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일도 내 일 [풀칠 135호]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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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파주입니다.

풀칠러님은 워라블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워라밸을 살짝 비틀어 등장한 이 단어는 워크와 삶(라이프)의 적절한 블랜딩을 의미한다는데요. 일을 취미나 자아실현의 한 종류로 여기는 요즘 트렌드라고 합니다.

일이 취미라니! 세상에 그런 악취미가 있을까 싶지만요. 하루에도 8시간씩 꼬박 해야 하는 일에 애정을 붙이는 게 어쩌면 현명한 삶의 전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님은 어떠신가요? 회사에서 하는 업무가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지금 하는 일에 애정을 쏟고 있나요?

이 짓을 해온 것도 햇수로 벌써 3년째.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보내왔던 풀칠 레터는 공개적인 일기장이자 나의 작은 역사다. 그 순간 차올랐던 행복감이나 당시의 비참한 심정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적어낸 탓에, 내 생각의 궤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풀칠레터(밥솥)를 뒤적이다가 생각이 크게 기울어진 지점을 발견했다. 여기저기서 퇴사를 종용하던 대퇴사 시대. 골드 로저가 ‘원피스’를 미끼로 대해적시대를 연 것처럼, ‘경제적 자유’라든지 ‘퍼스널 브랜딩’ 같은 단어들이 사람들을 홀리던 때다. 나 또한 그 미끼에 된통 당해 대퇴사의 시대에 한 척의 뗏목을 띄웠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는 삶을,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인 인생을 탐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경제적 자유’가 분명 있다며 회사 밖으로 떠나라는 말들. 이 지겨운 출근도, 어마무시한 업무 스트레스와도 안녕이라니! 일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상하다 보면 회사일이 머릿 속에 들어올 공간이라곤 없었다. 이놈의 회사에만 출근하지 않으면 뭐라도 될 듯 싶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회사 말고 내 일을 주창하는 이들의 마수에 속아 좌뇌와 우뇌를 모두 ‘내 일’로 가득 채웠다.

회사 말고 내 일을 주창하다가 정작 회사일을 망쳐버리는 부류의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당시의 내가 회사일을 대하는 태도는 뭐랄까 불청객 대하듯 했다고 해야 할까. 이 달갑지 않은 놈이 곧 떠나기만을 바라며 푸대접했다. 솔직히 말해 이 아담한 월급들로 내 미래를 담보 삼아 일한다는 게 탈출의 시그널이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꼭 내 삶을 인질로 삼은 대가로 푼돈을 쥐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 일이 루틴하게 돌아가고 있으면 ‘이거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인데’라며 자괴감을 느끼고, 반대로 위기가 닥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정작 일에 전념해야 할 때 회피했고, 마감이 목을 옥죄는 순간이 와서야 그것을 해치우듯 끝내버렸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회사 말고 내 일이라는 것을.

다만 나는 본인의 힘으로 일궈내야 할 경제적 자유가 요행으로 이뤄지기를 바랐다. 마치 호그와트의 초대장을 기다리는 머글의 심정으로, 어느날 '뿅!'하고 경제적 자유가 우리집에 찾아오기를. 매일매일을 로또 당첨보다도 더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곤 했다.

하지만 정작 회사를 떠나면서도 ‘내 일’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죽기 전 인류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야망같은 건 가진 적도 없었고, 사업을 꾸려 큰돈을 벌거나 사장 명패를 갖겠다는 욕망도 없었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음악이나 탱자탱자 들으며 사건사고 없이 매일매일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한량 같은 삶을 바라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몇 년 전 꿈을 쫓겠다며 근사하게 포장한 '내 일' 찾기라는 게 사실은 일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제서야 ‘내 일’이라고 떠벌리던 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자각이 든다. 그까짓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내 일’이라는 건 근사해 보이지만, 적어도 그럴싸한 야망이 없는 내 경우에는 그것이 실체 없는 만화 속 원피스와 다를 바 없었다.

들여다 보면 회사일이야말로 분명하게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 일을 하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나는 또 그만큼 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계약서까지 써냈으니.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내 일’이다. 단순히 월급이나 계약이 아니더라도 회사일이 '내 일'이 될 수 있다. 돌아보면 회사의 일이라는 게 나를 침대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중요한 약속이자 사회에 일조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으니까.

매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출근하는 성실함. 할 때마다 매번 머리를 쥐어짜내며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결국에 해내고야 마는 끈기. 콜포비아임에도 밥벌이를 하기 위해 외향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사회성.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 효율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집중력. 내가 맡은 일은 어떻게든 내가 해치워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 뭐든 하기 전엔 그지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게 되어버린다는 인생의 깨달음까지도. 여전히 일을 하다가도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자주 있지만. 분명한 건 회사에서 경험한 일, 지금까지 어찌저찌 해결한 업무를 통해서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다.

대부분 열이 오르고 이따금씩 욕설을 튀어나오게 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아주 가끔은 이 일을 끝마쳤다는 것에, 나름대로 성과까지 냈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해질 때가 있다. 이것을 일의 보람이라 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일을 미워하며 쉐도우복싱하는 것보다 이 편이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실체 없는 말들을 변명 삼아 회사일을 내팽겨쳐 두지 않는다. 구체화되지도 않은 ‘내 일’을 쫓는 대신에 오늘 쥘 수 있는 성취감이나 행복감에 집중한다. 매일 아침 빈속에 커피를 때려넣으며 회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스킵하지 않고 온전히 대면하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한다. 오늘도 예정에 없던 급건이 쏟아져 머리를 감싸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 괴로움과 그것을 말끔히 클리어낸 뒤의 가뿐함도 하루의 일부라는 것을 잘 안다.

멀티버스가 있다면 회사 말고 ‘내 일’을 주창하던 과거의 내게 품앗이라도 하나 보내주고 싶다. 카카오주식을 꼭 매도하라는 말 다음엔 지금 눈앞에 놓인 회사일이야말로 내 일이라고.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고 혼쭐을 내고 싶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풀칠레터를 쓰는 것 만큼이나 지금 이 팀의 에디터로서 하는 일에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치열한 사랑이 아니거니와 자주 밉기도 하고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울 때도 종종 있지만. 이게 내 일인걸. 분명 이렇게 호기롭게 선언해 놓고 당장 내일 출근길도 빌빌거릴 테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 만큼 진심이다.

아매오: 사회초년생이 말하는 ‘내 일’이란 학생 때 적어내던 ‘장래희망’과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두 가지 다 그럴 듯한 무언가라는 점에서 그렇고,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소수지만 그것을 실제로 이뤄내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장래희망은 장래희망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다음에는 결국 그동안 해온 것들이 ‘내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도 비슷하고요(저는 아직 그 단계가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을 좇는 게 나쁘기만 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장래희망을 그대로 이루진 못했지만 그걸 보고 달린 덕분에 이렇게나마 밥 벌어 먹고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실체가 없을지라도 그 주변을 헤매며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보람을 얻기도 했죠. 내 일도 그럴 거예요. 물론 학교와 달리 사회에는 졸업이란 게 없으니 스스로 기준을 잘 세워야 할 겁니다. 잘못하면 시간을 무한정 낭비할 수도 있으니까요.

야망백 : 저는 ‘내 일’이라는 말, 조금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의미를 나에게 귀속시키려다 불행해지거나 주변을 황폐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요.(삼국지에는 공명심 때문에 화를 입은 사람이 차고 넘칩니다.) 회사 일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일은 결국엔 타인과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 그 관계가 어떻게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겠어요.

물론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동기부여가 잘 되긴 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자아실현도 하고 성장도 하고 돈도 벌면 효율적이잖아요. 하지만 상사가, 고객이, 세상이 모질게 구는 날에도 절망하지 않는 데엔 ‘내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보단 ‘일은 당연히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더 유리하더군요.

나를 만족시키는 건 시작하게 만드는 힘은 될 수 있어도, 건조한 반복에서 의미를 찾게 만들어주는 건 타인인 것 같습니다. 풀칠은 ‘내 일’을 하고 싶단 욕심에 시작하긴 했지만, 2년 동안 계속하는 이유는 읽어주는 풀칠러님이 있다는 걸 알아서거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감도비: 일을 무작정 피하지 않으면서도 회사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이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일에 대한 균형 감각이랄까요. 하지만 멘탈이 터지고 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하는 감각이라는 걸 파주님의 글을 읽으며 새삼 떠올리게 되네요. 저는 아직 양 극단을 오가고 있는데 생각 정리에 무척 도움이 되었어요.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언젠가는 일의 능률로 이어진다는 걸 기억할 때 이 일이 내 일이 맞나 하는 고민은 직장인의 숙명인가 봐요. 일을 나의 그럭저럭 괜찮은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저도 그 천의무봉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 내 일 하세요...? 내일합시다

4년차 풀칠러, 커뮤니티 매니저

아매오: 회사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풀칠러: 커뮤니티 빌딩을 위한 전략 업무를 하고 있다. 하고 있다기보단 회사에서 커뮤니티 빌딩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라서 나도 일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이다.

아매오: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풀칠러: 모르겠다… 커뮤니티가 좋아서(정확히는 그냥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모임을 만들기도 하였고, 여기저기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로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매오: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풀칠러: (솔직히) 별로 오래 하고 싶지는 않다. 커리어에서 커뮤니티 딱지를 떼어내고 싶은 생각이 아주 많다. 커뮤니티를 일로 하는 것이 즐겁지 않기도 하고 욕심도 없다. 개인적으로 커머스/플랫폼 서비스에 관심이 높은데 그러한 방향으로 이직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찝찝함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매오: 그렇다면 회사 밖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풀칠러: 웨딩 시장에서 작은 비즈니스를 시도해 보고 있고, 전반적인 서비스 운영을 하고 있다.

아매오: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풀칠러: 회사에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고정적인 수익 외에 (흔히 말하는) 캐시파이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효율적인 리소스로 꾸준히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시도해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적은 힘으로 꾸준히 많이 벌고 싶어서.

아매오: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풀칠러: 지금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는 어떻게든 오래 끌고 가볼 요량이다. 더 크게 캐시파이프를 만들려는 노력은 앞으로 30~40년 동안 해보지 않을까 싶다.

아매오: ‘회사에서 하는 일’과 ‘회사 밖에서 하는 일’을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있어 같은 점과 다른 점 한 가지씩 꼽는다면?

풀칠러: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같다. 루틴 업무가 있다면 어떻게든 가용 시간을 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루틴 업무가 아닌 기획 영역의 일이더라도 같은 시간 대비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 처리 방법론 등에 관심이 많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어디보자… 회사에서 하는 일을 대할 때는 그것이 결국 내가 관심 있는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회사 밖에서 하는 일은 내가 관심 있는 비즈니스를 실제로 구현해 보는 실험이고. 그래서 지금의 커리어 설계는 최종적으로 내 비즈니스를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매오: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풀칠러: ‘자아실현과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 따지고 들어 본다면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는 나의 욕구를 일을 하며 실현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갈망, 또는 욕구를 해소하는 일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내가 어떤 영역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신념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풀칠러A

20살 대학교 입학부터 현재 직장인까지 자취! 독립! 생활을 하는 풀칠러 입니다
멀고 먼 지방사람으로 서울에서 살기엔... 생활비와 관리비와 기타 등등....
독립하여 살아가는 풀칠러들! 응원합니다

야망백수

등등 뒤에 찍혀있는 말 줄임표는 혹시 눈물방울인가요…? 그래도 상경해서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면 고향을 비상구 삼을 수가 없잖아요? 하하. 서울에서 사느라 쓰는 돈은 비상구 유지 비용으로 생각하자고요. 하하. 오늘도 평온한 하루 보내셨길 바라겠습니다.

풀칠러B

식물들도 이사는 스트레스. 사무실 화분들이 비실비실한데, 전문가왈 빛이나, 바람 쐬어준다고 자꾸 옮기면 식물들도 스트레스 받아서 시름시름 앓는다고해요. 너무 부지런함이 그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준거지요. 결혼 후에 계속된 이사가 애들에게는 친구없는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지금 다 건강하게 잘 컸으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파주

사람에게 안정감이 중요한 것처럼 식물도 마찬가지겠네요! 다만 환경이 너무 좋은 탓에 과도한 영양분을 주어도 식물이 시름시름 앓기 마련이더라고요.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난관이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이롭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이거 참, 쓰고 보니 사람과 식물이 다를 게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