 그에 대해 국립 국어원에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압존법은 규정이 아니므로 폐지된 바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압존법은 가정 내, 사제 간에서 쓰였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압존법을 쓰는 것은 우리 전통 예절이 아닙니다.”

역시…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파주: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님’ 대신 ‘씨’를 썼다는 일로 훈계 아닌 훈계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었지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씨’는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라고 하네요.) 덕분에 그 뒤로는 가능하면 ‘씨’ 대신 ‘님’을 붙이려고 노력합니다.

호칭이라는 게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부르는 사람에게도 모종의 암시를 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화자로서 상대를 ‘님’이라고 부를 때 ‘씨’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존중하는 힘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물론 저만의 개똥철학이지만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존중심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뭔가 애틋한 기분이 드네요.

야망백수 : 누군가랑 친해지다 보면 존댓말이 반말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순간이 있죠. 인생을 살맛 나게 만들어주는 순간 중 하나이지만 회사에서는 이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회사엔 보는 눈이 많고, 팀원끼리 반말하는 건 비즈니스 매너에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나이 들수록 속 편하게 반말할 수 있는 관계가 귀해지는 게 뭔가 서글프네요. 선을 넘는 걸 문제 삼는 게 치사하단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선 없이는 잘 굴러가는 그림이 상상이 잘 안가는 걸 보니 저도 나이가 들고 있나 봅니다. 다음 회식 땐 야자타임이라도 한번 하자고 할까 봐요.

마감도비: (오늘도 마감도비는 회식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회식에서 반말을 듣고 있지 않기를, 술에 취해 상사에게 반말을 뱉고 있지 않기를 빌어주세요. 편집자 야망백수 주)

▲ 설레는 반존대

10년차 풀칠러, 기획자이자 마케터

파주: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풀칠러: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고객사의 의뢰를 받기도 고객의 과업에 먼저 뛰어들기도 하며 갖가지 마케팅적 고민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주: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풀칠러: 학부 시절에 광고 공모전을 도전하게 되었는데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서를 만드는 일이 재밌었다. 머릿 속의 생각을 하나의 기획서로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취감을 느꼈다. 전공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마케팅 동아리 활동과 인턴을 하면서 여전히 기획이 재밌음을 깨닫게 되었고 정규 입사 후에 10년 넘게 이 길을 한결 같이 걷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촘촘히 기획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과정이 재미있고 결과가 의미있어 애정과 애증 사이를 줄타기 하며 일을 하고 있다.

파주: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풀칠러: 내가 더 이상 재능이 없다고 느낄 때? 10년차가 되니 빛나는 실력보다는 단단한 경험이 일을 되게 만든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긴 어려운 연차라 종종 명예롭게 은퇴해야하는 거 아닐까 싶다가도 그 간의 경험이 후배들의 아이디어와 어우러져서 아직까지는 살아남았다. 가까운 선배가 우리 업은 내가 놓지 않는 이상 생각보다 오래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 같다.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꽤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일의 성취감과 동료들과 함께하는 재미가 발목을 잡았다. 일과 사람, 둘 다에 지치지 않는다면 계속 할 것 같다. 아직까진 재밌으니까.

파주: 이번 주제는 ‘호칭’이다. 회사에서 불리는 호칭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풀칠러: 우리 회사는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두 ~님으로 부르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나도 인턴 친구를 OO님이라고 불러본 경험이 있는데 그 분이 나를 OO님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수평적인 거 맞겠지?

암튼 조직 문화는 그렇고 팀 문화에서는 줄임말을 쓴다. 매니저는 OO맴으로, 파트장은 O파로 부르기 편하고 서로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봄파인데 부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오글거리려나 싶기도 했지만 나는 듣는 입장이라 듣기엔 친숙한 느낌도 들고 좋았다. 파트장님이라고 정확히 호칭을 쓰면 멀리서 부르는 느낌이고 봄파라고 줄임말을 쓰면 그 사람에게 두 걸음 가까이 간 느낌이 든다.

회사의 호칭은 문화이자 구성원들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지인 회사에서는 제임스처럼 영문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도 하니까, 호칭은 서로 어떤 관계로 일을 할지 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맴과 파로 줄여진 우리 팀 호칭 문화는 서로를 가까이 하겠다는 모두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호칭은 관계를 유연하게 하기도 명함을 주고 받듯이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쓰다보니 호칭 매우 중요하네.

파주: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풀칠러: 일은 주체적인 나로서 살아갈 동력이 된다. 나는 대학생때부터 주말알바로 시작해 생활비를 마련해왔는데, 내가 노동한 것으로 돈을 벌고 내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늘 좋았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다는 기쁨, 그런 면에서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거 같다. 최근 운전을 배웠다. 직접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정하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속도를 내보는 경험, 나로서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일이 생겨 기뻤다. 나는 나로서 오롯이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풀칠을 한다.

풀칠러A

퇴사하고 고향 내려온지 이제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도비입니다. 분명 이제 내가 책임지거나 신경쓸 일이 없다는 걸 확고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왠지 뭔가 덜 해결한 것만 같은 책임감 한 덩이가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한국인이라면 다들 이런 걸까요? 그래도 당분간은 탱자탱자 아무 걱정 없이 좀 쉬어보렵니다.

아매오

관성에서는 누구든 쉽게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모든 걸 떨쳐내고 곧바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건 오직 가영이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나저나 단순한 퇴사가 아니로군요. 고향에 내려가시다니. 이후 계획이 어찌 됐든 현재의 쉼을 잘 누리시길 바랍니다.

풀칠러B

최근 저는 월급이 적어 (거의 강제로) 회사 밖에서 내 일을 추가로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해서 그런지, 회사 밖에서 '진짜 내 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근데 제 일에서 회사 아이덴티티를 제하니 '내 거'란게 과연 있나 싶어 아직 발을 못 떼고 있는 중이랍니다ㅠ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빨리 내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함도 들어요. 오늘 레터를 두번세번 읽어 보며 길을 찾아볼게요..!

파주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보니 저도 비슷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 회사도 아닌 다른 회사의 성취를 ‘내 일’이라고 내밀어도 되는 것인가 하고요.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했던 노력과 경험은 어디가지 않고 제게 남더라고요. 한번 해봤던 일이라는 건 대부분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게 직장인의 알고리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