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편하다.” 인력 충원을 해주지 않는 관리자들이 해대는 농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회사 생활에 전기(轉機)가 될 법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을 함께 나눠 맡을 후배 직원을 받은 것이다. “이제 저 친구는 네 부사수야. 잘 관리해.” 늘 믿고 일을 맡긴다던 상사는 마치 기사 작위를 주는 여왕처럼 엄숙하게 말을 했다. 늘 그렇듯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뭐라는 거야?’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부사수를 맞이하는 일은 흥미롭고도 불안한 경험이다. 일단 사람이 생각이 많아진다. 그건 내 MBTI가 I로 시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고 어렵기 때문에 내 옆에 앉은 사람이 후배건 후배 할아버지건 상관없이 복잡한 심경이 된다. 뭐라고 말을 터야하지. 밥을 먹었냐고 물어봐야 하나. 취미는 뭐냐고 물어봐야 하나. 이런 회사는 왜 왔느냐고 말을 해야 하나.
커피를 한잔 하자고 하며 사무실을 잠깐 벗어났고 자기소개부터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올시다. 이 회사에서 몇 년차고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지금은 무슨 팀에서 뭘 맡고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나랑 같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된다. 약간은 어려울 수 있지만 괜찮다 금방 배울 수 있다 따위의 말을 두서없이 내뱉었다. 우리 회사가 온보딩은 따로 없지만, 이라고 입 밖으로 냈다가 후회했다. 첫 날부터 ‘런’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후배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주된 감정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두렵다. 퇴사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업무를 나누고 일을 지시하긴 해야겠는데 어디부터가 업무 분장이고 어디부터가 떠넘기기인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일종의 기준을 만들어서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목표치와 기대치를 높이기로 했다. 다음날 제 자리에 앉아있는 후배를 보고 말했다. “아주 잘 하셨어요.”
후배를 받는 일은 회사에서의 나를 재정립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회사는 차장급 이상의 관리자가 아니면 별다른 직책이나 직급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자보자~ 내가 올해로 이 일을 한 지 몇 년 째니까 나는 대리인가? 음.. 그럼 그냥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닌가? 왜 아닌가?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음냐음냐. “선배, 어디세요? 저는 오늘 뭘 하면 될까요?” “저는 오늘 지각입니다.. 저를 버리고 가세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일을 분배하고 일의 마감 시간과 퀄리티를 설정하고 피드백을 주고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피고, 회식에는 나올 건지 눈치를 보고, 나 몰래 상사에게 왜 근무 외 수당이 없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인터넷 브라우저 탭 중 ‘사람인’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하는 이 복잡다양한 과정들은 나에게도 무척 새로운 일이다. 후배를, 부사수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일을 맡게 된 수준이 아니라 일의 성격이나 내 역할 자체에 변화가 생겨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사수로서 내 역할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부사수가 어느새 눈으로 욕할 줄 아는 어엿한 직장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물론 자기 길은 스스로 잘 찾아내겠지만. 어쩌면 나는 ‘멍청하고 부지런한(멍부)’ 사수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사실 저도 사수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납치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