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는 날의 가장 캄캄한 밤. 지나간 한 해에도 다가올 한 해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시간, 저는 지금 공원의 진입로에 있습니다. 희망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서 걷다 보니 이리로 오게 됐죠.
공원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리자면, 정말로 근사한 곳입니다. 초록이 넘실대는 계절엔 낙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요. 젊은 엄마 아빠는 캠핑의자에 앉아 뛰어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로맨스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연인들은 땅거미가 질 때까지 배드민턴을 치곤하죠.
그러나 지금은 한파가 몰아치는 계절입니다. 이 시간엔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공원은 열려있지만 낙원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때가 아닌 거지요.
하지만 이 시기에만 드러나는 풍경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들이 잠들어 있는 지금, 공원의 진입로 한가운데에 서면 비로소 공원의 전체 구조가 눈에 들어오거든요.
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볼까요. 거기엔 놀이공원이 있습니다. 매표소가 있고, 핫도그와 탄산음료를 파는 매점이 있고,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범퍼카 같은 놀이 기구들이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죠. 정 중앙에 우뚝 솟은 자이로드롭은 놀이공원의 명물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혹은 추락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섭니다. 도파민을 느끼려고, 비명을 지르려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려고 돈을 냅니다.
이번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죠. 거기엔 숲이 있습니다. 짚단이 깔린 소박한 산책로가 눈에 보입니다.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해진 철봉이 입구 근처의 공터에 맥없이 놓여있네요. 그 뒤로는 잡목이 우거져 있습니다. 숲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가도 도시의 소음은 아득해지리란 게 느껴집니다. 조금만 집중한다면 딱따구리나 청설모를 찾을 수 있겠네요. 오래된 숲입니다. 어쩌면 공원이 있기 전부터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싹 마른 겨울의 낙엽이 가뜩이나 좁은 산책로로 흘러넘치고 있네요. 입장료는 따로 없습니다.
알록달록하고, 짜릿하고, 반짝거리지만 유료인 공간과 어둡고 고요하고 원래 있었기에 무료인 공간의 대비. 저는 여전히 차디찬 보도블록 위에 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수놓아진 신비한 태피스트리 같은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희망은 어느 쪽에 있을까요? 저는 어디로 가보면 좋을까요?
놀이공원에 가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때는 저도 놀이공원의 즐거운 고객이었죠. 친구들과 같이 목청껏 소리치며 세상을 빙글빙글 돌리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매점엔 정신을 쏙 빼놓는 물건들이 어찌나 많던지요. 우리는 모든 놀이 기구를 물릴 때까지 타고 싶었고, 온갖 종류의 기념품을 갖고 싶었고, 솜사탕이며 비눗방울이며 하는 금세 사라지는 달콤함을 기어이 느끼고 싶어 했었죠. 놀이공원에서 일을 하라고 했어도 아마 했을 겁니다. 매표소에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회전목마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다시 돈을 쓰고-.
그러나 저는 지금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희망이라기엔 너무 뜨겁고, 너무 달고, 너무 요란합니다.
차라리 숲으로 가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유료화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의 소재지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이죠. 숲에선 놀이공원에서처럼 친구를 많이 사귀긴 어려울 겁니다. 대신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를 벗 삼아 사색을 즐길 수 있겠죠. 아직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크, 여기에 매점은 없나요? 화장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삶에 대한 기대로 걷기 시작한 낭만적인 오솔길을 허기나 요의 같은 시시한 이유로 돌아 나오기란 얼마나 쉬운가요. 결국엔 누구든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오솔길에서 희망을 찾으리란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요.
저는 여전히 캄캄한 창공 아래, 공원으로 가는 진입로를 서성대고 있습니다. 놀이공원은 닫혀있고 숲은 너무 어둡습니다.
놀이공원.
숲.
놀이공원.
숲.
어쩌면 지금은 통념과는 달리 희망을 찾기에 좋지 않은 때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공원의 진입로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가볼까 고민하는 것뿐입니다. 희망은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길 위에 놓여있는 걸까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춥습니다. 희망이 바로 앞에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주우려다간 손가락이 얼음조각으로 깨져버리고 말 겁니다. 짙은 남색의 창공에 아주 작은 새가 짹 하고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여기 이 시공간의 어딘가에 분명히 희망이란 것이 있을 것도 같은데, 조금 더 둘러보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워져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온 제게 애인이 묻습니다.
희망은 찾았어?
눈가에 말라붙은 성에를 떼어내고 그 애의 눈을 바라봅니다. 희망을 찾았다는 대답 대신, 여태껏 희망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아주 오랫동안, 끈질기게 믿어왔다는 이상야릇한 진실을 떠올립니다.
두 뺨이 온기에 적응하느라 달아오르는 동안에,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새해가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