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파주입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2023년이 왔네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기 무섭게 '기적을 만드는 새해 결심'이라든지 '반드시 성공하는 연간 계획 세우기' 같은 서슬 푸른 말들이 곳곳에 보이네요. 작년 이맘때쯤엔 저도 비장한 각오로 한 해를 출발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올해는 조금 더 느긋하고 나태한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새해 처음 듣는 곡이 그 해의 운세가 점지한다는 미신이 있더라고요. 믿거나 말거나 일 게 뻔한데도 다들 트렌드를 부지런히 쫓는지 차트에 <이루리>라는 제목의 노래가 차트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더군요. 이런 유행을 저도 놓칠 수 없죠. 신중을 기하며 2023년의 첫 번째 노래를 선곡했습니다. 올해의 목표를 잔뜩 투영하면서요.

  님의 새해 첫 번째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2022년을 급하게 마무리하며 ‘올해의 OOO’을 잔뜩 정리했다. 올해의 책, 올해의 음악, 올해의 영화… 내가 주최하고 나홀로 평가하는 조촐한 어워드인 셈인데, 그런 것들을 적어가다 보면 한 해의 기억을 정리하는 데에 꽤 큰 도움이 된다.

작년과 비교해 소비도 줄었지만 열 두 달을 노션 한 페이지에 정리하고 보니 좋아하는 일에 꽤나 공을 들인 게 티가 났다. 여전히 역병이 돌고 있었지만 큼지막한 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부터 카페에서 하는 작은 모금 공연까지 가장 큰 취미인 공연을 올해도 참 부지런히 다녔다.

올해의 공연 부문에 여러 후보를 올려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2022년에 새롭게 알게 된 가수부터 매년 찾아가는 단독 콘서트도 있었지만 역시나 최고의 공연은 오랜만에 돌아온 메리이모의 공연이었다. 그들이 마지막 앨범을 발매한 게 2008년이니, 근 15년 만에 컴백한 셈이다.

뜬금 없는 시기에, 돌아올 거라 기대하지 않던 밴드 마이앤트메리가 돌아왔다. 그들은 페스티벌 무대를 시작으로 단독 콘서트에 앵콜 콘서트까지 한이 맺힌 듯 공연을 해댔다. 그런 마이앤트메리의 행보를 두고 친구와 ‘이 아저씨들 설마 코인 물린 거 아니냐’며 우스개소리를 해대던 기억도 스쳤다. 짓궃게 표현했지만 아직 한번도 그들의 공연을 본 적이 없는 내게는 마이엔트매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2022년에 가장 추웠던 어느 날, 무대 위에 선 마이앤트메리는  말했다. "다시 모였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라고.

각자의 음악을 하다가 오랜만에 만났고, 합주는 엉망진창이었지만 포커스가 점점 더 맞고 있다고 했다. 페스티벌 무대 하나만 단발성으로 하려던 참이었는데 팬들의 반응을 보니 계속해도 될 성싶었다고. 오히려 왜 일찍 돌아오지 않았는지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특유의 능글맞은 톤으로 던진 그 말 하나하나가 모두 고마웠다. 마이앤트메리가 다시 모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랜 팬으로서 하고 싶은 일은 그들이 걷는 길에 열심히 찾아가서 돈쭐내는 일뿐이다.

자칭 타칭 멘트 반 노래 반 밴드답게 곡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 더했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보컬인 정순용님이 했던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노래가 늘었다’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노래에 관한 슬럼프가 좀 있었어요. 어, 여기가 나의 끝인가? 나의 노래 실력은 여기가 정상인가? 한계인가? 더이상 나아갈 수 없나?”

이번 재결성이 새롭게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는 그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몸 전체를 경쾌하게 때리는 소리가 귀에 스치는 동안 2013년에 갔던 공연이 떠올렸다. 그날 토마스쿡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공연했던 그는 ‘노래는 어차피 고만고만하니, 토크로 승부하겠다’라는 말을 했더랬지. 10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때와 정반대의 말을 내뱉고 있다.

다시는 라이브로 듣지 못할 것 같던 노래들이 연달아 나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재생하던 노래가 눈앞에 펼쳐지니 내가 공연이라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새삼 체감했다. 아, 나는 이런 걸 보기 위해 살고 있는 거였구나. 성탄절을 이틀 앞둔 그날의 공연이 내게는 지금껏 살면서 받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연도가 바뀐 직후 새해 인사를 주고받던 중에 ‘올해 처음 듣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다. 나만 모르는 Z세대 트렌드인 건지 싶어 친구에게 물어보니 ‘뭐, 새해에 첫 번째로 들은 노래 제목이 한 해를 결정한다는 얘기가 있잖아’라는 해답이 돌아왔다. 조악한 미신에 취약한 편인 나는 괜히 신중을 기하며 첫 곡을 고르고 또 골랐다.

선곡에 몇 십분을 허비한 후에 간신히 고른 올해의 첫 번째 노래는 <걸어가자>였다. 원곡이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른, 심지어 9년 전 어느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라이브 영상을 꾸역꾸역 찾아 틀었다. 경쾌한 건반 소리와 함께 산들바람 같이 선선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또르르 굴러들어왔다.

‘걸어가자. 걸어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그래, 나는 이 한 마디가 그토록 듣고 싶던 거였지. 그제서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올해의 목표가 또렷해졌다.

새해가 닥치기 무섭게 대문 밖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무엇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무엇을 끊어야 한다거나. 온갖 종류의 다짐들이 차고 넘치는 바람에 이제는 쌀쌀한 바람을 타고 그것들이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고작 새해가 왔을 뿐인데.

2023년에는 대단한 야망도 잘 짜여진 계획도 없다. 그저 서두르지 말고 걸어가는 게 나의 목표다. 메리이모가 했던 말처럼, 십여 년 쯤 지난 후에 한계라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다가. 그저 올해 연말 즈음 한 해를 정산하며 '잘 걸어왔구나’하는 감상을 남길 수 있을 만큼만 버텨내는 게 올해의 유일한 목표이자 계획이다. 원로 가수가 되어가는 아이유 선생님의 말처럼, 사람이 포켓몬도 아니고 매년 성장할 수만은 없는 법이니까.

아매오

야망백수

야망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