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얼마 전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었습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스티브 잡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해 쓴 책이죠. 제목은 ‘스티브 잡스’, 1116쪽입니다. 저로서는 살며 읽은 책 중 단권으로는 가장 두껍습니다. 분량 압박이 상당한데요. 그럼에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더군요.

특히 지난 몇 년 간 일하며 만난(혹은 목격한) 사람들 중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제 경험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잡스병’이라는 단어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됐달까요? 하여튼 별 일 없다면 이 책이 제겐 올해의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에세이는 저의 스티브 잡스 독후감에 가깝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싯다르타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잡스 전기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기 때문이다. 나는 싯다르타를 읽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날려보낼 만큼 거대한 깨달음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삶에 일상이 자리할 틈이 과연 있는가? 비일상적 사건으로 가득한 삶은 평범한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는가?

싯다르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에게 ‘스스로를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날려보낼 만큼 거대한 깨달음’이란 한 번 마주하기도 어려울뿐 더러 설사 마주하더라도 많은 고통을 수반하는 경험이다. 우린 싯다르타가 될 수 없다. 다만 그 일부를 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많다. 종교가 그렇고 자기계발서와 위인전이 그렇다. 세상 따분한 이야기들. 나는 그런 것들에 딱히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잡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였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아니, 비범하다는 걸로는 모자라다. 그는 신이다. 잡스의 초상을 찍은 알버트 왓슨의 사진전에서 왓슨이 직접 그때의 경험을 들려주는 영상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잡스 관련 일화는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에피소드가 돼 전 세계에 스트리밍 되고 있었다. 신화였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은 이야기의 밀도가 달랐다. 나는 그에게서 과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가?

잡스는 2011년 10월 5일 사망했다. 그의 전기는 같은 달 24일에 출간됐다. 한국에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던 시기다. 김범수나 김봉진처럼 빠른 이들은 일찌감치 카톡과 배민을 내놓았다. PC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다. 수많은 앱과 회사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중에 애플과 카카오와 우아한형제들은 큰 회사가 됐다. 절묘한 타이밍. ‘잡스의 사망’과 ‘시장의 재편’ 이후 이어진 변화는 모두 신화의 싱싱한 재료였다.

‘잡스병’의 유행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강력한 리더십을 추앙했고 디테일에 집착했으며 혁신을 부르짖었다…그랬는가? 발휘했는가? 구현했는가? 이뤄냈는가? 그것이 병이라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대로 소화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가 동료들에게 행한 얼간이 짓거리” 따위나 복제했을 것이다. 그게 잡스의 여러 특징 중 복제하기엔 가장 쉽고 간편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작고 10주기 후기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때로는 좌중의 한 남자(그렇다. 대개 남자다.)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으스대는 걸음걸이로 다가와 말하곤 한다. ‘당신이 쓴 책을 읽고 내가 딱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직원 중 누군가가 무언가를 형편없이 해 놓으면 나는 가차없이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지적합니다. B급 선수를 용인하지 않는 거죠.’ 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은 아이폰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긴 했나요?’”

물론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잡스병인지 잡스가 될 자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혹시 자질 쪽에 가깝더라도 실제로 잡스가 되기 전에 그는 기껏해야 잡스의 일부만 겨우 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간이 짓거리가 아닌 탁월한 성취부터 복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면 워즈니악이 40달러를 들여 만든 블루박스를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잡스가 150달러에 100개를 팔아치운 에피소드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잡스병이 꼭 대표님들만 걸리는 희귀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밸런스 게임의 클래식 보기 중 ‘일 잘하고 성격 나쁜 상사 vs 일 못하고 성격 좋은 상사’가 있다. 나는 여기서 전자를 택하는 이유가 ‘회사에선 일 못하는 게 나쁜 것’인 사람은 잡스병 초기라고 생각한다(전자를 택하는 것 자체는 상관없다). 능력과 성과를 곧바로 도덕성에 붙이는 말이 다름아닌 잡스의 얼간이 짓거리기 때문이다.

아이작슨은 서문에서 분명히 밝힌다. “결국 혁신과 개인적 특질, 리더십과 가치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유익하면서도 모종의 경고를 담고 있는 셈”이라고. 아이폰을 만들어냈으니 얼간이 짓거리조차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얼간이 짓거리조차 아이폰을 만들어낸 잡스에게서 제거할 수 없는 기질이었다고. 복잡한 그의 인생과 성격과 역량과 성취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봐야한다고. 잡스가 강조했던 ‘엔드투엔드’ 방식으로.

사실 잡스가 될 능력도 의지도 바람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가장 큰 수확이 따로 있다. 이해 못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그들로부터 멘탈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얻은 것이다. 바로 ‘그래봤자 너도 잡스의 아류일 뿐’이라는 마인드셋이다.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하는 것이다. 돌아이가 확실하다고 여겼던 그 사람을 한순간 이해하게 되면서 마침내 그를 안쓰럽게 여기는 경지에 도달하는 경험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했다.

야망백수 :  오늘 새벽, 일상에 작은 틈이 생겼죠. 서울시민 모두가 경계경보에 잠을 깼잖아요.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을 들으면서 제일 먼저 한 생각은 '회사에서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니구나' 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일들이, 혁신입네 문제를 해결하네 떠들어대며 상처 주고 또 상처받았던 시간들이 세상과 함께 쓸려내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언제든 끝장날 수 있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유능함을 믿고 타인에게 못되게 구는 일은 참 덧없고 멋없는 것 같습니다. '잡스병'이란 말은  아마 이 멋없음을 꼬집기 위해 생겨난 거겠죠.

아매오

‘월급만큼은 해야지’라는 마인드가 사실 참 무섭습니다. 보통은 자신이 제공하는 노동력에 비해 월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루팡’을 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여기기 때문이죠(사실 제 얘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풀칠러님의 말씀대로 ‘근로시간에 충실하게’만큼 훌륭한 직업윤리도 없을 것 같습니다. 존경스럽네요.

마감도비

본인 이름을 걸고 한다는 말이 참 좋네요. 직업윤리란 다르게 말하자면 본업에 충실하기 아닐까요. 장인 정신이라는 말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크건 작건 본인의 업무에서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거 같아요. 풀칠러님의 장인 정신을 응원해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주

제 방청소도 제때 못하는 부류의 인간인 저는, 동료들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아묻따 하는 추진력도 그렇지만요. 어떻게 저렇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들 임하는지… 놀랄 때가 많거든요. 풀칠러님의 질문에 저의 1년 뒤 모습은 과연 어떨지 새삼 궁금해지네요. 풀칠은 계속 하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