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정의 [풀칠 166호]

2023. 12. 27.

🤝관계의 재정의 [풀칠 166호]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주 에세이 당번 아매오입니다. ‘끝’에 대한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저는 관계의 재정의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번 퇴사하다보니 퇴사한 동료와의 관계를 ‘전 직장을 같은 시기에 다녔던 동료’로 남을지 친구든 지인이든 업데이트를 시킬지도 여러 번 고민했었거든요.

물론 이게 퇴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대로 끝낼지, 새로운 관계로 다시 시작할지 정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여러 관계에 적용해볼 수도 있겠죠. 관계의 재정의, 여러분의 경험도 궁금합니다.

p.s : 풀칠팀의 새해 인사 겸 1월 예고
이번 호가 2023년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더라고요. 풀칠러님의 2023년은 어떠셨나요? 풀칠 팀의 2023년은 단어 하나로 요약하면 ‘혼미’가 될 것 같습니다. 쉴 새 없이 도는 지구에 잘 붙어있기가, 너무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의 속도를 견뎌내기가 어려운 날이 많았거든요.

새해엔 이 와중에도 몸과 마음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법을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1월의 주제는 '중심'입니다.

2023년의 끝자락에서,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온 인사를 전합니다. 올 한해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랑신부가 행진을 마친 뒤 사진을 찍을 때 꽃잎 뿌리는 역할을 맡았다. 피로연장의 테이블이 넉넉하지 않으니 신랑신부 입장만 보고 얼른 밥먹고 오자던 계획이 틀어졌다. 별 수 없지.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다 함께 자리를 지켜야 했다. 덜컥 떠맡은 책임에 얼떨떨한 나와 달리 함께 꽃잎을 뿌릴 동료는 약간 신이 난 듯했다.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서도 똑같은 역할을 맡았는데 공 던지듯 머리 위로 뿌렸더니 생각처럼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손바닥이 위쪽을 바라보게 하여 수직으로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자도 동료다. 우리 중 유일한 재직자. 그는 업무 회의 때와 같은 차분한 태도로 예식을 진행했다. 어울리지 않게 중간중간 드립도 넣어가면서. 와, 노력하는구나. 다음은 축가. 역시 동료다. 어릴 적 잠깐 성악을 했다는 이야기는 사회자의 드립인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거짓말이라도 꽤 그럴싸한 거짓말이라는 데에 다들 의견이 일치했다. 이제 신랑신부 행진이다. 딴딴따단. 버진로드 끝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신랑은 꽃잎 바구니를 들고 있는 나와 다른 동료를 보고 막 웃는다.

“아니, 왜 이걸 두 분이 들고 계세요? 너무 고마워요. 와, 나 우리 엄마한테 할 말 생겼네.”

그는 몇 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한 회사에서 우리와 함께 일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개월만에 퇴사했지만 그때의 동료들이 결혼식 곳곳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게 신기했던 거 같다. 나라도 그랬겠다. 정말 그랬느냐 물어보진 못했다. 사실 나는 그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꽃잎 뿌리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걸 내가 해도 되는 건가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예식장 내 아무나 붙잡어도 나보다 더 오래 알고 더 자주 보고 더 친한 사람일 텐데. 내 발로 오긴 했지만 좀 머쓱했다.

사진사 선생님의 신호에 맞춰 꽃잎을 뿌린다. 한웅큼 집어들고 손바닥을 위쪽으로 해서 수직으로, 으쌰. 찰칵, 찰칵, 찰칵. 바구니에 담긴 꽃잎을 두 번에 나눠 뿌리라고 하셨는데 남은 걸 다시 두 번에 나눠 뿌리라고 하신다. 첫 컷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보다. 살짝 눈치 보며 좀 더 몸짓을 크게 해 꽃잎을 뿌린다. 축하하는 마음을 한껏 담아. 행진의 끝을, 결혼식의 끝을,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휙. 찰칵, 찰칵. 네~됐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이건 아닌가?).

“평소에 만나기는커녕 연락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같은 회사에 다녔단 이유로 이렇게 청첩장 주는 게 좀 뻘쭘한데 아매오 님은 어때요? 심지어 지금은 각기 다른 회사 다녀서 더 그렇네요. 물론 이미 불러모았지만.”

“받아보기만 해서 잘 모르겠지만 주는 사람은 예의 잘 갖춰서 주면 되는 것 같아요. 주기 싫은 사람이면 몰라도. 갈지 말지 선택은 받은 사람 몫이죠. 그리고 이미 불러모았잖아요. 일단 주세요. 저도 생각해볼게요.”

청첩장 모임에서 흔한 질문에 뻔한 답을 주고받으면서도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열댓 명이 모인 자리에 재직자는 기껏해야 두어 명. 그렇게 모였다는 것 자체가 새삼 놀라웠다. 이들이 그토록 각별했나 떠올리면 그건 또 아닌데. 알고 지내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굳이 관리해야 할 정도의 인맥도 아니고. 나도 그 자리에 갈까 말까, 결혼식은 갈까 말까 실제로 고민했다. 그럼에도 참석한 이유는 그와 나의 관계를 ‘한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동료’에서 조금 더 나아간 버전으로 바꾸고 싶어서다.

재직할 당시 그를 보며 참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이대로 퇴장하지 않고 가끔 등장해주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결혼식 참석은 꽤 가성비 높은 노력이다. 무언가 공들여서 해낼 필요 없이 단지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어필이 될 테니까. 타인에게 존재만으로도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건 매우 희소한 기회다. 물론 꽃잎까지 뿌릴 줄은 몰랐지만, 꽃잎까지 뿌린 덕분에 나는 그에게 0.1% 더 각인됐을 것이다. 최신 버전의 관계로 업데이트 되는 순간이었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좀 아쉬운 일요일 낮이었으니 우선 근처 카페로 걸음을 옮긴다. 일 얘기 할 것도 아니고, 퇴사 이후 근황도 이미 나눴다. 가서 무슨 얘기를 하게 되려나. 그 대화가 앞으로 우리들 관계의 가늠자가 돼 줄 것 같다.

“전 직장 동료가 참 묘한 관계예요.”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둘 중에 하나…아니면 원수가 될 수도 있고.”

“확정되지 않은 채로 평생 유예된 상태로 남을 수도 있고.”

“퇴사하고 연락 끊기면 딱 그거네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최소한 그 이상의 관계네요.”

끝낼 기회와 다시 시작할 기회는 동시에 주어지기 마련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 어떤 것을 받아들지 선택해야 한다. 무언가를 끝내고 또 다른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며 우리는 삶의 다음 챕터로 나아간다. 마침 연말연시다. 그러기에 딱 좋은 시기다.

야망백수 : 멋진 장면이네요. 인생의 새로운 시절을 향해 걷는 이에겐 꽃잎을 뿌려줘야하는 거군요.

연말연시는 술 마시기도 좋고,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록을 쓰거나 새 해의 계획을 세우기에도 좋은 때지만 애매한 인연들에게 인사 건내기에도 참 좋은 때 같아요. 꽃을 뿌리는 아매오님을 상상하다 2024년엔 잠시 곁을 내준 모든 인연들에게 제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안녕, 시작에서도 끝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이렇게 새해 계획을 하나 세우게 되네요.

마감도비 : 비즈니스 상대와 미팅을 하다보면 이따금 ‘그때 그분, 잘 지내세요?’ 라거나 혹은 ‘OO씨랑 연락하세요?’와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퇴직자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지 묻는 질문인데 답이 궁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저는 회사를 떠난 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편은 아닙니다. 먼저 나서서 연락하거나 만남을 갖는 걸 어려워하는 제 성격 탓이 큰 거 같아요.

지금 회사에서 주니어로서는 꽤나 긴 근속 기간을 보유하게 됐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맞이하고 보냈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재직 기간 동안 꽤 잘 지냈다고 생각하고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직장 동료가 아니더라도 사회인으로서 친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일에 치여서 연락해 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더라구요. 역시 제 잘못이 좀 더 큰 거 같네요.

아매오님의 이번 글 부러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결혼처럼 인생의 큰 이벤트를 서로 축하해 줄만한 전(前) 직장 동료. 저에겐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네요. 앞으로는 좀 더 살가운 사람이 되어야 할까 봐요. 아니, 이제라도 그들에게 다시 연하장을 한번 날려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제 안부 인사를 반가워해주면 고마울 텐데 말이죠.

파주 : 연말 맞이 회고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말이죠. 유독 올해 지인과 만나는 자리가 줄었더라고요. 물론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혼자 노는 걸 추구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올해는 이상할 정도로 그랬어요. 유별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고 올해 저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남이 뜸해졌고요. 만나자는 뉘앙스의 제안을 충청도식 태극권 화법으로 밀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줄어들더라고요.

코멘트가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서운했던 지인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에너지를 바깥으로 뿜어보겠습니다. 참, 몇 년 만에 온 연락이라도 청첩장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 새해 인사

풀칠러A

2주 전에 회사 송년회를 미리 해서 그런지 연말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지난 주말에 핑계고 시상식을 보고 나니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저는 항상 연말이면 미생의 오상식 과장의 장그래를 향한 대사 '더할 나위 없었다 YES!'를 떠올립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에는 주말에 집에만 있지 않았고 헬스를 포함한 여러 외부 활동들을 소화했습니다. 경험적인 면에서는 더 할 나위 없으나 이따금씩 이런저런 잔병에 시달려서 100% 만족은 못하겠네요. 몸에 더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풀칠 팀에 감사하다는 연말 인사를 드립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고된 서류 작업을 잠시 내려놓고 풀칠 읽으면서 기분 전환 많이 했어요. 내년에도 함께하겠습니다. 마감도비님, 야망백수님, 아메오님, 파주님 모두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매오

몸에 더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저도 했답니다. 급기야 지난 주에는 큰 맘 먹고 PT를 등록하기에 이르렀지요. 생각이 드디어 실천으로 옮겨지네요.

읽어주시고 품앗이 나눠주시는 풀칠러님들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매주 레터를 보냅니다. 풀칠러님도 올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해피뉴이어!

풀칠러B

저도 끝마치지, 끝내지 못한 게 참 많은 2023년이네요. 조용히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고, 서류를 내보기도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아서 2024년도 이 곳에서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이 곳 사장님이 보내주시는 디지털 연하장도 곧 받게 될테고요. 연말에 다 쓰지 못한 휴가나 다 불태우며, 끝 아닌 끝이나 맞이해야겠습니다.

파주

저는 1-2월 사이 기세 좋게 쓰기 시작했던 만다라트표를 아직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게으른 게 아니라 올해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연말 휴가를 뜨겁게 보내시기를, 또 내년에는 모쪼록 원하는 목표를 이루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내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