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파주입니다. 짧은 가을이 금세 지나갔네요. 이번에야말로 진짜(진짜 최종) 겨울이 온 모양입니다. 단풍이 물들고 지는 동안 저는 크고 작은 역경을 몇 차례 겪었는데요.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못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 오늘 남은 업무를 잘 마치고 집에 가서 말끔하게 죽어버려야지!'라고요. 그 무렵 회사에서 하루 동안 벌인 실수들을 모아 놓으면 <파주는 못 말려>라는 제목으로 극장판 분량의 에피소드를 충분히 만들 정도였거든요. 하여 오늘은 일잘러가 아니라 '일못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 평일을 실패로 기록하는 사람들. 매일 괴로워하며 또다시 예정된 실패를 맞이해야 하는 일못러에 대해서요. 하지만, 세상에 어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오늘도 어김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타깃광고가 날아들었다. <일 잘하는 PM이 되고 싶다면>, <눈치껏 못 배웁니다, 일센스>. 읽기만 해도 일잘러가 될 것 같은 매력적인 제목들이 당장 구독료를 결제하라고 들이댄다. 일은 못해도 돈 쓰는 거 하나만큼은 기깔나게 해내는 나는 단번에 결제창까지 다다랐다. 습관처럼 간편결제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찰나, 퍼뜩 정신이 들어 손가락을 놀려 팝업창을 재빠르게 닫았다. '카피를 참 영약하게도 잘 뽑았네'라는 감상 뒤에 어제 데드라인에 쫓겨 엉망으로 넘기고 온 그지 같은 슬로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때늦은 부끄러움이 밀려와 이른 아침부터 쌩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쓴 커피를 넘기면서 며칠 전 SNS에서 보았던 직장인 밸런스 게임을 떠올렸다. 밸런스 게임의 가장 애석한 점은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게임 속에서는 우하하 팡파레를 외치며 '밭 가는 소'를 택했는데 현실은 전자(숨 쉬듯 자괴감 느끼기)의 삶에 가까웠다. 엘레베이터에서 이따금씩 마주치는 스테디셀러 작가, 옆 팀에 있다는 N만 유튜버... 굳이 그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회사에서 자괴감을 느낄 거리는 공기처럼 무궁무진했다. 당장 나만 빼고 죄다 일잘러인 팀원들과 일하다 보면 내 밥값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무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근무시간 내내 노션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투두리스트를 작성했건만 반도 해내지 못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해치웠어야 했던 일을 잔뜩 남겨둔 채 집으로 도망치며 지하철이 꼭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어야지 진짜.' 무능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다가도 내일 쳐내야 할 일을 아른거렸다. '그래, 일단 내일 일은 끝내고 나서 죽어야지.'
저녁 8시 정각에 맞춰 2030 직장인을 정조준 한 듯한 광고가 눈치 없이 팝업창을 띄웠다.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라니. 영악함을 넘어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야흐로 일잘러의 담론이 득실거리는 시대다. 그들처럼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콘텐츠를 뒤져보다 보면 세상에는 나 빼고 죄다 일잘러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잘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일못러로 사는 건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다들 일을 즐기는 방법, 자신의 성과를 연봉협상에 이용하는 요령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나는 월급값만 겨우 해내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일잘러의 시대에서 일못러로 나고 자란 스스로가 꼭 도태된 돌연변이 같았다. 분명 세상의 절반이 일잘러라면 그 절반은 일못러일 텐데, 나 같은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다 숨어버린 건지. 일못러들은 다들 죄인의 심정을 한 채로 집에 돌아가 벽에 머리를 쥐어박고 있느라 바쁜 걸까. 그렇다면 나도 어딘가에 머리를 냅다 들이박고 숨어버려야 하는 걸까. 자책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사회에서 만난 선배A와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숨 쉬듯 자괴감을 느끼는 근황을 토로했다. "사무실에서는 숨이 잘 안 쉬어져. 들숨에는 자괴감이 밀려들어 오고 날숨에는 자존감이 숭숭 빠져나가는 거 같아." 하소연을 무심하게 듣던 선배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 자기가 일못러라고 느끼는 사람은 일못러가 아니야. 진짜 일존못러는 자기가 일못러인지도 몰라." 참, 하다 하다 일못러 자격에도 미달이라니. 그러고 보면 이전 회사의 사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자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어찌 됐든 회사일이라는 건 결승점 없는 장거리 달리기니까. 더딘 속도로 뛰던 사람도 꾸준히 내달리다 보면 중간쯤은 갈 수 있을 거라는 조언도 함께 주었다.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거다. 지금 당장은 일못러라도 염치라는 게 있는 인간이라면 능히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할 테고, 결국 일잘러가 되진 않더라도 일못러 정도는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 꼭 <토끼와 거북이>에 나올 법한 유치한 위로였지만 어쩐지 그럴 듯한 말처럼 들렸다. 열등감도 결국에 일존못러가 결코 가지지 못한 미덕이라는 거니까. 일못러라고 스스로를 박해하며 심해어처럼 몸과 마음이 잔뜩 찌부된 뒤에야 알았다. 내가 일못러는 돼도 '일존못러'까지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메타인지를 해냈으니 이제 남은 일은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뿐이다. 때로는 '나는 그냥 일못러일뿐 일존못러는 아니다'라는 각오가 우스운 자기연민이나 기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내가 나를 연민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연민해 줄까. 꼴사나운 착각보다는 못나도 솔직한 편이 낫다고 위안하며, 오늘도 스스로를 실컷 연민하고 기만한다. 요즘 누구도 등을 두드려 주지 않는 날에도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처럼 굴며(내가 일존못러까지는 아니다!) 일한다. 물론 어김없이 <파주는 못 말려>에 들어가기 충분한 흑역사를 만드는 날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세상에 어디 실패하지 않는 사람만 있을까. 자주 실패하고 실컷 박살도 나면서도 일못러의 그늘을 1mm씩 벗어나는 중이라고, 오늘의 실패가 결코 내년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야망백수 :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면 매번 성공만 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어느 누가 ‘일잘러’와 ‘일못러’를 칼같이 나눌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린 '일잘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너무 큰 탓에 스스로를 '일못러'로 여기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는지도 몰라요. (당장 지금 틀어놓은 유튜브에서도 “퇴근하고 노는 거 너밖에 없다”는 광고가 나오네요.) 다음엔 또 어떤 키워드가 우릴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지… 우리는 왜 ‘일잘러’가 되고 싶은 걸까요? ‘일잘러’란 도대체 뭘까요? ‘일잘러’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도 자기 업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을 텐데, 이 욕심과 광고에서 호명하는 ‘일잘러’는 과연 동일한 걸까요? ‘일잘러’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건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엔 합니다. 파주님이 에세이에서 말한 ‘태도’와도 닿아있는데요, 일 하나에만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누군가의 노하우나 인강을 찾아보지 않아도 지금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으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직도, ‘퍼스널브랜딩’도, ‘파이프라인’도 다 좀 귀찮거든요.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저런 것들을 여전히 쫓고 있긴 합니다만…갈수록 마음만 바쁜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서요. 일은 잘 하고 싶은데, 일 벌리긴 귀찮고. 그냥 제가 업으로 삼은 일을 부끄럽지 않게 해내는 걸로 보람을 느낄 순 없는 걸까요. 일잘러랑 비교하면서 자책하는 것도 싫고 ‘일존못러’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위안을 얻는 것도 싫고(이런 위안은 자칫 긴장을 높으면 경멸로 치달을 수도 있으니까요)… 싫은 게 많아서 큰일이네요. 일을 좀 더 잘하게 되면 보상으로 일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갖게 될까요? 음…근데 워커홀릭도 싫은데…
아매오:
경쟁이나 성과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불의한 것들이 활개치는 시대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성과를 낸 사람이 충분한 보상과 대우를 받는 것은 마땅하죠. 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째서 그 논리가 경쟁에서 밀리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바닥 없이 비참해져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에요. 이런 생각들이 득실대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에 시달리는 것일지도요. 일잘러가 아니면 일못러가 되는 세상! 성장을 볼모로 삼아 개인의 노력과 시간과 돈을 착취하는 세상! 명문대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로부터 꽤 멀어졌는데, 사고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모습을 보니 왠지 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네요.
마감도비 : <파주는 못말려>의 장르는 사실 로맨틱 코미디일지도 모릅니다. 파주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하하 유니버스'인 셈이죠. 아마 파주님 빼고 모두 파주님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아마 지금도 파주님의 깔끔한 에디팅과 꼼꼼한 업무 배분, 유연한 의사소통 능력과 트렌드를 읽는 센스에 감탄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건 제가 풀칠을 함께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이걸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냥 일못러일뿐 일존못러는 아니다'라는 각오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은 '사기꾼증후군' 또는 '가면증후군'을 겪는다고 하잖아요. 자기 자신이 주위 칭찬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기에 대한 신뢰와 자기객관화 능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 거 같아요. 일찍이 비법을 깨우치고 누구보다 빨리 일못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파주님의 달리기를 응원합니다. by.야망백수 ▲ 저도 좀 때워 주세요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이 거기 풀칠 멤바들! 자네들 혹시 이거 좋아하나...? 이번 주도 분골쇄신 🌾풀칠🌾 만드느라 고생한 야망백수, 아매오, 파주, 마감도비에게 김밥 한 줄 쏘고 싶으시다면 아래 버튼으로 후원해주세요🍚 풀칠러님의 따뜻한 응원은 저희가 계속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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