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대한 풀칠러들의 이야기, 네 번째 글입니다. 밤만쥬 님은 저(파주)의 원고에도 자주 등장하신 분인데요. (무려 풀칠레터 6호부터…!) 풀칠 멤버들 사이에서는 ‘북촌의 현자’ 혹은 ‘고닮과(본인이 키우는 고양이를 닮은 과장님)’으로 통합니다. ‘풀칠에 본드칠을 하게 되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하셨지만,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 걸 텍스트로 증명하신 듯합니다. 본인은 ‘공포물’이라 단언하셨지만요. 어쩐지 코믹물이 되어버린…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즐겨보시죠.

안녕하세요, 어쩌다 애독하던 풀칠의 일일 당번이 된 밤만쥬입니다.

역사상 가장 뜨겁다는 현재진행형인 여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영상 40도까지 올라갔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한반도의 사계절으로 단련된 한국인에게도 이번 여름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더위를 조금이나마 날려버릴 수 있는 납량특집으로 얼마 전 열대야 속에서 저를 얼어붙게 만든 무섭고 썰렁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배운다’는 행위만큼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좋은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미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땐 그저 소음에 불과했던 소리가 매미를 조금 알아가고 나면 땅속에서 수년 동안 갈고닦은 필생의 세레나데로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요. ‘시끄럽고 불쾌한 곤충을 참아내며 여름 보내기’와 아니면 ‘한순간을 위해 인고의 시절을 견뎌내는 서사를 가진 경이로운 존재에 감탄하면서 여름 보내기’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역시 후자가 좋겠죠.

이런 걸 보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낯섦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게으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낯설고 적대적인 존재들로만 채워지는 게 싫다면 귀찮아도 조금 더 부지런히 배울 필요가 있겠네요. 덕분에 오늘은 매미 소리에 귀를 한번 기울여 봅니다. 제가 사는 동네 매미는 참매미 같네요.

- 쟤들도 참 열심히다.

- 그러게. 짝 만나는 게 매미한테도 쉬운 일이 아닌가봐.

- 어떤 애들은 7년 정도를 땅에 살다가 겨우 올라온 거래.

- 그래? 더 늦기 전에 빨리 만나야겠네.

- 7년이라니, 갑자기 조금 불쌍해진다.

- 진짜 방금까지 분노가 치솟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이제 화도 못 내겠어.

- 많이 더웠어? 빨리 시원한 거 먹으러 가자.

카페에 가는 동안에도 매미는 아주 우렁차게 소리를 냈습니다. 다만 더이상 못난 마음이 들진 않더라고요. 밤만쥬님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나서야 한참 잊고 있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한 작가님이 유독 이 말을 애용하기도 했더랬죠. 제가 지난 여름밤 느꼈던 감정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아마 ‘연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여름만큼이나 뜨거운 분노를 단번에 진압하다니… 역시 연민은 힘이 세네요.

불안해지자마자 냅다 퇴사카드를 꺼내든 저는 오늘 레터를 만나 생각이 많아지네요. 조직 밖에서도 불안은 늘 제 그림자일텐데(어쩌면 제가 불안의 그림자일지도?). 어짜피 내맘대로 할거면서 고민하는 제스처를 충분히 취하는 것이 이 연극의 미덕인가… 라고도 생각합니다. 써주신 글 곁에 제 불안도 나란히 놓아봅니다.

오늘 아침에 <미세 좌절의 시대>라는 장강명 작가의 산문집을 읽다가 불안 옆에 나란히 두어도 좋을 만한 글 한 토막을 더 찾아서 공유해 드려봅니다.

"…인간의 뇌는 아주 값비싼 시뮬레이터다. 엄청난 양의 당과 산소를 소비하면서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따위 답 없는 질문에 몰두한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기관이다." -장강명, <자기혐오에 대처하는 요령> 중

불안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달고 있는 ‘뇌’라는 비싼 시뮬레이터가 밥값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고성능 기기도 있고, 시간이라는 귀한 자본도 충분하니 이제 내린 결정을 옳게 만들어 나갈 일만 남았네요. 다 잘될 겁니다.

저는 최근 몇년간 불안하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어요. 어렸을때부터 굴곡있는 삶을 살았던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인생의 큰 틀을 잡고 계획을 짜면서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을 잡고 버텼어요. 기정님처럼 삶의 중심을 찾고자 늘 퇴근 후의 시간은 자아성찰에 매달리곤 했어요. MBTI를 탐구하고, 애니어그램을 탐구하고, 과거의 안좋았던 경험들을 곱씹으며 잘버텼었구나 생각도 하고 응원도 하고요.

그래서 갑자기 어느 순간 삶이 안정되었을 때는,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뭐야? 이제 자아성찰하며 계획 짜며 버티지 않아도 안정적이잖아? 그럼 난 이제 뭘 생각하지? 그 순간부터는 저도 모르게 뭔가 내 삶에서 잘못된 것을 찾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제 모습을 보니 불안한 것을 만들어 그걸 파고들고 있더라구요. 이제는 반대로 자아성찰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나쁜 것들만 나의 동기로 삼고자 찾고 있었던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안정에서 벗어나서 다시 새로운 길을 도전해보고자 해요. 도전하는 저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서요.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좀 후회해도 괜찮죠 뭐. 저는 늘 밤에 불안해서 이것저것 곱씹어요.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돼요. 어느 날에는, 여전히 불안한 아침도 맞이할 수 있겠지만 그 불안한 아침도 사랑하는 나와 나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너가 요즘 참 힘들구나, 그럴 수있지 하고 친구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나를 안아줄 수 있다면 참 좋을거에요. 한달에 한번 쓰는 저의 일기장 마지막 줄은 대부분 '너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못해도 괜찮아.' 랍니다.

불안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지금 제 상황이 떠올랐어요. 저 역시 회사를 관두고 백수가 된지 이제 갓 한달이 넘었답니다. 벌써 세번째? 아니 네번째 퇴사인 것 같아요. 퇴사를 할 때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겠지, 더 나은 커리어를 갖추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쩐지 퇴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행과 동행하겠다는 그 말씀이 위로가 됐어요. 저도 이제 그 불행과 동행을 한 번 준비해보겠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들이 제 머릿속에도 있다면, 제 감정의 대장은 불안이일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풀칠 제목을 보자마자 홀린듯이 들어왔습니다. 전 기정 님만큼 열심히 살지도 않은 것 같고, 그냥 불안해하며 시간을 보내기만 한 것 같은데 느끼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현재의 불안에 아무리 대비를 해봐도 또 다른 새로운 불안이 틈을 비집고 나와 싹을 틔워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끝없는 싸움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이 분야를 믿지 않는 분께는 좀 민망하지만) 저를 꽤 오래 봐 오신 무속인 분께서는 저더러 ‘뭐가 그렇게 늘 불안하고 무섭냐’고 하시더군요. MBTI가 세상을 휩쓴 후로는 N의 성향이 너무 강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상상하는데 대부분 현실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니 일종의 쿠션처럼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레터에 나온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다양한 방법들이 참 좋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내 불안을 달래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데, 저만의 방법이 안 먹힐 때 써먹어볼까 해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해버립니다. 불안에 빠져있다가도 기분을 전환시켜주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가장 위로가 되는 건 나만 이렇게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는 부분이네요. 세상의 모든 불안이들 화이팅︎ ︎.ᐟ

여행을 준비하고 계시다니 축하드립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1인으로써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너무 부럽습니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한정된 백수생활의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어차피 뭐 평생 일할건데 지금 좀 놀지뭐~하는 정도로 여유가 생겼어요 ㅎㅎ

원조맛집 풀칠팀분들이 써주시는 글도 좋지만 외부 필진분들이 써주시는 글도 별미네요. 풀칠에 투고하려면 어떤 심사절차를 거쳐야 하는걸까요?

와 오늘 기정 님의 글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어요. 요근래 퇴사라는 꿈틀이가 자꾸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더더욱이요. 그냥 글이 너무 좋아서 곱씹어 읽고 소리내어 읽는데 눈물이 찔금 날 정도였어요. 본래 글쓰는 분이 아니라 영상을 만드시는건지요?! 이어지는 야망백수님의 답글도 너무 좋았고 이번 호 파주님 글은 또 역시나 재밌네요ㅋㅋㅋ 아매오님과 마감도비님의 답글도 좋아요!! 짤방토크에서는 어쩜저리 적절한 짤과 센스 넘치는 코멘트를 남기시는지. 풀칠레터 정말정말 애정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