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작가의 단편 소설 ‘재활하고 사랑하고’의 주인공 ‘나’는 기업 공시담당자다. 한 번의 실수가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그는 시종일관 긴장 상태다. 게다가 계속된 과로에 그만 전정신경염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가만히 서 있으면 자꾸 세상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 어지럽고 메스껍다.

단편 소설 ‘재활하고 사랑하고’는 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았는데 그건 나도 직업 특성 상 매일 같이 공시를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결정, 주식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따위의 딱딱한 단어로 가득 찬 문서 뒤에 인간이, 그것도 다소 움츠러든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세상을 또 한 번 입체적으로 보게 만든다.

뜬금없지만 요즘은 상장사들의 2분기 실적 공시 시즌이다. 기업들이 2분기 영업실적을 공개하는 시기다. 일종의 성적표 자진 납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온갖 정보가 담겨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매출이, 영업실적이 증가했느냐다. 지난 분기, 전년도 분기와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숫자로 표시된다.

어느 날 공시를 가만히 들여다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나라는 사람에게 영업실적을 적어보라고 한다면 올해 내 성적은 어떨까 하고. 세일즈맨을 제외한다면 직장인이 분기별로 영업 실적을 계산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올해가 절반이나 지나갔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다보니 자조와 함께 밀려드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우선 올 상반기에는 판관비(판매비와 관리비)가 컸다. 일 때문에 심경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씀씀이가 헤퍼졌기 때문이다. 아울렛에 가면 옷을 한 움큼 집어왔고 온라인 쇼핑몰 핫딜 알람이 오면 다 먹고 쓰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대용량으로 구입했다. 뭣보다 기분이 울적하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휴대폰을 두고 최신 기종으로 바꿨다.

신년 계획도 답보 상태다. 영어 공부를 꼭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첫 걸음도 못 뗐고, 이젠 정말 해야 한다던 운동을 한 날도 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막연하게 올해는 할 거라던 이직을 위해 아직도 고군분투 중이다. 제3자가 내 상반기 인생을 찬찬히 훑어본다면(기대라도 있었다면) 아마 ‘컨센서스 하회’라는 성적을 매기지 않을까.

그래도 마냥 힘들고 울적했던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한 뒤로 한 번도 간적 없던 서울국제도서전에 갔고, 영화를 꾸준히 보게 됐다. 엄청 고생했지만 해외 출장도 다녀왔다. 모든 일이 잘 풀리진 않아도 어떻게 수가 나겠지 하는 아집도 생겼다. 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은 치열하게 버텼던 순간이기도 하니까.

가장 좋은 건 우리에겐 아직 하반기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하반기에 눈에 띄는 수준의 반등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7월에 시작한 것들이 요즘 제게 활력을 주고 있거든요. 이직한 회사에서 맞닥뜨릴 새로운 도전, 이사갈 동네에서 쌓아갈 새로운 추억. 그뿐만 아니라 상잔기에 골치를 아프게 했던 몇몇 요소들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환점을 맞이했거든요. 연말정산 때는 ‘등락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큰 실적을 이뤄낸 해’라는 평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지난주엔 가까운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요. 끊임없이 밀물과 썰물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다 보니 파도의 움직임과 통장의 현금흐름이 닮아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카드값을 내고, 다른 카드값이 연체되기 직전에 월급이 들어오고, 월세를 내고…….

하반기에도 처지는 아마 비슷하겠지만, 해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는 거라고 상상해 보면 일상의 불안과 궁핍에서도 목가적인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8월이네요. 오늘은 특별히 더 맛있는 저녁밥을 사 먹어야겠습니다.

저도 스타트업에서 인턴생활할 때 일을 하려고 앉기만 하면 커피챗해요~ 해주시는 분들 덕에 커피랑 도넛 많이 얻어 마시고 먹었는데요ㅎㅎ , 처음에는 이 회사는 일을 안 하나 싶었지만ㅋㅋ 나중에는 그런 자리에서 엄청 유용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진로 고민도 하고 너무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회사는 좀 더 크지만, 더 보수적인 곳이라 예전과 같은 자유로운 커피챗이 없어서 슬프네요 ㅠㅠ 풀칠덕에 잊고 있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감사해요!!

마침 얼마전에 짧게 커피챗을 했던 터라 집중해서 읽었어요. 아직 커피챗 경험이 적어서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건지, 그냥 적당한 연차에 해당되어 한번 찔러보는 건지 구별하는 능력은 없어 어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를 알아챌만한 신호가 있을까요?

동시에 커피챗만으로 바로 오퍼를 받은 아매오님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짧은 시간 안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이직을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