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월 주제 ‘비상’의 두 번째 당번인 파주입니다.

고작 며칠 쉬었을 뿐인데 회사에 출근하는 게 왜 이리도 힘이 드는 걸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휴식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요.

연휴 직후 가혹한 출근길을 겪고 나니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 비상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는 저만의 비상사태 대탈출법을 공개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도 무려 세 가지나(따단)! 과연 실제로 쓸만한 요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재미 삼아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오늘도 메일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상 어느 일이 안 그렇겠냐마는. 내가 하는 일을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일’이다. 외력이 작용하기 쉬운 일이라는 건 그만큼 비상사태가 빈번하게 닥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하루에 서너 번씩 사건사고가 연속해 팡팡팡 터지기 일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소리로 ‘X됐네’를 나직이, 하지만 리드미컬하게 내뱉는다. 동시에 어떤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킨다.

“오마이갓 비상사태 큰일났다 X됐다”

(*클릭 시 소리 주의)

비속어에 리듬감을 부여하며 안무가 곁들여진 이 무대를 되뇌면 아무리 큰일이 나더라도 저항 없이 푸흐흐 웃게 되고 만다. 사람의 뇌가 참 오묘한 것이, 그렇게 한번 스위치를 스마일로 전환하기만 해도 분명 조금은 나은 기분이 된다. ‘아, 큰일났다. 하지만 웃을 정도의 여유는 있는 상황이구나’하고 안심하게 된달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체득한 비상사태 조기 진압 요령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최근에서야 발견한 것인데 일종의 행동 전환 신호를 만드는 거다. 나의 경우엔 집에 들여놓은 풍경을 흔들어 종소리를 내는 식이다. ‘댕~’하고 맑은 소리가 들리고 나면 어쩐지 평화로워지는 이 기분. 물론 나만의 완벽한 착각이겠지만 비상사태의 긴장감을 해소해 준다는 측면에서 꽤나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가 미뤄둔 마감을 해치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도 풍경 소리가 하나의 행동 전환 신호처럼 된다.

행동 교정을 위해 스스로 종을 울리다 보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은 오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겨대는 걸 보면 효과가 없진 않은 모양이다. 맹점이라면 게으름을 떨쳐내기 위한 이 행동 전환 신호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도 게으른 탓에, 종을 울리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바보천지이기 때문이다.

소화기만으로 막을 수 없는 불이 있듯이 이런 비상사태를 초기에 진압할 수 없는 순간들도 있다. 그럴 때는 회피 기동을 펼치기도 하는데 이건 꽤나 비겁하지만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비상사태에 빠진 건 나의 일부 요소 중 하나라고, ‘X 된 것은 내가 아니고 이 회사 소속의 직원 A로서 X된 것일 뿐 내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렇게 치사하면서도 확실한 도피를 한다.

이를테면 나루토처럼 다중분신술을 펼친 뒤에 394번째 나의 분신이 위기에 빠졌다고 상상해버리는 거다. 진짜 내가 아닌 ‘나와 적당한 사이인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그렇게 거리를 두고 나면 스트레스로 뜨겁기만 했던 상황에서 빠져나와 조금 더 이성적으로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394번째 분신 또한 나이기에, 이내 적당한 위기감을 가지고 비상사태 극복을 위한 행동에 임한다.

물론 이렇게 일타강사마냥 비상사태 탈출법을 세 가지나 잘난 듯 떠벌렸지만,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오마이갓 비상사태 큰일났다 X됐다’를 시전했다. 아나... 그런데 오늘은 진짜 망한 것 같은데.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니까.

아매오 : 비상사태를 의연한 태도로 맞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없지요. 그런 점에서 언급하신 회피 기동은 저도 즐겨 쓰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가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헐레벌떡 현실로 돌아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너무 의연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