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정도 회사를 다녔습니다. 콘텐츠 에디터와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밥벌이 7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를 백수 상태로 맞았습니다. 일 년 내 ‘뭐 해 먹고 살지?’라는 질문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이어온 고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을 줄이야. 그래도 이제는 조언을 해주거나 그 자체로 영감이 돼 주는 선배 혹은 동료들이 많습니다. 같은 고민도 다르게 살펴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자영업자로 전직했습니다. 업종은 음식점업. 메인 메뉴에 밥과 국, 6가지 반찬을 내는 백반집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깝든 멀든 제 지인이라면 이와 관련해 궁금해 할 법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몇몇 지인에게 소식을 알렸을 때 받았던 질문들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Q. 지금까지 하던 일은 어쩌고?
커리어를 크게 전환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했음. 지금까지의 경력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감이 잡히지 않았음. 콘텐츠 에디터와 커뮤니티 매니저 혹은 그와 유사한 포지션 채용공고를 읽을 때마다 '내 경력이 너무 애매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음. 실제로 많이 떨어짐.콘텐츠와 커뮤니티는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음. 물론 일로 할 때 그렇지 않았다는 건 아님. 다만 취미로서는 꽤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일지 몰라도 일로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음. 무엇보다 어느 순간부터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음.
Q. 왜 하필 자영업?
직장인으로서 더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했음. 월급 받는 직장인의 한계 따위를 얘기하는 게 아님. 좋은 회사로 옮기는 것, 연봉을 크게 높이는 것,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등 직장인으로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직장인으로서 나의 역량이 받쳐줘야 함. 그런데 현재 직장인으로서 나의 역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아주 큰 비용을 들여야 함. 심지어 투자한 만큼 올린다는 보장도 없음.…자영업을 해볼까?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마찬가지만 현재 내 조건에서는 직장인보다 자영업자의 상방이 더 크지 않을까?(물론 하방도 크지만) 시작은 이처럼 단순했음. 아무것도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던 셈.
Q. 요리 할 줄 앎?
모름.
Q. 그런데 식당을 하는 이유는?
보고 자란 게 그거였기 때문에. 나는 꽃집 아들이자 고깃집 아들로 자랐음. 아버지가 꽃집, 어머니가 고깃집(+식당)을 하셨음. 그런데 꽃은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꽃꽂이나 꽃다발도 할 줄 모름. 음식은 좋아하는 편이었음(살아온 기간 중 비만이었던 날이 더 많음). 물론 음식도 할 줄은 모르지만. 어쨌든 둘 다 익숙한 아이템이고 할 줄 모르는 건 똑같으니 이왕 한다면 좋아하는 걸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음.그래서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했음. 9월 초에 커피 한 잔 하며 넌지시 얘기를 꺼냈음. 사실 이때는 나도 별 생각 없었음. 앞선 답변에서 언급했지만 정말 충동적으로 대충 생각해본 거임. 심지어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간 것도 아니었음(결혼식 참석 차 잠깐 들름). 그런데 의외로 어머니 반응이 긍정적+적극적이었음. 어어? 예상 외인데? 그때 나는 3박 4일 여행을 앞두고 있었음. 다음 주에 진지하게 대화나눠보자고 했음. 다시 만났음. 자영업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음. 그러자 어머니가 술술 얘기를 쏟아냄. 3박 4일 동안 이미 여기 저기 물어보고 알아보고 찾아봤던 거임.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이렇다 할 경영서를 읽어본 적 없었을 어머니가 그러한 책에서 설파하는 내용과 흡사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음. 단순히 음식 솜씨만으로 자영업을 하셨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함. 함께한다면 보고 배울 게 많을 것이라고 확신함. 어머니를 믿고 식당을 하기로 함.
Q. 밥집을 해본 적 없으신데 왜 굳이 밥집을?
원래는 감자탕집을 하려고 했었음. 그건 어머니가 확실히 전문가임. 다만 감자탕집은 밥집에 비해 홀&주방 규모가 커야 하고 시설도 상대적으로 특수해서 창업 비용이 높음. 그리고 현재 경기가 너무 안 좋다는 게 체감될 정도라 감자탕처럼 단가가 높은 음식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데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함.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사람들이 밥은 먹으니까. 상대적으로 소규모 홀&주방에 이렇다 할 시설도 필요 없고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백반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함. 생각이야 할 수 있지. 여기에다 밑반찬과 밥 메뉴를 할 줄 아는 이모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음.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모들의 도움을 정말 정말 많이 받았음. 셀프 인테리어부터 초기 세팅과 운영까지 체크&투두리스트가 마련된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시행착오를 상당히 줄였음. 아마 혼자였다면 아직도 헤매고 있었을 것 같음.
Q. 휴무는?
아직 없음. 일단 두어 달 영업해보고 정해야 할 것 같음. 수리 기간에는 일요일만 되면 거리가 한산해지길래 그때 쉬게 되려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일요일은 피크 타임이랄 게 없이 골고루 손님이 찾아와서 매출이 떨어지지 않음. 게다가 연말연초라는 다소 특수한 시즌이다보니 두고 봐야 할 것 같음.
Q. 앞으로 쭉 외식업 할 생각? 요리도 배우고?
당연히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쪽 도메인에서 쭉 커리어를 이어갈 생각임. 물론 가게 하나 잘 운영해서 먹고 살자는 게 전부는 아님. 백반집에서는 세 가지 목표가 있음.첫째, 식당 운영 구조 학습은 쉽게 말해서 장사를 배우는 것임. 특히 식당 하나를 돌리는 데 필요한 A to Z를 머리로 몸으로 익혀야 함.둘째, 수익 축적. 다음 가게를 시작하기 위한 종잣돈까지 마련하는 것임. 물론 이번 가게를 시작하는 데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건 별도.셋째, 요리 실력 향상. 사실 백반집 음식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님. 그래도 외식업에서 요리는 기본 중 기본이니 익히긴 해야지.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빠르면 3년, 늦어도 4년을 쓰려고 함. 사실상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이라고 봐도 무방함. 꽤 도전적이지만 터무니 없지도 않음. 중요한 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임. ‘다음 가게’와 관련한 그 이후의 계획도 꽤나 구체적으로 그려놨는데…부끄러우니 지금은 노코멘트.
Q. 오픈 소감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사람이 너무 많음. 아무리 갚아도 모자랄 것임. 결국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고 스스로 뿌듯하게 느낄 만한 성취를 이루는 게 가장 쉬운 보답법이라고 생각함. 열심히, 잘 해야지. 해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