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요즘 말 많이 나와 [풀칠 207호]

근데요?

2025. 9. 3.

풀칠레터 - 밥벌이가 바쁘다지만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 주에도 편지 보내드립니다. 아매오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너 요즘 말 많이 나와’입니다. 물론 이 문장을 그대로 면전에다 내뱉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 한 마디에서 묻어나는 X같음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무언가 탐구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에 한 말들에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걸 느껴본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너 요즘 말 많이 나와’라는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도 듣고 싶네요.

동료 A와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B가 얼마 전에 아매오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블라블라.”

다행히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속이 좀 꼬인 사람이라 이런 경우 A가 미처 전하지 않은 얘기가 있을지, 있다면 어떤 내용이었을지 괜히 떠올려보곤 합니다.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에 가려진 부정적 평가를 찾아 스스로에게 반영하는 편인데요. 누군가는 흡족하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긍정적/부정적 평가는 ‘긍정적인 면/부정적인 면에 대한 평가’를 뜻합니다.)

제 생각에 이건 좀 피곤한 삶입니다. 가능한 모든 부정적 평가를 검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데미지를 견뎌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무리 자진해서 임하는 것이라고 해도요. 이젠 습관이 돼 무뎌졌다고 하지만 이렇게 쌓인 데미지가 언제 터져나올지 모릅니다. 몸과 마음이 갑자기 약해질지도 모르는데 조심해야죠.

…와 같은 얘기를 또 다른 동료 C와 나누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음…이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보통 이럴 때는 말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들은 이상 참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제 얘기를 듣고 있던 짧은 시간에 그 또한 이걸 말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니 운을 띄운 것일 테고요.

“되죠. 말해보세요.”

“사실 A도 아매오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거든요…블라블라.”

그건 조금 더 중립적인 평가였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부정적 평가에 가까웠죠. 심지어 앞서 긍정적 평가를 전해 들은 뒤 제가 떠올리고 검토해서 찾아낸 것과 유사한 내용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자기객관화 수준에 감탄하는 한편 ‘그렇게 보고 있었다면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왜 그랬을까요? A가 저에 대한 B의 긍정적 평가를 전하면서 자기가 품고 있는 부정적 평가를 뒤로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건 저의 발칙한 상상인데요, A는 두 가지 입장 사이에 놓여있었을 것 같습니다.

1. 자기 눈에 보이는 나의 아쉬운 점을 짚어주고 싶다.
2. 개선 방향까지 일러줄 만큼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

제가 아는 A의 성격상 아쉬운 점을 짚어주려면 개선 방향까지 일러주는 게 선배의 도리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있었는데 마침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들었으니 옳다구나, 그 말을 옮기는 것으로 타협한 셈이죠.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여기다 적을 순 없으니 비유하자면…’끼니를 안 챙겨먹는 게 아쉽다’고 못하니 ‘간식을 잘 챙겨먹어서 좋다고 하더라’고 말한 것이죠. 혹은 ‘넓게 볼 줄 모른다’고 못하니 ‘디테일을 잘 챙겨서 좋다고 하더라’고 말한 것이고요.

그래도 이정도면 꽤 예의 바른 동료 아닌가요? 1번 입장을 직접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가 2번 입장과 같은 것인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려면 끝까지 참지, 기어코 내뱉는 이들이 꽤 많잖아요. 심지어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이 2번을 극복하고 ‘개선 방향까지 일러줬다’고 여기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보통 꼰대라고 일컫는 부류가 주로 이런 경우에 해당하죠). 물론 가장 최악은 ‘너 요즘 말 많이 나와’입니다. 1번과 2번 입장을 모두 취하면서도 그 책임은 회피하려는 야비한 놈! 자기 마음만 편하면 다 되는 놈!

물론 결과적으로 A는 제게 말하지 않았을 뿐 다른 이에게는 2번 입장을 외면하고 1번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습니다. 아아. 차라리 내가 직접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일로 상처받지 않는데. 오히려 부정적 평가를 찾아내는 시간을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더 나았을 텐데. 아아.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그때 A가 한마디 한마디 사이에 숨겨놨을 의도를 역추적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때 정확히 짚어줬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성장했었을까 아쉬워하지 않았을 텐데.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렇게 삼켜진 말들이 얼마나 많을지, 반대로 그렇게 내뱉어진 말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 중 여러분이 아는 것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MBTI에 관해서도 누군가 말했죠. 진짜 MBTI는 자기가 아니라 타인이 검사해준 것으로 봐야 더 정확하다고. 심지어 그렇게 받은 결과 또한 자기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마다 제각각 다르게 나올 거라고. 그리고 그 중 어떤 것은 당사자인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일 거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평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저와 상호작용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모입니다. 특정 개인, 단발적인 사건의 층위를 넘어 긴 시간 축적됩니다. 능력과 도덕성과 사회성 등으로 분류돼 누군가 저에 대해 파악할 때 참고하는 자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저의 평판은 어떨까요? 지금 당장 저를 채용하거나 저에게 일감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 자신이 출처인 정보를 제외하고 어떤 경로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내 평판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까 제가 ‘너 말 많이 나와’를 최악으로 꼽았던가요. ‘평판 조회’ 역시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그것과 다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은 저의 평판에 근거해 저를 평가하지만 정작 저는 저의 평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죠. 결국 저의 평판을 얘기해줄 동료들 혹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할지 결정할 평가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 또한 내가 만들어온 이미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나에 대한 판단조차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이 결정적일 수 있다는 것에 어쩐지 허무해지기도 합니다.

가만 있자…지금까지 풀칠에서 실컷 떠든 이야기들도 제 평판의 일부가 됐을까요? 어라…? 내가 무슨 말을 써놨더라…? 안전점검 좀 하러 다녀와야겠습니다.

야백: ‘너 요즘 말 많이 나와’라. 나에 대한 타인의 의견이 나의 안녕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사회적 동물이라서 짊어져야 하는 불편함이겠죠. 저는 이런 불편함이 찾아오면 사회적 동물이기를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퇴근길에 껍질째 먹어도 되는 천도복숭아 같은 과일을 한 바구니 산 다음, 집에 오면 핸드폰을 끄고 옷을 모두 벗어던지는 거죠. 그리곤 거울을 보고 말합니다. “나는 북아메리카 큰곰이다.”

곰은 흐르는 물에 과일을 씻어서 먹고 어슬렁대다 푹신한 이불이 깔린 동굴을 발견하죠. 동굴 속에서 곰은 잠을 청합니다. 몇 시간 뒤, 달이 떠오르고 법인카드 택시 결제의 봉인이 풀리는 시간이 되면 곰의 애인이 찾아오죠. “누가 침대에서 과일 먹으래” 이런, 아무래도 애인도 곰이 하는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그래도 애인의 말엔 무어라 반응을 해야겠죠. 이불을 걷어내니 애인의 얼굴이 어둠 속에 어렴풋이 보입니다. 부루퉁한 표정이지만 보자마자 웃음이 납니다. 나에 대한 의견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나를 매혹시키는 타자가 존재한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요. 이 이상함을 꼭 껴안고 온기를 느끼던 곰은 문득 기억해 냅니다. 일을 처음 시작했던 이유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였다는 걸요.

파주: 누군가 저에게 ‘너 요즘 말 많이 나와’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 광경을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그가 블라블라 떠드는 동안 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네가 뭘 알아' 읊조릴 겁니다. 상대를 씹느라 저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테고요.

'요말많'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제게 호의적일 리가 없으니까요. 실제로 상대는 저를 요만큼도 모릅니다. 제가 대전에서 와서 얼큰이칼국수를 좋아한다는 것도. 갑자기 고향이 전국구 빵집이 되어버린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것도. <풀칠>이라는 은밀한 취미를 갖고 있는 것도. 내밀하고 단단한 사생활에 무게중심을 두고, 나를 향해 마수를 뻗는 무례한 말들을 스리슬쩍 흘려내는 것. 일종의 회피기동술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처럼 저를 향한 말들이 공기처럼 흘러가 버릴 때 저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고 믿습니다. '요말많' 따위에 내 일상을 내어줄 이유는 없어요. 굳이 설명하거나 해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안에 놓여 있는 무게추가 어딜 향하는지 살뜰히 살피는 것으로도 제게는 충분하단 말입니다.

아매오: 알 만한 사람들은 아실 유튜버 ‘원의독백’을 추천합니다. 자기 생각을 담은 이야기를 이렇게 남겨둘 수 있다면 ‘스스로 내 평판의 주인이 되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겠다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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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풀칠러님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등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풀칠러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럼, 풀칠러님의 평안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평판’이 좋아질 일만 가득한 나날이 계속되길 바라요. 무사히 주말을 향해 달려가시길.

다음 주에는 <너 일 개못하잖아>라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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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러A

안녕하세요, 저는 첫 직장에 6년차 재직 중인데요,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고 정직원으로 전환 되고, 그렇게 주임, 대리 직급까지 달고 나니 이제 곧 팀의 장을 달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6년은 제 직속 상사분 덕분에 편하면서도 한 단계씩 회사 생활을 잘 배워나갔던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큰데요, 상사분께서 7년 정도 재직하시다가 곧 퇴사를 앞두고 계셔서 결국 그 자리를 제가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오랜 기간 상사분을 뵈어 왔다 보니, 처음 퇴사 소식을 들었을 땐 아쉬움과 서운함, 놀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무엇보다도 지난 시간동안 오히려 상사분의 희생이 감사하면서도 좀 더 내가 눈치껏 도와드리고 더 빨리 성장했더라면 더 오래 계셨을까 하는 죄송함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시 시간을 돌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요. 아무튼, 인생 처음으로 팀의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보니 내심 불안함과 걱정이 큰 것 같네요. 그렇지만 어느 한 자리에만 계속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직도 계속 도전해보고 있으나 막상 이직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어떻게든 해 나가야 할 것이고 또 그럴 것이지만, 푸념 한 번 해보았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매오

상사 분이 7년이나 몸 담은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직속 부하로 6년이나 함께한 풀칠러님을 믿음 덕분이 아닐까요? 충분히 1인분을 해낼 것은 물론 자신을 대체할 만큼 성장했다고 판단하셨을 겁니다.

‘직속 상사가 퇴사한 것’과 ‘생애 첫 리더를 맡은 것’ 중 하나만 발생해도 개인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데 그 두 개가 연결된 상태로 오다니. 어쩌면 풀칠러님에겐 그 자체가 이직보다 더 큰 도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처럼 되는 게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어떻게든 해 나간 데까지는 분명히 풀칠러님의 영역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가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물론 저도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풀칠러님이 풀칠의 대주주이십니다.

대주주 풀칠러 님께 이번 주의 풀칠 팀 소식을 공유드립니다.

1. 풀칠 팀블로그 오픈

부쩍 뭘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엔 네이버에 팀블로그를 열었습니다. 회의록과 이런저런 아이디어들, 소소한 성취들을 기록해두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 돌아보고 싶어졌거든요. 풀칠이 어떤 생각으로 굴러가는 프로젝트인지 궁금하시다면 놀러오십쇼.

☞풀칠 블로그 보러가기

2. 풀칠에 풀칠러님의 이야기를 실어보세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에세이를 써도 되고요. 질문에 답변을 해도 됩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는 풀칠의 다양한 채널(이메일, 인스타, 홈페이지...)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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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풀칠하는 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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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마음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먹고 사는 것 그 이상의, 충만한 시간을 자주 누리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우정을 담아,

풀칠 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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