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그냥 형편에 맞게 나를 찾아주는 곳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이쪽으로 오게 됐다. 지금 회사 이전에는 간편식 회사에 다녔는데, 다닌 기간은 짧았지만, 기이한 상황이 많았다. 예를 들면 입사 당일,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서 모니터 위에 붙여놔야 했다. 나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김밥.
김밥을 만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요리든 그렇지 않겠느냐만, 김밥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하나씩 쏙 집어먹으면 한입에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건 여러 가지 재료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슬고슬한 쌀밥은 물양을 평소보다 적게 넣어서 질지 않게 짓는 게 중요하고, 짭조름하게 조린 우엉은 아삭한 식감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계란지단은 샛노란 빛을 내려면 불 조절을 잘해야 하고 등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본 김밥만 해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릴 때 엄마는 무지 바빴다. 벌이가 들쭉날쭉한 아빠가 내어주는 돈은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엄마는 기꺼이 야근과 특근을 하며 일주일 내내 일했다. 전자회사에서, 당시엔 불티나게 잘 팔렸던 엠피쓰리를 만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소풍 가야 하는 날이 싫었다. 도시락이 필요했으므로.
그 당시에도 김밥집은 어디에나 있었다.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는 엄마에게 가면, 엄마는 2천 원을 쥐여주면서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김밥집에 들르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문을 나서기 전에 빈 락앤락 통과 수저통을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왜 빈 통에 김밥을 옮겨 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김밥도 못 싸주면서. 마치 진짜 싸준 것처럼 연기까지 시킬까. 그래서 그냥 김밥 아주머니가 호일에 넣어주는 그대로 사 간 적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 차차 알게 되었다. 그 빈 통까지 사랑이었단 걸. 아침잠이 많아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내 입에 쏙 들어온 사과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 함께 집에 돌아가던 시간, 내 옷만 잔뜩 담긴 쇼핑백들처럼.
친구들 앞에서 비닐 호일 대신 도시락통 안에 반듯이 담긴 김밥을 꺼내두길 바랐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엄마가 만든 엠피쓰리에 든 음악을 들으며 소풍에서 돌아오던 그때의 나. 텅 비어 있었지만, 동시에 가득 차 있는 플라스틱 통을 쥐고 있다. |