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주 에세이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말에는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10년만에 만난 선배였죠. 함께 갈 사람이 딱히 없어 조용히 구경하다 얼른 자리를 떴답니다. 축하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결혼식에 참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나는 왜 이 선배에게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했나 생각해봤어요.

기쁘게 초대하고 기쁘게 초대받고 싶은데 대체 언제부터 이런 것에 눈치를 보게 된 걸까요?

10년 넘게 별다른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후배를 만나 청첩장을 건네려니 아무리 선배라도 좀 민망했던 것 같다. 그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그간의 시간부터 메우려는 듯 지난 10년 간 자신이 무슨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했다. 또 내 경우는 어떤지 물었다. 어떤 상황이든 그저 모면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정직하게 돌파하려는 태도가 내가 기억하는 선배의 모습 그대로라서 안심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나를 초대하지 않았을 선배에게 굳이 연락해 자리를 만든 것이 최소한 무의미한 일에 그치진 않게 됐으니까.

인스타에 결혼 소식을 알리는 글을 보면 “혹시 연락을 받지 못하셨더라도 그건 제가 부족한 탓이니 편하게 말씀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같은 내용이 꼭 포함돼 있다. 내 나이 30대 초반. 주변 사람들이 결혼할 때마다 비슷한 글을 읽다보니 궁금해진 것이다. 저 메시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초대하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연락도 안 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는 마음을 이겨낼 만큼 초대하고 싶은 것도 아닌) 중 실제로 먼저 연락해서 축하해 주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결혼식 참석에 대한 의견은 가지각색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조건이 있다. 초대 받지 않았다면 가지 않는다. 참불참을 고민하는 것도 초대 받은 뒤의 일이다. 사실 내 의견도 그렇다. ‘불청객’을 자처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서로 머쓱해질 위험을 왜 무릅쓰겠어. 물론 무릅쓰겠다며 나설 수도 있으나 애초에 그 정도 사이였다면 초대를 받았겠지. 그러니 초대 받지 않은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나서는 일은 ‘잘해야 본전’에 딱 맞는 사례인 셈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 연락을 받은 선배 역시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현상 변경을 시도한 쪽에서 그 의도를 소명하는 것이 응당 합당한 처사일 테다. 각자의 10년에 대한 10분 브리핑 시간이 얼추 마무리 될 때 쯤 먼저 말을 꺼냈다.

“일단 제가 선배한테 굳이 초대해달라고 연락한 이유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어, 맞아.”

처음 만났을 때보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선배는 한결 편하게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앗, 분명 섞여 있었다. ‘ㅎㅎ’가. ‘어’와 ‘맞아’라고 대답하는 틈에. 한때 나는 선배를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표정이 없을까’ 생각했다. 말을 섞을 때마다 긴장했던 건 다름아닌 나였는데 오늘은 왠지 동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치. 우린 이제 20대가 아니다. 한두 살 차이 쯤 친구 먹을 수 있는 30대 초반 아닌가. 그가 후배들을 대할 때 일관되게 보이는 무심한 태도에 쫄았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머나먼 과거에 두고 왔다.

선배는 내게 이상적인 ‘선배’의 이미지를 심어준 최초의 인간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관심 보이지 않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자기 시간을 들여서 메꿔주고 드물게 자리가 만들어졌을 때 공과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해준다. 하나뿐인 동기와 좀 더 친하게 지내라며 조용히 카드를 건넸던 사람. 어린 나이에 만난 그는 ‘어떤 선배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어 내겐 틀 같은 존재가 됐다. 나는 짧은 경력에도 운 좋게 롤모델 삼을 만한 훌륭한 선배들을 만났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담아내는 틀은 바로 그 선배가 만든 것이었다.

“나 좋아해도 되는 거야?”

다시 민망해졌는지 선배가 되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단지 그뿐이었다. 10년 넘게 연락하지 않았던 선배에게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말할 용기를 낸 이유 말이다(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한 게 아니었다. 용기를 내야 했다). 아마 그 선배와 다시 연락할 가능성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이끌어 준 사람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든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불청객을 자처할 것이다. 현재 내 옆에 있거나 미래에도 내 옆에 있을 사람인지 따지기보다는 훗날 돌아봤을 때 나의 인생에 있었던 사람인지 따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결혼식에 참석하는 기준이다.

야망백수 :  저는 프로결혼식 참석러입니다. 결혼식에 가면 신랑 신부 친구들이 입으론 웃으면서 눈으론 우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되잖아요. 전 그게 그렇게 감동적이더라고요. 결혼을 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맞다면 하객이 흘리는 눈물은 정든 친구를 다른 세상에 보내는 게 아쉬워서겠죠. 입가의 웃음은 친구의 기념비적인 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의 표시일 테고요.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 축의금이 얼마인지, 뷔페는 어땠는지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죠. 일상 속에 감춰진 순수는 이런 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나 봅니다.

마감도비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군요. 글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서울에 사람은 많은데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긴 쉽지 않죠. 갑과 을.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비즈니스 파트너. 그게 아니면 오늘 한번 보고 말 사이. 배신하지 말라는 말이 같이 낡아가자는 말처럼 느껴지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야망백수

헉. 전세대출 연장이라니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내신 겁니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건 견딜만 해도 사람 믿기 어려운 건 참 열받는 일입니다 그려. 아무쪼록 믿음직한 집주인과 걱정없는 n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야망백수

어이쿠 과찬이십니다. 아침 시간에 풀칠을 끼워주셔서 고맙습니다.

파주

이 품앗이를 보곤 “누가 저거 하나 삽시다! 산 사람이 답글로 리뷰합시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애석하게도 저는 요즘 약을 먹고 있었네요. 하하, 위스키 좋아하시는 풀칠러님들 계시죠…? 저 대신 꼭 부탁드립니다. 애드남스 싱글몰트, GS25 판매중 ^^,,

야망백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워낙에 남을 믿기가 힘든 요즘이긴 하지만, 우린 아직 서롤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잖아요. ‘신뢰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일들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