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는 없다 [풀칠 180호]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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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아매오입니다.

이번 달의 주제는 ‘괴물’입니다. 이 단어를 보셨을 때 뭐가 떠오르셨는지 궁금하네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하는 가지각색의 괴물들?

제가 떠올린 것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괴물 같다 느낄 때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 느끼는 이유도 참 다양할 텐데요.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적어봤습니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죠? 지난 주부터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말에는 서울도 꽃놀이 하기에 딱 좋을 만큼 필 것 같습니다. 무사히 남은 이틀 마무리하시고 부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와 대거리를 벌인 날이면 니체가 했다는 멋진 말을 퇴근길 지하철(1호선) 안에서 떠올리곤 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어쩌구 심연도 나를 저쩌구… 나는 부하 직원을 저렇게 대하지 않아야지.

알고 있다. 실은 상사가 옳았을 확률이 더 높다. 더 많은 경력을 가진 그의 판단력은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보다는 예리했을 것이다. 직책을 고려하면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테니 우리 팀이 놓인 상황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예외는 드물기 때문에 예외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일반･보통･평범에서 벗어난 상황을 그렇게 자주 마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상사와 한 판 붙은 팀원 A가 있다. 그와 상사 뒷담을 하다보면 갑자기 혼자 설득이 되는 묘한 순간이 온다. 상사의 말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을 A가 말하고 있고, A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내가 말했던 바로 그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결론적으로 상사가 맞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동급인 동료를 통해 들으면 이해하고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다. 그래서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탓한다.

돌이켜보면 상사에게 가졌던 불만은 대개 내용보다 그걸 전달하는 방식 쪽으로 향했다(생각보다 까라면 까는 스타일이다). 방금 중얼거려봤는데 “알겠는데…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 거?”라는 대사가 왠지 입에 익숙한 걸 보니 더욱더 확신이 든다. 이때 ‘전달하는 방식’은 단순히 싸가지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도 포함되긴 하지만 다양한 요소가 있다.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명했는지, 맥락을 충분히 공유했는지,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줬는지 등.

듣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왜 그렇게 잘 들렸는지, 말하는 상사는 이걸 모르는지, 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으리 다짐했다. 타산지석이니라. 저것만 피하면 중간은 가겠지.

그러나 반면교사는 없다. 사실 우리는 익숙한 것의 반대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허둥지둥하게 되고 허둥지둥하다 보면 익숙한 대로 하게 된다. 상사의 위치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때 그제서야 혼자 몰래 수치심을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이 꼭 예전의 상사를 보는 것 같아서. 그 사람도 몰랐던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를 이해 못 했을지도 있겠구나. 이제야 깨달아요. 역시 직접 겪어봐야 안다.

자신이 혐오하던 모습을 다른 데도 아닌 스스로에게서 발견했을 때 마치 괴물이 된 것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 듯하다. ‘초보 팀장’을 겨냥한 콘텐츠가 잘 팔리는 배경도 짐작이 간다. 반면교사가 아닌 정면교사를 찾고 싶은 거겠지. 그저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참 어렵다. 일을 잘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도.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괴물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야망백수 : 10명 정도 되는 파트를 리드한지 어느새 1년이 넘었더라고요. 지난 1년을 되돌아봅니다. 과연 나는 싸가지 있게 말하면서도 맥락을 충분히 설명했을까.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줬을까.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네요. 요즘 체력이 떨어지면서 인성을 유지하기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데, 이러다 ‘괴물’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네요. (어쩌면 이미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괴물이란 무엇일까요. 목표와 성과를 쫓으면서도 ‘다 사람이 하는 일’임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일과 일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일과 사람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마련일 텐데, 괴물이 되지 않고도 오래오래 돈 벌면서 살 수 있을는지, 걱정이네요.

마감도비 :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와 대거리를 벌인 ~'에서부터 이미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네요. 저는 사실 여태껏 상사와 대거리를 벌인 적이 없습니다. 제 성격 때문일까요. 뭣 같은 지시에 대가리가 터질 것 같았던 적은 있었지만요. 말이 좀 거칠었습니다. 속으로 삭히기만 한 날들이 떠오르고 말았네요.

직장에서는 절대 ‘예스맨’이 되면 안 된다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술자리에서 고민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단순히 노를 외칠 게 아니라 왜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는지, 그리고 다른 대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제시하는 거라더군요. 상사의 입을 빌리자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괴물이 된 저지만 언젠가 노를 외칠 날을 꿈꿔봅니다.

파주 : 최근에 어디선가(아마도 유튜브나 릴스)에서 본 건데 말입니다. 정신건강학자가 말하길 타인의 혐오스러운 모습은 어쩌면 자신이 가진 치부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몇 가지 사례를 떠올리면 곧장 수긍하게 되더군요. 실속은 없는데 말은 많은 사람, 그 많은 말 중에서도 재미는 없는 사람, 그리고 그걸 매번 반복하는 사람. 따흑,,,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는 만큼 제가 불편해하던 사람을 향한 연민이 솟아나더라고요. 그래, 그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겠지. 분명 위트 있는 사람이고 싶었겠지. 집에 가서 분명 또 이불킥하며 후회하고 있겠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더이상 타인을 미워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가더군요. 그러는 동안 스스로 혐오하는 저의 약점도 마냥 타이르기보단 다독이고 싶단 생각도 들더랍니다. 한참 모자란 인간이지만 일말의 여유를 가진 나, 의외로 나쁘지 않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