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야망백수입니다.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2021년도 어느새 딱 보름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이번 주 <풀칠>엔 방을 옮기려고 이삿짐을 싸다 가족을 떠올렸던 순간의 이야기를 담아 보냅니다. 돌아보니 혼자 살기 시작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요. 처음 자취할 땐 방종과 쾌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 그저 기쁘기만 했는데 요즘엔 종종 가족 생각이 나더라구요. 연말이라 그런 걸까요? 지금 풀칠러님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연말을 보내고 계신가요?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던 남은 올해 동안엔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풀칠 겨울방학 공지 저희 <풀칠>은 1월 5일까지 잠시 휴가(실제론 회사 다니겠지만요,,,)다녀오겠습니다! 새로운 콘텐츠, 더 재미난 이야기 준비해서 돌아올게요 :)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좀 넘었다. ‘집 나온 지 1년’이 무슨 대단한 기념할 거리는 아닌 것은 물론 알지만, 방을 옮기다 보니 생각이 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너절했던 지난 1년을 복기하며 부끄럼에 혼자 고개를 젓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지. 오랜만에 절에 다녀오는 김에” 엄마는 예전부터 종종 불공을 드린다며 절에 가곤 했다. 그렇다고 독실한 불교 신자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교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믿지도 않으면서 그놈의 불공은. 무릎도 안 좋으면서. 불공 드린답시고 고생할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져 짐을 싸다 말고 캐리어에 걸터앉았다. 나는 어쩌다 밤낮으로 날 위해서 불공을 빌어주는 엄마랑 떨어져서 이 캐리어를 끌고 건조대를 피면 꽉 차는 좁은 방을 전전하게 되었던가. 사실 퍽 대단한 일은 없다. 우리 가족은 워낙 별 볼일 없는 소시민이어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몰락이 찾아올 틈도 없었다. 그냥 아빠가 나이를 먹어 정년퇴직을 했고, 다른 일을 찾다 보니 이사를 해야 했고, 나 역시 일을 해야하니까 회사 근처에 붙어있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건 그냥 귀찮게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식 성명서에 가깝다. 알다시피 공식 성명서는 사실이긴 하지만 늘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그것만으론 진실을 알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한 문장에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집을 떠난 이유에 대한 진실을 사실대로 말하자면, 엄마가 드리는 불공 때문이었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닌 엄마가, 무릎도 아픈 엄마가 드리는 불공의 모순됨을, 불공을 드리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천히 나빠진 우리 가족의 형편에서 드러나는 불공의 그 쓸모없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드리는 불공을 내가 현신해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사람들은 부처님과 행복을 직거래 틀 수 없기에 별 능력도 없는 돌을 쌓아 탑을 올린다. 그저 돌멩이였던 탑이 자기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의 소망을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돌멩이면서 공든 탑이었고, 공든 탑의 심정으로 차마 그 소망 위로 무너져 내릴 수 없어 도망가는 걸 택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우리 집은 극적인 요소를 길러내기엔 너무나 작고, 우리 엄마 역시 어디에나 있는 그런 엄마다. 내가 당신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고, 어디서든 내 할 일 잘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런 엄마. 내게 한없이 약해서 도저히 불화할 수 없는, 그런 착한 엄마. 내가 조금 더 능력과 자신이 있었더라면 자신보다 더 잘 살길 바라는 엄마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불화할 수 없음을 고민해 도망가기보단 세상과 맞서 싸우며 우리 가족의 몫을 주장할 배짱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아주 작은 꿈조차 겨우겨우 꾸고 있다. 1년 뒤 다음 방으로 갈 때 즈음엔 지금보다는 많은 돈을 벌고 있기를, 일주일에 야근은 세 번 정도만 하기를. 그 이상은 쉽사리 꿈꾸기 어렵다. 과연 이 만큼의 꿈으로 엄마보다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더 큰 꿈을 품을 수 없는 것은 나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대의 불행일까. 내가 문제인지 시대가 문제인지 고민을 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좀 넓은 공간에 있는 편이 낫겠다 싶어 거리로 나섰다. 새로 방을 얻은 골목은 어쩌다보니 스무 살, 매일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절어 저열한 대화를 일삼았던 바로 그 길과 끝이 닿아있었다. 처음 성인이 된 이후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 길에 있는 모두가 나와 꼭 닮게 느껴졌다. 이들 모두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가 나름의 방법으로 불공을 드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여기 이 골목의 우리 모두가 대단할 것 없는 돌멩이면서도 또 공든 탑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울고 싶어 졌다. 나와 비슷하게 취한 이들을 배경 삼아 오랜만에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가 가는 동안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하늘의 달을 봤다. 꼭 오늘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엄마도 저 달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하고 불공을 드렸겠지.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할머니도 엄마 잘되라고 불공을 드렸었느냐고, 엄마는 그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한 적 없느냐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질문을 까먹지 않으려고 계속 달을 쳐다봐야 했다. 어 아들. 오늘 춥지. 엄마 이제 밥 먹고 쉰다. 그럼. 다녀왔지. 가서 아들 탈 안 나게 잘 지내라고 불공드리고 왔지. 그냥 하는 거지. 소용이 없으면 어떠니. 너는 너대로 잘 살고 엄마는 엄마대로 잘 살자고 하는 건데. 추워도 잠깐 창문 열어 놔라. 바람 들어오게. 자기가 바람을 보내 줄 것 마냥 창문을 열어두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다시 방 안이었다. 창문을 여니 방 안에서도 달이 보인다. 달을 보며 물어보려 했던 질문은 역시나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바람 들어오게’라는 그 말이 마음속 고민들을 다 날려 보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 엄마는 이제 돌 쌓는 불공을 그만두고 바람을 보내주는 불공을 드리고 있었구나.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잘 살자는 엄마한테 시비를 걸어서 뭐에 쓸까.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 아직 바람이 닿는 거리에서 도망을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가만히 캐리어 위에 앉아 시대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이 바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를 생각했다. 엄마가 드리는 공이 달에 가 닿으면 달은 바다를 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고 그 밀물, 썰물은 또 바람을 만들고 바람은 내게 닿는다. 그러면 나는 불안하게 쌓여진 내 몸을 보며 더 높아질 수 없음을 절망하길 멈추고 바람을 쐬며, 더 높아질 순 없어도 이 이상 멀어지지는 말아야지, 그렇게 엄마가 드리는 공에 흔들림으로 웃어주며 나는 나대로 잘 지낸다고 답해야지, 하고 공든 탑의 심정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마감도비 : "그래 일이 많아서 우짜노. 회사를 좀 더 큰 데로 옮길 수는 없나." 가끔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쇼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는 저에게 넌지시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어요.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겠죠. 그렇지만 저는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말들을 하곤 해요. 일종의 항변이죠. 나는 지금 한 우물을 열심히 파고 있고, 더 크고 번듯한 직장으로 가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이죠. 저는 제가 어머니에게 공든 탑이 아니길 바라요. 물론 무너진 탑은 더더욱 아니길 바라죠. 저는 그냥 조금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부모님이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투사(投射)의 대상이 아닐 때 저는 신발 끈을 고쳐 매기 전 부모님을 좀 더 편하게 안아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파주:
추석과 설날, 명절 같은 때 타지에 갈 때면 늘 고민입니다. 찐득하게 명절을 지내고 난 다음 날이면 어디를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거든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늘 그 지역에서 유명한 사찰을 찾아가곤 했어요. 서산의 간월암, 예산의 수덕사, 부여의 무량사... 당장 고향인 충남 지역만 살펴봐도 한가득이죠. 여하튼 절에 갈 때마다 부모님은 평소 답지 않게 본래 값의 몇 곱절은 되는 초나 향, 공양미까지 사들곤 했습니다. 어린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돈 아깝다'고 볼멘소리를 해댔죠. 엄마의 그 정성이 온전히 저를 향한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부모가 된 나이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 정성어린 소비는 계속 되고 있네요. 이제는 저도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의 건강을, 성공을, 그리고 행복을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엄마가 구입한 초 하나에 소망을 덧붙이는 무임승차와 다름 없지만 뭐, 인자로우신 부처님은 제 소망도 받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매오 : 얼마 전에 나물 반찬을 해먹으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사실 검색 몇 번이면 마법의 레시피들이 뚝딱 나오지만, 그 핑계로 엄마와 통화 한번 하는 거죠. 어쨌든 대화를 하려면 저는 물론 엄마에게도 핑계가 필요한 나이가 돼버렸으니까요. 나물 반찬 만드는 법에서 시작해 근황 토크를 돌아, 반찬 해주고 싶어도 나물은 금방 못 먹게 되어버리니 해줄 수가 없다는 말로 대화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엄마는 반찬을 들고 저희 집에 오셨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마침 쉬는 날이라 드라이브 삼아 왔다네요.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그냥 사먹어도 되는데. 하긴, 엄마에게도 핑계가 필요했던 거겠죠. 저와 동생을 만나러 오는 것에 대한. 뭐 그게 서글프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슬쩍 내세우는 핑계에서 서로를 향한 관심이 느껴졌습니다. 공든탑의 심정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by.야망백수 💬남은 2021년, 2주 동안만큼은 우리 모두 일찍 일찍 집에 들어 갈 수 있길,,, 💬풀칠러A 극 내향인인 저는 엄청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연말이라 그런지 저도 올한해 사람들에게 받은 따뜻함을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비슷한 구절이 나와서 조금 신기했어요 ㅎㅅㅎ 받은 따뜻함만큼 전달할 수 있는 제가 되길 바라며, 풀칠도 저의 진심을 받아주세요!!!!! 💬아매오 💬 풀칠러B 마감도비님 팬입니다 ^.^ 💬 마감도비 하핫 감사합니다 마음 헛헛한 퇴근길에 큰 힘이 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풀칠러C 이번 메일 너무 재밌어서 계속 실실거렸어요 ㅋㅋㅋㅋ 플랑크톤인지 오미크론인지에서는 수업들으면서 웃음 참느라 혼났네요! 연말이라 그런지 요즘 '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며 먹고 사려나 .. 하는 졸업반의 흔한 고민들이요. 그런 사사로운 생각들이 알고보면 누구나 한 번 쯤 품은 생각들인 것 같아요. 이번 풀칠보면서 풀칠툰 특히나 정말 공감됐고, 나만 이런 생각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마음이 또 괜시리 놓이는 .. ㅎ.ㅎ 정말 재미나서 블로그에도 은근슬쩍 추천도 해보려구요! 정말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 파주 나는 뭘 좋아하고 잘할까. 뭐해 먹고살지라는 고민은 정말 평생의 난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저희 풀칠이 앞으로도 풀칠러님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내주신 내용은 다음 주 '풀칠 품앗이' 코너에 소개됩니다 :) 일부 내용이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축약 편집될 수 있습니다. 오늘 편지, 마음에 드셨나요? 아래 링크로 구독료를 보내실 수 있어요. 풀칠러 여러분의 작은 응원이 계속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해주신 금액은 전액 서비스 운영(메일 발송 솔루션 비용 등)에 사용됩니다. 풀칠 겨울 방학 안내 2022년 1월 5일까지 3주동안 겨울 방학을 가져보려 합니다. 새로운 콘텐츠도 준비하고 내년엔 재밌는 일도 한번 벌여 보고 싶어서요. 푹 쉬고 열심히 고민해서 더 재미난 이야기 들고 오겠습니다! 풀칠러님의 연말에도 희망찬 새해 맞이하기에 충분할만큼 넉넉한 휴식이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풀칠 발행인 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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