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다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가을 단풍을 즐길 새도 없이 어반자카파의 <코끝에 겨울>이 생각나는 날씨네요. 이번 주 풀칠에는 '이직 후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에 대해서 써보았습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이직 권하는 사회죠. 회사에 미련하게 남아 있기 보다는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 이직하는 것을 더 나은 태도로 보고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일까요. 저 또한 한 때는 이직을 지켜만 보는 입장이었고, 앞으로도 자주 그럴 텐데 말이죠. 어떤 계기로 인해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는 좀 슬펐다는 걸요. 누군가의 이직을 지켜보는 여러분의 심경은 어땠나요? 회사에 다니는 동안 기어는 P에 두는 편이다. 그래서 자주 슬펐던 거 같다. 에이전시와의 점심 미팅 자리였다. 상대측은 두 명. 한명은 구면, 한명은 초면이었다. 전자는 반년 전에는 과장과 함께 나온 대리분이었다. 오늘은 그 대리분이 사원분을 데리고 나왔다. 사원분이 앉은 테이블 가장자리에는 반듯한 가죽 명함집이 놓여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문자는 봤어요. OO과장님은..?” “▲▲으로 가셨어요.” “아, 인하우스로 가셨네요. 잘 됐네요!” “네...” 업계에서 이직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으므로(사실 너무 잦았으므로) 나는 대화의 첫 단추를 무심결에 흘려들으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자료는 잘 받았다. 고마웠다. 이거 어떻게 돼 가냐, 일은 요새 어떠냐, 누구는 잘 계시냐 등등. 업계 동향 얘기, 취미 얘기, 사람 얘기... 주제가 돌고 돌다가 잠깐의 침묵이 돌았다. 우연찮게 세 명의 대화 게이지가 모두 바닥났던 것이다. 그 순간 할 말이 마땅치 않았고 자꾸 울리는 휴대폰이 신경 쓰였던 나는 분위기도 바꿀 겸 “요즘 이쪽 업계 이직이 정말 잦더라구요. 다들 능력이 있으셔서...”라고 호탕하게 첫 마디를 내질렀다. 직업과 직장은 달라도 비슷한 연차 끼리 식지 않는 주제가 주식과 이직이다. 그리고 보통은 업계 이직 얘기를 하면 눈에 불이 들어온다.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내가 모르고 있는 건 없는가. 이 두 가지가 뉴스의 존재가치 아닌가.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그건 말 그대로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차, 싶어서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대충 아무 말이나 섬겼다. 다행히 그 뒤의 대화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탔고 연말에 보자는 인사를 하며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뭐지... 뭐였을까. 마음 한편이 꺼림칙한 채로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 문득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이직은 누군가에겐 안목 없음, 또는 현 직장의 비전 없음으로 해석될 때가 있다. 설사 회사와 당사자 간의 의견이 달랐다 하더라도 옆 자리 누군가에겐 그 여파가 쓰나미로 밀려온다. 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좋아서 남았건 싫지만 달리 수가 없어 남았건 누군가가 떠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전 직장에 다니면서 이직에 실패했던 순간보다도 누군가 떠난다고 할 때 더 많이 우울했다. 나만 능력이 없어서 여기를 지키고 있나 싶어서. 누군가 떠난다는 얘기를 할 때면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여기서 하는 일에 일말의 재미를 느꼈는데. 나는 여기서 버텨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럼 지금 직장은 이 정도 수준이고, 나는 여기에 속할 뿐인 사람인 건가, 하고 말이다. 많은 미디어, 많은 조언자들이 이직과 퇴사에 대해 목 놓아 얘기하지만 정작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얘기를 하지 않는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 혹은 남기로 한 사람들. 기어를 P에 두는 사람들. 밀어도 밀리지 않고, 당겨도 당겨지지 않는 든든한 사람들이 슬픔을 거두면 좋겠다. 야망백수 : 전 점심시간마다 회사 근처 수목원에 가는 버릇이 있는데요, 어느 날엔 나무를 보면서 샘을 내기도 합니다. 뿌리내리고 광합성하면서 잘 사는 게 부러워서요. 저는 정착과 밥벌이를 못해서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애 같은데, 나무들은 타고난 어른인 것 같아요. 이번 주에 제안을 하나 받았는데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삶의 터전, 방식을 정말 바꿔야 하겠더라고요.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닙니다만 또다시 고민거리가 생긴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랑 계약 기간도 좀 남아있고, 이제 겨우 일이 손에 익어서 연말까진 한숨 돌리나 싶었거든요. 잠깐 주차할 공간을 겨우 찾아서 막 P 기어에 손을 올렸는데, 엔진이 식기 전에 계속 움직여야 하는 게 게임의 규칙일까요? 언제쯤 주차 말고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좋게 보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나쁘게 보면 불안의 근원인 이 유동성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긍정적으로 부딪치는 게 개인에겐 최선이겠지만, 저는 나무한테도 샘을 내는 좁은 도량의 소유자라 유동성을 상찬하는 말들 앞에선 늘 조금은 께름칙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누구나 기어를 P에 두고 싶어지는 때가 있으니까요. 천진한 유동성 예찬이 나름의 이유로 머물기로 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바삐 흘러가는 세상에서 머물기로 한 건 그렇잖아도 좀 슬픈 일이니까요. 흐른다 흘러 현대사회. 저는 '흐름의 기쁨'을 누리는 만큼 '머무름의 슬픔'도 지켜내고 싶네요. 왠지 이 밸런스가 어떤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는 노하우가 되어 줄 것 같아서요. 아매오: 떠나는 사람을 보낸 뒤의 퇴근길에 찝찝한 마음이 남았던 것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능력의 부족 탓이기도 했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던 탓이 제일 컸어요. 나는 아직 어떻게 나아갈지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구나. 요즘엔 그런 찝찝함이 덜합니다. 일을 하며 재미를 느끼고 성취도 얻고 있거든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을 마친 상태고요. 저 또한 '삶의 다음 스테이지'를 그릴 수 있게 된 거죠. 회사를 떠나거나 남는 것은 단지 선택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는 현 직장을 다닌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 전 직장을 오래 다녀서 그런 이미지가 생겼는지 다들 오래 다닌 걸로 알고 있다고요. 어쩌면 나중에는 '남겠다는 선택'이 더 빛날지도 몰라요. 그것은 시간이 쌓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니까요. 파주 : 다년간 뚜벅이었던 탓에 저도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요. 기어를 P에 두면 웬만한 경사길에도 차가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어를 P에 잡아둔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다사다난한 일이 벌어지는 회사에서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강한 힘을 내고 있는 셈이죠. 돌이켜 보면 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기어를 P에 둔 적이 없었단 생각이 드네요. 회사를 다니며 저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반대로 타인에게 실망을 하면 큰 고민 없이 등을 보이고 냅다 도망쳤거든요.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요. 조금 더 버텨봤다면, 조금 더 멋지게 돌아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은 남네요. 가능만 하다면 이제는 저도 기어를 P에 둘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마감도비님의 말마따나 밀어도 밀리지 않고, 당겨도 당겨지지 않는 든든한 사람이요. by.야망백수 ▲빗물이 흐르던 오늘 퇴근시간, 길 건너의 주차관리소를 보느라 잠시 멈췄습니다.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호에 보내주신 풀칠이야기 답장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어이 거기 풀칠 멤바들! 자네들 혹시 이거 좋아하나...? 이번 주도 분골쇄신 🌾풀칠🌾 만드느라 고생한 야망백수, 아매오, 파주, 마감도비에게 김밥 한 줄 쏘고 싶으시다면 아래 버튼으로 후원해주세요🍚 풀칠러님의 따뜻한 응원은 저희가 계속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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